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想念)절 마당을 지날 때마다한 편에 쌓인 기와들은남의 일 같지 않다조용히 적힌 이름들이이유 없이 다가와 머문다어쩌다 홀로 하는 식사처럼적적한 그림자와 마주한다어느 날은 어머니가어느 날은 아버지가어느 날은 멀어진 친구의 이름이그 그림자를 지난다
유월 산중산새의 지저귐만 듣고 살면언젠가 새들의 말을 알아들을까아니더라도, 하루에 한 번 쯤새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개울의 물소리만 듣고 살면너의 마음속을 물처럼 흘러갈 수 있을까아니더라도, 하루에 한 번 쯤너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꽃만 보고 살면눈에서, 손과 발에서 향기가 날까아니더라도, 하루에 한 번 쯤꽃처럼 한 빛깔로 살 수 있을까
목어와 나비와 나5월은 어떻게 가고있나담장마다 붉은 장미는 피고새나 사람이나 하루는 짧고동쪽은 동쪽대로 서쪽은 서쪽대로만나야 할 것들잊어야 할 것들숲의 나무였던 木魚와잠이 삶이었던 나비와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기억할 수 없는 시절이 5월은 또 그렇게 가고 있다
4월하고 초파일비 내린 자리엔 올 것들이 다시 오고바람 분 자리엔 다시 흔들리는 것들새는 날아서 오늘을 기억하고나무는 짙어서 내일로 간다그렇게 숲은 여법하고 여법한데사람으로 태어나 사람 하나 만나는 일이 어렵고부처로 태어나 부처 되는 일이 제일 어려우니4월하고 초파일곳곳에 연등이 걸린다
범종소리아쉬운 하루가 저문다억겁 끝에서 또 한 번하늘은 깊어가고지나간 일들은 이마를 맴돈다아쉽고 또 아쉬운 봄날범종소리나 들었으면쇳덩이 되어 남고 종소리 되어 떠났으면범종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나 때문일 걸 알게 된 저녁나뭇가지엔 꽃들이 돋고먼 하늘엔 흰 달이 보인다
만사여의(萬事如意)전생의 기억을 잃어짧은 숨 한 줌마다수없이 나는 많고언제 불어올지 모르는바람과언제 사라질지 모르는나 사이에작은 법당이 하나타오르는 향이 하나유정이 무정에 끌리는오늘이 하나
어느 길에서산꼭대기 작은 암자 들러절 세 번에 많이도 바라고하산은 부끄러워길 끝서마주친 나무 한 그루 뒤엔그리운 것들아쉬운 것들미안한 것들그래서 가슴을 흔드는 것들발등의 불을 끄듯걸어온 길들이여다시 길 끝서 그 길을
부고(訃告)산에 오르니산은 사라지고몰랐던 한 소식우두커니 바라보니그 대목이 뜨겁다각자 그렇게…뜨겁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기억 하나에 밤은 깊고그 이름 하나에 길은 또 멀어졌다한 소식 위에‘삶’이라 적는다
월동마침내나무는 계절을 깨닫고그리하여 숲은 게송으로 그득한데부처의 수기는 끝나지 않는가지울 수 없는 글자는석탑 위에 다시 쌓인다그렇게 수없이 부처를 만나온 것을돌고 도는 석탑의 그림자가 만다라였음을탑전에 찬바람이 스친다
나의 이름나의 이름이나 없는 세상에 남게 될 때나의 이름은누군가의 말(言) 속에 남기보다는누군가의 가슴 속에 남기보다는누군가의 발자국 위에 남고 싶다눈 내리는 날,산사로 가는 흰 발자국에 한 번기도하는 맑은 발자국에 한 번풍경소리에 길 잃은 발자국에 한 번
오늘을 맞는다는 것저녁 창을 바라보는 일에도이유 하나쯤은 있는 것인데다한 것들을 스치는 일에는붉어진 눈 한 켤레쯤 있어야 하리‘오늘’은 그런 것이니말없이 살아가는 모든 것들과말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것들이이 아침에 다시 만나는 일에는꽃보다, 하늘보다, 바람보다더 오래된 가슴 하나는 있어야 하리
生이여… 누가 놓고 갔을까이 뜨거운 한숨을이 무거운 시간을작은 촛불 마다켜켜이 생은 쌓이고뜨거운 촛농은 법문처럼 떨어진다두 손을 포개겨우 열 개의 손가락을 만들고두 눈을 감아겨우 촛불을 끄고生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