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은 왜 서쪽에 있을까? 동쪽은 해가 뜨는 근원의 자리로 본각(本覺)인 불성(佛性)을 나타내니 금덩이와 같고, 서쪽은 완성된 자리, 시각(始覺)인 부처를 이룬 것이 마치 세공된 보석과 같다. 들어갈 때 반드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수기라는 약속을 받아 갈 수 있는 극락부처학교는 그 입학자격 자체가 스스로 원해야 갈 수 있다. 평소 염불로 자신이 원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죽어서도 갈 수 있는 곳, 또한 살아서도 극락을 만들어갈 수 있다.평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곳에 갈 수는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사람답게 사는 법이 있으니
극락세계는 어디에 있을까, 십 만억 국토를 지나간 우주 저 편에 있다고, 마음에 있다고 한다.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도 있고, 또 내 삶에도 극락은 있다. 극락은 과거 무량겁 전에 세자재왕 부처님께 법장스님이 부탁해서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되는 학교를 건립한 것이 바로 극락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10가지 선업수행으로 인생을 잘 살고 나면 극락부처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진다.모르는 사람들이 극락이 우리가 가는 가장 최고의 장소인줄 알지만 그 곳이 끝이 아니라 다시 9개 반(九品)으로 나뉘어 마음공부와 실천하면 그 때 비로소 니
〈유마경〉을 읽는 내내 나는 유마거사의 ‘청정한 마음이 정토를 만든다.’라는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청정하다는 것이다.“어리석음과 탐욕과 성내는 마음으로부터 내 병이 생겼다. 모든 중생이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으니 만일 모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그때서야 치유된다.” 는 말처럼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는 보살의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항상 부처님처럼 살며,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해 신명을 다 바쳐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보살,
은 부처님 당시 최대 상업도시인 바이살리(Vaisali)를 무대로 펼쳐지는 재가불자인 유마거사와 부처님제자 33인들과의 토론과 침묵, 그리고 법문을 다룬 경전이다. 유마는 누구 길래 부처님의 제자와 법거량을 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해본다. 부처님 경전에 등장하여 설법을 한 승만이나 유마거사는 두 말할 것 없이 인격과 덕행이 뛰어난 인물이다. 유마의 삶에서 가장 잘한 일은 첫째는 한량없는 부처님께 언제나 공양을 올려 선근(善根)을 깊이 심어 이타행(利他行)을 잘 한 것이다. 모든 생명들에게 생존에 관한 공양물은 물론이고 진리
수보리가 기원정사의 사리불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하자 급고독(수잣타)장자는 집안의 경사라며 무척 좋아했다. 코살라국에서 출가한 유일한 인물이 자기 조카이니 그를 위한 지원을 하는 것은 어떤 것도 아깝지 않았다. 매일 기원정사에 와서 부처님을 뵙고 나면 조카스님을 보고 가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되었는데 정작 수보리는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웠다. 공부하려고 앉아 있으면 그가 왔다갔다 하는 모습 때문에 마음을 집중할 수도 없고 원망이 쌓여갔다. 그 흔들리는 마음을 해결하지 않으면 공부가 진전이 될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부처님께 상담하게 되니
〈金剛經〉은 불교서적 중에서 영원한 베스트셀러다. 삼국시대에 전래되어 고려중기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초심자들이 공부하는 경전으로 독송을 권한 이래로 조계종의 소의경전이 된 지금까지 모든 스님들과 신자들의 사랑을 받는 경전이다. Vajra-cchedika-prajna-paramita -Sutra(바즈라 체디까 쁘라즈나 파라미타 수트라)는 구마라즙, 보리유지, 진제에 의해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한글대장경 제 243책 pp113~167에, 현장과 의정에 의해 번역된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은 제 206책 pp450~488에 실려 있다.
부처님에 관한 전생과 현생,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들은 너무 많은데 정작 부처님이 어떤 삶을 살았으며 제자들은 어떻게 가르쳤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성도하신 후 45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하신 부처님의 삶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경전이 바로 〈불본행집경〉이다. 부처님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율장을 중심으로 수집되다보니 너무나 인간적인 부처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아마도 부처님을 위인전 스타일로 삶에 집중해서 쓸 것인지, 그의 사상을 중심으로 문학적으로 쓸 것인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엄청난 양을
앙굴리마라는 다가 갈수록 점점 멀어지는 부처님보다는 울며 다가오는 어머니의 손가락을 취하는 것이 쉽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부처님이 앞으로 나오셨다. “앙굴리마라여, 보아라, 나는 이미 멈추어 있느니라. 머물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자네다. 하늘은 누굴 죽여야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대는 참으로 가엾은 사람이다. 바로 이 나무 아래가 그대가 태어난 곳이며 어머니가 너를 안고 기른 곳이다. 어찌 그곳에서 어머니를 살해하려고 하는가? 나쁜 스승의 가르침 때문에 끔찍한 살생을 하고 이제 어머니까지 해치려는 것을 보니 너는 세상에서 제일
우리들 인생 속에서 나를 바꾸게 했던 이들과 만났을 때를 확실히 기억할 수 있을까? 그 당시에 대부분이 모른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를 만나 내 인생이 더 윤택해지고 빛날 수 있었음을 기억하며 존경의 마음이 드는 분, 바로 스승이다. 불자에게 부처님은 위대한 스승이다. 스승이라 불리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알게 하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앙굴리마라, 사람을 죽이고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드는 살아있는 악마의 화신인 그를 제도한 부처님의 이야기는 〈한글대장경〉12권인 〈불반니원경〉에 있는 〈불설앙굴계경〉 pp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절절해진다. 부모님의 은혜에 관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는 〈불설부모은중경〉이 잘 알려져 있고, 부모님의 은혜를 갚기 위한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부모은난보경〉이 대표경전이다. 부처님은 오백 번의 생을 사시면서 선업을 많이 쌓아 그 공덕으로 부처님이 되었다. 부처님의 전생 중에서 부모의 마음이 잘 나타낸 〈불설녹모경〉은 사람의 부모이야기가 아니다. 축생의 삶을 통해 살생하는 이의 마음을 움직여 한 나라에 사냥금지령을 내리도록한 가르침이 담겨져 있다. 일본
며칠 전, 엄마 따라 법회에 나온 아이가 물었다. “교회 다니는 친구들이 부처님은 인간이고, 하나님은 신이니 신보다 낮은 인간인 부처를 믿지 말라며 교회다니자 해서 속상했어요.”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하렴, 하늘 천, 사람 인, 스승 사. 천인사(天人師), 너희 천인사가 뭔 줄 아니? 그럼 분명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늘의 신들과 인간의 스승이신 분은 오직 우리 부처님 한 분 뿐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나는 부처님을 믿는 사람, 종교는 행복하기 위해 믿는 것이다. 그러니 터치(touch)하지 마.”곁에서 듣던 보살들은
부처님의 소개를 받으며 지장보살이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께 예배찬탄공양하며 등장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호의문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부처님이시여, 지장보살이 뭐하는 분입니까? 그가 사는 불국토는 얼마나 부자 길래 저희에게 이런 선물을 주는지요? 저는 그동안 부처님께서 이처럼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가 지은 공덕은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이렇게까지 칭찬을 하시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아마도 자신이 보기엔 그냥 신통력이 있어서 우리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보배장식 옷을 입히고 여의주를 주는 퍼포먼스를
어느 날 나는 부처님의 가호와 가피가 너무나 간절했다. 내 모든 힘이 다 소진되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정진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물러날 힘도 없었다. 그 무렵 벌판에 있는 논에 붉은 흙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농부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진흙에 가까운 흙이 있는 논을 밭을 만들기 위해선 흙을 바꿔주거나 땅을 깊이 파서 흙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농사를 짓고 나면 땅이 그 힘을 잃어 좋은 작물을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땅의 힘을 북돋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땅도 변화하려 할 때나 혹은 힘을 잃으면 이렇게 힘을 실어
불자는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났을 때 굳건히 깨트려 버리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마음을 따라 흘러가게 한다면 우리의 삶은 롤로코스터를 탄 것처럼 온갖 평지풍파를 겪을 수밖에 없다,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은 천수경을 통해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탐진치(貪瞋痴) 3가지 불행한 요소를 행복을 만드는 계정혜(戒定慧) 3가지 청정하고 맑은 지혜를 배워서 고쳐보라고 한다. 3독(毒)을 3학(學)으로, 불행한 오늘을 행복한 내일로 만드는 법이다. 10가지 원력으로 보리심을 낸 불자들은 6향으
모든 법회에서 불자들의 다함께 외우는 경전은 〈천수경〉과 〈반야심경〉 딱 2개뿐이다. 〈천수경〉은 우리들이 불교를 어떻게 믿고 신행할 것인지에 대한 모든 맹세가 다 담겨져 있기 때문에 법회시간에 독송하는 모습을 보며 숙연해진다. 〈천수경〉은 우리의 결연한 의지를 담은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여시아문’ 스타일의 경전은 아니다. 후대에 만들어졌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롯이 담고 있기 때문에 경이라 하기도 했고, 〈천수경〉을 탄생시킨 모본이 이미 있다.바로 〈불설 천수천안관세음보살 광대원만무애대비심 다라니경〉 혹은 줄여서 〈천수관음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모든 고통과 재앙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자(起) 사리불은 관자재보살에게 반야바라밀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묻는다(承). 관자재보살이 답하기를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려는 이는 반드시 만물을 공성(空性)으로 파악하는 안목으로 실천행을 하라고 한다.(轉). 그러자 부처님은 관음을 지극히 칭찬을 하시고, 대중들은 기쁨으로 이 경전을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하며 끝난다(結).광역반야심경은 완전한 기승전결의 구조 속에서 관세음을 통해 우리가 행복이라는 집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한국인에게 있어서 가장 기억되는 불경은 〈반야심경〉일 것이다.모든 법회에서 사용됨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일상에서 통용되는 단어들 가운데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쯤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 〈반야심경〉이 팔만대장경 속에서 이토록 우리들의 사랑받으며 기억되고 있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위해 꿈을 갖는다.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점차 부처님이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깨달음이라는 행복을 찾는다. 깨닫고 난 뒤에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진정한 깨침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
〈승만경〉은 여성으로써 부처님께 수기를 받고 사자후, 즉 설법을 한 경전으로 〈유마경〉과 더불어 재가자의 설법으로 쌍벽을 이루고 있다.한글대장경 〈대보적경〉119권 48 승만부인회(勝滿夫人會)와 〈무량청정평등각경〉,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勝滿獅子吼一乘大方便方光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승대방편의 뜻을 사자후, 즉 설법한다는 것이다.한마디로 멋있다. 부처님의 법에는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고 했지만 그들이 속한 사회구조 속에선 여전히 카스트제도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부처님
〈소부(小部)〉. 즉, 〈쿳다까니까야〉에 주옥같은 경전들이 많지만 특히 진리의 말씀(Dhamma pada)인 〈법구경〉은 부처님께서 우리들의 고민과 외로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세밀하게 설해져 있다. 〈법구경〉은 26개의 장에 423편의 시(詩)로 이루어져 있다. 26장의 품들은 ‘오늘’은 인간에 대한 행동규범에 관해서, ‘깨어있음’은 검소하고 근면한 삶을, ‘마음’은 마음에 관한 긍정적이며 동시에 부정적인 면을, ‘꽃’은 들꽃에 비유하여 우아하고 섬세한 불멸의 세계를 가르치고, ‘어리석은 이’에서는 어리석음에 대하
〈소부(小部)〉는?〈쿳다까니까야〉로?모두?15경으로?이루어?졌다.?보통?한역대장경으로?번역되지?않았다고?하지만?〈담마빠다〉는?〈법구경〉,?〈자따까〉는?〈생경〉,?〈이티붓타카〉은?〈본사경〉으로?〈숫타니파타〉는?〈의족경〉으로?이미?번역되어?있다.?그?중?부처님의?설법?중에서?가장?오래된?가르침이며?5장?70경.?1,149의?시(詩)로?이루어진?〈숫타니파타〉는?그?중?최고의?경전이다.?중생의?아픔을?꼭?집어?맺혀있던?번뇌의?마음을?시원하게?풀어주고?있기?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종교를?초월해?가장?많이?읽히는?〈숫타니파타〉는?부처님이?깨달음을?이루기까지?겪은?구도자로서의?경험을?바탕으로?제자에겐?어두운?밤길에?함께하는?등불과?같은?지혜의?경전이다. ? 큰?소리에도?놀라지?않는?사자와?같이?그물에?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