마음씀이 절대성 자리 마음 성품 사라지지 않는다.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고 날래야 날 수도 없는 그대로 생사는 전부 상대성 놀음 ? 그러하니 이걸 여러분들이 안단 말이야. 그러면 이걸 이름 지어서 성품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마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영지라고도 말할 수 있고, 요새 우리가 말하는 절대성자리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절대성자리가 있다는 걸 지금 알았거든. 알았어. 옳지, 내가 이 공부하려는 생각도 절대성자리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도 절대성자리가 그리 생각을 해서 시장에 가서 이 몸뚱이를 끌고 가서 물건을 사 온다. 혹은 어떨 때는 들뜬 마음으로 미운 생각이 나. 어느 놈 그놈 도저히 사람 같지 않단 말이야. 밉단 말이야. 이렇게 생각이 나는
중생불이라 중생놀음 하는데 실은 우리가 부처. 번뇌망상 일으키는 이것도 부처자리 달리 제도 받을 사람도 없고 제도할 사람도 없어. ? 경계에 들어앉기 때문에 그만 중생이 됐다 말이죠. 중생이 됐는데 이걸 중생이라고만 말하기는 좀 어색해요. 그러나 부처님도 중생이라 말 하니까 따라서 말하는 거지만 이건 꼭 바로 말하자면 중생불이에요. 중생불. 왜 그러냐. 우리는 중생불이기 때문에 중생놀음 하는데 실은 우리가 부처거든요. 왜 부처냐. 말쑥한 그 자리가 부처인데 우리가 부처가 아니라 하면 말이지 말은 어떻게 하며 남 보기는 어떻게 보며 듣기는 어떻게 들으며 생각은 어떻게 하죠? 보고 듣고 말하고 하는 거 이거 부처자리라 말이죠. 또 번뇌망상 일으키는 이것도 부처자리에요. 솔직한 말로. 부처자리
경계에서 놀아나는 파순이가 사도 보살은 경계를 그대로 굴리거나 거기에 들어앉지 않는다 ? 천당 지옥 무너지니 고국산천에 월일색이로다 어떤 분별도 생기지 않고 하나의 그림이 한가지다 ? 이 소식처에서 삼악도가 뒤집히니 지옥이 와지끈 부서지고 생사업이 무너지니 ?그러니까 벌써 이 자리에 가면 죽었다 살았다 이거 헛거라는 말 알았거든. 그러니까 생사업이 무너졌어. 생사업이 무너지니 천당이 우지끈 넘어지는 풍광이다. ?지옥이 와지끈 무너지니 천당이 우지끈 무너져. 참 좋죠? 천당과 지옥을 내 마음대로 쓸 줄 알아야 되지 남이 만들어 놓은 천당에 가서 거지짓 할라고?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어디에서 부질없이 꿈틀거리느냐. 이리 할까 저리 할까 망설이다가 흑일 하에
부처님이 여러분 속에 있나 여러분이 부처님 마음에 있나 가만히 생각해 보아라 천하를 둘로 나눠도 한 항아리 가운데이다. 이 소식처에서 삼악도가 뒤집히니 지옥이 부서진다 ? 결정이 안 돼서 인자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죠. 또 결정이 안 되는 원인은 이 색신을 내라 이렇게 생각하는 바람에 여러 가지 그리 되는데, 그러기 때문에 아까 말한 대로 고집쟁이라. 고집쟁이. 에 이것도 보니 자성이 없는 것이로구나 생각하면 말이죠. 가만히 보니 죽고 산다는 것이 물거품놀이로구나. 이래서 한 번 고집을 부려 봅시다. 우리는 고집쟁이가 한 번 돼 봅시다. 일전에 말하기를 손가락 까딱까딱하는 거로써 예를 삼는 거 좋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만도 한 번 여기다 직심로. 그러면 직심로의 노두는 어디인고? 애천이, 말
참 불문에 들어오는 것은 복이 있어야 가능한 일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 경계에 따라 방황하지 말고 가지 본성의 길 직심로를 따라 나아가라 ? 다행히 참 불문에 들어온 것은 아이고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 들어왔나 싶은 생각이 나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보세요. 지금 불문에 들어온 사람들, 우리 한국만 하더라도 또 우리 부산만 하더라도 불문에 들어온 사람 많이 있지만 말이죠, 대개 보면 다른 문으로 간 사람도 있잖아요? 참 이거 복 없으면 안 됩니다. 이 공부는 절대 복 있어야 됩니다. 난 이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슬기가 날카로워야 되지만 복도 있어야 된다. 복이 없으면 공부를 하고 싶어도 자연히 공부를 하지 못하게 돼.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고집이 있어야 됩니다. 고집
사람의 몸 받았을 때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대오반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내 거다 하면서 불구덩이서 죽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고 머무는 것도 아니고 눕는 것도 아니라는 이 도리, 그 당처, 이걸 알았어.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 듣고 그만 알아버리네. 그러하니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부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공부해 주신 거나 한 가지라. 그러니까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꿩 먹고 알 먹는다는 말이 있어요. 가만히 앉아서 부처님이 다겁을 통해서 각고수행하신 그것을 옴싹 받아들였단 말이죠. 그러하니 우리만큼 팔자 좋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어떤 분은 각고 고행을 했어. 금강경에도 나오지 않아요? 칼에 잘리기도 하고 나오지 않아요? 이런데 우리는 말이
가죽주머니는 무정물 색신을 끌고 다니는 법신이 공부를 한다. 법신자리는 나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면 누만겁을 할 수 있다. ? 그러니까 이것을 모르면은 남자는 남자 대로 무슨 고민이 있어. 생사문제도 있고 하니까 잘 산다 못 산다는 거. 남자는 남자 몸 대로 고민을 받아야 돼. 여자는 여자 몸 대로 고민을 받아야 돼. 젊으면 젊은 대로 고민을 받아야 돼. 학교 가서 공부하려면 그거 괴롭지 않아요? 사실에 있어서는. 또 늙으면 늙은 대로 고민을 받아야 돼. 전부가 고민이라. 돈이 아무리 있다 할지라도 고민이라. 그러나 그 자리를 딱 캐치해서 안다 하면은 고민이 있을래야 있을 것이 없지 않아요? 그러하니 지금까지 말한 요 대목이 그 대목입니다. 가는 것도 없고 오는
우리의 몸뚱어리는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없고 앉는 것도, 눕는 것도 없다 법신자리는 죽는 것 아니다 이 도리만 알면 헛것인 이 인생을 굴리는데 참말로 자신이 생긴다 이 대목이 뭣이냐 하면 여래, 여래님, 부처님, 좀 더 나아가서 우리. 인간이란 자체가 뭣이냐 부처란 자체가 뭣이냐 여래님이란 자체가 뭣이냐 이겁니다. 무엇을 여래라 하느냐 방편적으로 말씀한 건데, 여래는 만약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앉는 것도 없고 눕는 것도 없다 이 대목이거든요. 실로 알고 보면 우리의 몸뚱어리도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앉는 것도 없고 눕는 것도 없는 거라요. 왜 그렇노? 내가 이 몸이 집에서 설법 들으러 오고 또 설법을 들으면 가고 이런 건데 왜 없느냐 이런 말이 되겠는데, 가고
새말귀 운전에 비유해보면 손이 핸들을 잡는 것은 지혜가 하는 일 손은 심부름에 지나지 않아 ‘운전 잘 해야겠다’는 마음 빛깔도 소리도 없는 마음자리 ? 어째서 새말귀를 갖다가 만들었느냐? 말귀라 하는 건 선, 화두, 화두가 바로 말귀거든. 말 화자하고 머리 두자 하고 바로 말귀여. 그대로 번역을 하자면 말귀라고 번역을 해야 되거든. 새말귀, 신화두라. 이런 뜻에서 했는데 이 말귀, 화두, 이걸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우리는 가질 수가 있어. 제일 머리에 떠오른 것이 운전수들은 화두 가져서는 안 되거든. 이 화두법이 말이지 생긴 지가 한 천년 됐는가 이래요, 그 전에는 없었어. 어느 것 하나 말귀가 아닌 것이 없지만은 요새처럼 화두니 뭣이니 그 개념이 달라졌다 말이지. 이전과는 달라졌어. 부처님
몸뚱어리도 하나의 환상 부처님의 출현도 환상 환상 아닌 진상 구해야 ? 새말귀는 시간 따로 필요 없다 눈 뜨면 “몸뚱이가 깼다” 식사할 때도 화장실 갈 때도 ‘자체성 없는 나’를 보면 하루 종일이 ‘화두’ ? 본래 그 자리가 밝은 것인데 밝은 것이 어떻게 보이나요? 뵈. 봤던 예사로 봐. 밝다는 이런 인식조차도 없어. 원래 밝은 것도 아니고 어두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밝은 것이 보여. 또 어두운 것이 보인다 말이지. 그러면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이 자리가 진짜라 말이여. 앉을 때는 그걸 봐야 돼. 그걸 한 번 보고 싶다. 이거 보입니다. 앉았어. 캄캄한 데. 밝은 것도 아니고 어두운 것도 아닌 것을 이것을 한 번 보리라 하면 나타나는 거여. 처음에는 이거 나타나지 않습니다
운전수도 은행원도 백정도 각각의 환경에 맞는 새로운 화두가 필요하다 이것을 ‘새말귀’라 명명 ?만약 운전수가 자동차를 잘 운전하겠다는 생각만 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새말귀’ ?일 할 때 열심히 일하고 참선할 때 다 놓아야 ?또 이전과도 달라야 돼. 예를 들어서 화두도 스님네들이 가지고 있지 보통 사람들이 가지면 안 된다 말이여. 그건 시간적으로 용납이 안돼. 이거 맞지 않습니까? 시간적으로 용납이 안돼. 운전수가 화두 가지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안돼. 안 된다면 운전수는 말이지 중생 아닌가? 은행에 다니는 사람 화두 가지면 되겠습니까? 은행에 다니는 사람들은 수판 놔야 되거든. 그러면 그 사람들은 말이지 중생 아닌가? 그 사람들은 인생문제 해결하지 말라는 법 있나요? 이러하기
24시간 화두 드는 건 스님들을 위한 수행법 입산수도를 못하면 그대로 방편 있기 마련 ? 일반 사람들은 화두 가지면 안돼 생업전선에 뛰어든 재가자들에게 맞는 새로운 수행법 필요 ? 앞으로도 백년 후 천년 후 만년 후에도 출가라는 법은 있을 겁니다. 그럼 출가 안 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것이 문제에요. 우리가 똑 같은 중생인데 어떤 분은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서 팔자 좋게 공부를 해. 그러나 중생들은 팔자가 좋지 못합니다. 공부할 팔자가 없습니다. 없는데 하나의 고집을 가지고 하게 되는데 다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지는 못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포기를 해야 되느냐. 이거 아닙니다. 부처님도 포기한 것 아닙니다. 일체 중생이 개유 불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잣나무밭에서 이는 소리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화두를 가지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석가세존·원효대사처럼 여러분도 가능해요 나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차별 현상이 전부 듯 아니에요? 그러하니 그걸 참작을 해서 여러분이 한 번 생각을 해 보시라 말입니다. 이 달 중으로 생각하세요. 우리 진짜 공부합시다. 여러분, 설법 듣는데 상식적으로 듣지 마세요. 상식 그 까짓 거 또 가지면 뭐합니까? 상식을 가지고 우리가 생사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그러하니 우리 진짜 공부를 해 보자 이 말입니다. 그러하니 어떻든지 여러분들이 이건 이 달 중으로 해답을 하도록 노력을 하십시오. 노력을 하시고 아시거든 종이에 이름을 써서 나한테 내 주십시오. 내 주면 옳으면 옳고 또 잘 안 되었으면, 고칠
차별현상은 전부 듯임을 철두철미하게 실감이 가면 내 행동도 듯임을 깨달아 누리·허공은 하나 허공에서 숱한 차별 현상 일어나는 것만은 사실 차별 현상 일어나는 것 당연 ? ? 듯하다 ③ ? 그러나 자기의 망심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경계에 닿질려서 일어나는 망심 이건 전부 헛것입니다. 그럼 내 꾀에 내가 속아 넘어가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의 본래의 그 청정심, 이거 믿을 수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단지 이 세상에서 믿을 것은 자기 밖에 없습니다. 물론 내외간에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 그건 문제가 다른 거예요. 이렇게 믿는 거와 내가 금시 말하는 믿는 것과는 문제가 다른 겁니다. 그건 듯 속에서 노는 거예요. 듯 속에서. 좋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 그리 하는 것이지 참말로 생사
허공은 하나이니 진리가 하나 우리 몸뚱이도 헛것 나툰 것 살림살이 이루어서 사는 듯 ‘듯 속에’ 놀고 있다 몸 밖 아닌 내면에서 진짜를 찾아야 ? 그럼 여러분이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경계인 듯. 그 경계를 인식하면 성품 따로 없는 거이. 경계라는 건 말이죠. 산하대지인 듯이지 만약 산하대지가 듯이 아니고 진짜라면은 하늘과 땅이 생기기전부터 계속해서 허공으로 더불어서 죽 변하지 않아야 듯 자가 안 들어가는 거예요. 생겼다가 나중에 없어지는 것이고. 물론 그 자체가 허공성이고 하니까 산하대지인 듯 아니에요? 우리의 몸뚱이도 난 듯, 늙은 듯, 젊은 듯. 죽는 듯 이거 아니에요? 전부 지금 듯 판에 노는 거예요. 내가 말하는 듯 여러분이 설법 듣는 듯. 이거 아니에요? 이 듯을 참으로만 다
일체법의 경계 인식하면 어느것도 경계 아닌 것이 없고 ‘경계와 성품’ 둘 아닌 것 알게 돼 기쁨·젊음 등 영속되면 ‘병’ 있는 것은 장차 없어질 것이며 진짜가 아니나 ‘듯하다’할 뿐 소승도는 인연에 굴리이지만은 상승도는 우리가 인연을 씀이니 일체 법에 머물지 않으면서 일체 법에 굴림이다. 우리가 일체 법에 머물지 않으면서 되돌아서 그 일체 법을 굴리는 겁니다. 그러하니 여러분 우리가 제일 첫째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일체법, 경계. 그 경계를 인식하면은, 이 촛불도 경계입니다. 우리의 몸뚱이도 경계, 어느 것 경계 아닌 것이 없습니다. 지구도 경계, 태양도 경계, 그 경계를 인식하면은 성품 따로 없는 거이, 그 경계를 인식을 하면 알면은 그 말입니다. 성품은 따로 없습니다. 그 경계를 인식하면 성
모습은 인연관계로 굴리어져 하나의 용서도 없어 용서 빌 사람도 없고 용서 받을 사람도 없어요. 나사못 하나만 틀려도 비행기가 떨어져 그거 무섭습니다. 거짓말이든 참말이든 법성계 안의 소식 ? 북소리 [시] (홑첨지) 달바위 너에게 묻노라. 이제로부터 이천년 전에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북을 쳐서 호병 십만을 살수에서 무찌른 사실을 아느냐. (달바위) 압니다. (홑첨지) 그때 두둥 울렸던 북소리는 어디로 쫓아왔느냐. (달바위) 북으로부터 쫓아왔습니다. (홑첨지) 아니다. (달바위) 채로부터 쫓아왔습니다. (홑첨지) 아니다. (달바위) 북과 채가 마주친 데로부터 쫓아왔습니다. (홑첨지) 어찌 소견머리가 그 따위냐. 아니다. 다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천 년 전에 을지문덕
자체의 성품이 없으니 누구라도 쓰면 주인이라 했네 또 내가 쓰면 내가 주인이 된다 ?중생 병이 색상신만 보는 것. 색신 곧 법신, 법신이 곧 색신 색상신 걷어잡으면 법성신 알아. ?이건 자체성이 없어. 태양도 하나의 모습이거든, 돌멩이도 하나의 모습, 이 꽃도 하나의 모습이지? 어떠한 거든지 모습으로서의 물건은 실다운 것이 아니에요. 물론 늘 변하지만 말이지. 지금 이 꽃도 자꾸 변하고 있어요. 변하면서 있기 때문에 실다운 것이 아니에요. 자, 그렇다면 이 사람을 머리털 눈부터, 코는 원숭이 코로 해서 눈은 개 눈으로 해서 전부 바꿔 놨는데 어머니하고 관계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그러나 저러나 이건 뭣이냐. 모습이거든. 그렇다면 실다운 것이 아니라는 이런 결론이 나거든. 그러면 여러분의
일본 사람의 다리를 붙이고 중국 사람의 양팔을 붙여서 자신의 몸이 바뀐다면 당신의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당신 아내를 아내라 할 수 있나? 어떠한 모습이라도 태양으로부터 저 별까지 돌이나 나무나 모습 있는 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것만 아세요 수술 법문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만약 너의 병든 양쪽 다리를 끊어내고 갓 죽은 일본 사람의 알맞은 다리로 바꾸어 붙여서 무병인을 이루었을 때 너의 어머니는 너의 어머니요 너의 아내는 너의 아내요 너의 자식은 너의 자식이라 일러도 좋겠는가? 일본사람 다리에요. 요새 그리 될 겁니다. 의술이 발달해서. 이 뇌도 수술한다니까 될 겁니다. 그러니까 다리는 일본 사람의 그걸로 바꿨어요. 집에 돌아가면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고 어머니도 있어. 대답이 어떻노
허공 걷어잡지 않고 마음을 알았다면 그건 만년 거짓말입니다. 허공이나 마음이나 매한가지 헤겔도 마음자리 파악못해 ? 왜 눈이 보는 것 아닌고? 눈에는 지혜가 없어. 그러니 비치긴 비쳐도 볼 줄 모르거든. 보는 놈은 따로 있거든. 눈에 비친 걸 보는 놈이 따로 있어. 인제 이렇게 알아가야 됩니다. 귀가 듣는 것 아니라 말이여. 귀에 지혜가 없거든. 그런데 듣기는 듣는 기관은 기관일지언정 말이지 그 아는 놈은 따로 있거든. 이것이 뭣꼬? 혓바닥도 마찬가집니다. 이걸 마음이라고도 하고 뭐라고도 하는데 도대체 마음이 뭣고? 뭣이냐 말이여. 뭣이 마음이냐 말이여. 사실로 마음 아는 사람 좀 드뭅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현재 마음을 아는 사람 백 명 될까 말까 그렇습니다. 백 명이 못 되면 오십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