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남시 신통사지 사문탑 最古 청석을 벽돌처럼 쌓은 모전탑 형식 분황사 모전탑과 연관 가능성 퇴적암 모래와 자갈 결합된 청석은 오래될수록 고색창연, 내마모성 장점 용호탑…석탑(기단)+전탑(탑신) 형태 화려한 부조상이 특징 한·일 부조상과 연관성 존재 대부분 스님 사리 봉안한 ‘승탑’ 우리의 부도와 같은 개념 ‘부도’는 잘못 ‘승탑’으로 불러야 지난 호에 간략히 언급한 것처럼 정각식탑은 중국의 전통 건축양식인 정각위에 인도의 불탑이 탑찰 형식으로 올라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조성된 불탑을 말한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각식탑은 제남시 신통사(神通寺)유적지에 남아있는 일명 사문탑(四門塔)〈사진1〉이다. 원래 신통사는 전진(前秦)시기의 황시 원년(皇始 元年: 35
밀첨식, 동한·남북조시대 유행 현존은 수·당시대 이후 것 혜초 스님 9일 동안 머물렀던 선유사 법왕탑 1400년 最古 당 이전 4각, 이후 8각 대세 황실 지원, 대규모·조형성 우수 적봉시 대명탑엔 8대보탑 장식 8대보탑 기록 〈대승본생심지관경〉 불탑과 동일시, 경전 안치 계기 지난 호에 이어 밀첨식 불탑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중국에서 밀첨식 불탑이 유행한 시기는 동한시대(25~250)와 남북조시대(220~589)부터이지만, 현존하는 것은 수당시대 이후의 것이다. 수나라시대(581~ 618)에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서안에 있는 선유사(仙遊寺) 법왕(法王)탑〈사진1〉은 1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사찰로 풍광이 수려해 백거이가 이곳에 관리로 있을 때 현종과 양귀비의
누각식석탑, 남송시대 가장 많아 화강암 생산지 복건성에 집중 강남 제일의 불탑 서운사탑 용어, ‘상륜부’ 아닌 ‘탑상부’로 유리탑, 풍화 부식 방지 효과 대보은사탑서 두정골사리 출토 남북조시대엔 금속으로도 장엄 당 이후 탑 전체 동이나 철로도 지난 호에는 중국에서 벽돌을 주재료로 조성한 누각식 전탑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번 호에는 돌을 주재료로 한 누각식 석탑에 대하여 알아보고자한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인 산서성 숭복사 경내에 있는 숭복사 석탑(467년)에 대하여는 이미 언급한바 있다.(본 연재 제14회 참조) 그러나 중국에서 누각식 석탑은 남송시대에 가장 많이 조성 되었으며, 지리적으로는 화강암(花崗巖)의 생산지로 유명한 중국 남부의 복건성(福建省)에 집중되어 있다.
현존 중국불탑 중 전탑 가장 많아 명나라 이후 목·석탑 거의 없어 벽돌 사이 식물 서식 단점 황토진흙→황토왕겨→석회 진화 자은사 대안탑 대표 누각식 전탑 경림사탑 목탑 이상 화려 정교해 천청사탑, 개봉지역 현존 最古 1천여개 벽돌 일일이 불상 조각 지난 호에는 나무를 주요 재료로 조성한 누각식 형태의 목조탑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번 호에는 벽돌을 주요 재료로 하는 전탑(塼塔)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벽돌은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인공건축자재로 약 8,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6,000년 전부터 메스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기 시작하여, 바빌론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의 여러 나라에서부터 고대의 벽돌제조기술이
당나라 이후 다양한 형태로 조성 당양식 중국 전역에 100기 넘게 현존 사각형 고층 누각식, 밀첨식 주류 목조 내구성 한계 전탑으로 변형 목탑, 전탑, 석탑 순으로 발전 불탑을 군사적 목적으로도 건립 지난 호에는 동한시대에 불법이 전해진 이후 수(隋)나라 시대까지의 불탑을 알아보았다. 이번 호에는 당나라 이후 다양한 형태로 발전된 중국 불탑의 조성과 변천을 알아보고자 한다. 단명 했던 수나라와는 달리 당나라(618~907)는 비교적 정치적 안정 속에 불교문화가 꽃을 피운 시기이다. 중국 전역에 100여기가 넘게 현존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시기의 조형적 특징은 사각형의 고층 누각식과 밀첨식이 주를 이루지만 6각형과 8각형의 기단이 등장하며, 내부에는 예불공간이 확보되어
남방 불탑-불교사상 표현 중국 불탑-사리신상 배경 남방의 ‘영구매납’ 안 따르고 친견방식 택했던 것으로 짐작 초창기 동한시대 불탑 전무 남북조시대 많은 불탑 조성 현존 最古-숭복사 9층 석탑 ‘누각식’이 역사 길고 가장 많아 탑 내부 계단으로 정상까지 이동 수양견 아쇼카왕 이어 113개 조성 기록만 남고 전란으로 모두 소실 부처님의 유골을 봉안하기 위하여 인도에서 시작된 불탑은 남방 불교에서는 불교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기본적인 조형상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북방불교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는 불교 수용 이전부터 어느 정도 체계화된 고층 누각의 건조 기술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북방불교의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세계 7대불가사의 중 하나 높이40m 무게350만t 25cm×15cm 돌 200만개 축조 3000개 벽면 조각 상상초월 상상초월의 불탑신앙 있어 가능 축조과정 현대인들 짐작 못해 비교대상 찾아보기 힘들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만다라’ 내부에서 시작 외부로 축조 추측 석굴암 천장구조와 비슷한 공법 수세기 동안 흙 속에 묻혀 있어 1814년 발견 유네스코 지원 복원 본 글의 제목은 ‘탑의 진화’이다. ‘진화’라는 단어는 생물학적 용어로 일반적인 의미는 생물이 일정한 조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도태되어 점차 간단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하등한 것으로부터 고등한 것으로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불탑의 경우는 시대에 따라 반드시 발전되어 진화되지는 않았다
바이욘탑, 높이 43m 불탑형식 사원 자야바르만 7세, 국가적불사로 조성 대승·소승불교 힌두교 복합유물 중앙 탑 중심 4면에 사방보살상 내부회랑 160m에 다양한 조각 앙코르 역사 한편의 드라마로 타프롬사원 ‘브라만의 조상’이란 뜻 자야바르만 7세, 모친 극락왕생 위해 1000m×600m 안에 39개 탑 등 조성 중심건물에 부처님 유성출가상 조각 한몸인 나무 보살펴야 사원 유지 ? 16세기 초기에 포르투갈 난민들은 네델란드 군인들에 의해서 수마트라에서 쫓겨나 캄보디아의 수용소에 거주하며 앙코르지역의 유적을 답사할 수 있었다. 이시기에는 중국, 일본, 아라비아, 스페인 등의 많은 상인들이 캄보디아에 거주하여 앙코르의 유적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이 앙코르의 유적에 대
1200년 전 크메르인이 조성 브라만, 불교 등 다양한 사상 반영 세계 7대불가사의 중의 하나 자야바르만 8세 불교배척 후 1431년 앙코르왕국 멸망하고 1년만에 수십만 앙코르인들 사라져 ‘앙코르 왓’은 ‘도시의 절’이란 뜻 37년 건설에 2만5천명 동원 서쪽 향하는 건 ‘서방정토’와 상통 ‘앙코르’라는 말은 범어로 도시를 뜻하는 ‘나가라(Nagara)에서 노코르(Nokor)-옹코르(Ongkor) - 앙코르(Angkor)로 음운 변화한 것이다. 이처럼 도시라는 의미의 앙코르는 약 천이백년전에 크메르인에 의하여 수백 개의 사원과 탑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긴 세월동안 역사에서 사라져 밀림 속에 방치되었다가 근세에 알려져 앙코르 왓, 프놈바게임, 앙코르 톰, 바이욘, 바푸온, 코끼리 테라스,
쉐산도 불탑-마얀마 불탑의 전형 모래탑 쌓다 죽은 아이들 도솔촌에 보기 드문 5각형 기단의 담바야지카 골든락 일생 3번 참배로 소원성취 ‘탑 지지하는 바위는 부석’ 주장도 지난 호에 이어서 미얀마의 바간에 있는 수많은 불탑 중 건탑의 의미와 조형성이 뛰어난 몇 기를 알아보고자 한다. 1) 쉐산도 불탑 ‘황금의 부처님 머리카락’ 이라는 뜻의 쉐산도(ShweSanDaw)불탑〈사진1〉은 바간 왕조의 초기인 아노라타 왕(Anawrahta, 1044~1077)이 조성하였다. 이 불탑은 바간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 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일출과 일몰의 장관을 체험하기 위하여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는 불탑이며, 마치 불국사 삼층석탑이 우리나라에서 석탑의 조형적기준이 되었듯이 미얀마
바간, 과거 450만개 불탑 조성 몽고군에 의해 2000개만 남아 신앙적·예술적·건축적 불가사의 조탑 공덕에 대한 가르침 결과로 숭고한 불심만이 할 수 있는 불사 쉐지곤…미얀마 불탑의 모델 ‘아난다 불탑’ 아난다존자와 관계없어 만달레이 서남쪽에 소재한 바간(Bagan)은 한 때 약 450만개 이상의 불탑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고려 말에 몽고족인 원나라에 의하여 전 국토가 황폐했듯이 불탑신앙의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바간도 몽고군의 말발굽에 짓밟혀 지금은 약 2,000여기의 불탑만이 한적한 시골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인도네시아의 보로보두루와 더불어 세계 3대 불교유적지로 칭송 받는 바간의 불탑〈사진1〉들은 그 규모와 수량 면에서
불탑신앙 세계제일, 불탑 450만 개 세존 두발, 과거불 유물 3종 봉안한 ‘쉐다곤 불탑’은 미얀마의 상징 높이 100m 70톤 금판 녹여 개금 상부 다이아몬드 5,448개 등 보석장엄 초기엔 높이 22m, 1774년 현재 규모로 ?불탑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번 호 부터는 미얀마의 불탑에 대하여 알아본다. 미얀마라고 하면 ‘미소의 나라!’, ‘황금의 나라!’ 등 여러 미사어구가 붙지만 ‘불탑의 나라!’라고 칭하는 것만큼 잘 어울리는 표현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체 국민의 90% 이상이 불자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불탑신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나라이기에 약 450만개의 불탑이 현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수도 양곤 중심가에 있으며, 미얀마의 상징인 쉐다곤 불탑에 대하여 먼저
부처님 성불자리 마하보리대탑 조성 불교 4대 성지 중 가장 성스러운 곳 터키군 침공 폐허·미얀마 왕 복원 한동안 힌두교 사원으로 오인 고승 담마팔라 등 ‘불교성지화’추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수자타 여인의 유미죽 공양을 받은 고타마 태자는 네란자라 강을 건너 보리수 나무아래 자리를 마련하여 깊은 선정에 들었다. 마침내 새벽하늘에 샛별을 보는 순간 마음속의 욕망과 잡념이 사라졌다. 드디어 깨달음을 방해하던 마왕을 물리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체득한 것이었다. 고타마는 이제 더 이상 수행자가 아니라 성불을 이룬 부처님이 되셨다. 이 성스러운 깨달음의 장소를 기원전 3세기에 아쇼카 대왕이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보리수나무 밑의 금강좌를 중심으로 동쪽에 불탑을 조성하였다.
불탑 도는 ‘탑돌이’ 부처님 예배하는 것 대탑·3탑 ‘탑돌이’ 위한 ‘요도’ 설계 오른쪽 회전은 태양계 회전 동조 3탑에서 사리불·목련 사리 발견 지난 호에는 불교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조성한 산치 제1탑의 구조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러한 산치 제1탑의 탑문을 지나 탑신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탑을 돌 수 있는 통로〈사진1〉가 있다. 이 통로를 요도(繞道)라 부른다. ‘휘돌아 가는 길’이란 의미의 요도의 용도는 탑돌이를 하기 위함이다. 불교에서 탑을 도는 의식은 여러 신행활동 중 중요하게 강조 되었던 수행 방법의 하나였다. 이는 여러 경전에서 탑돌이 의식을 강조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경전에는 탑돌이를 하는 이유와 방법 그리고 공덕 등에 대하여
‘불교종합센터’로 불리는 산치 불탑·승원터·사당터 수십개 현존 아쇼카왕 전설 깃든 제1탑 높이 16.5m, 직경 39m의 대탑 경주 분황사탑과 비슷한 ‘모전탑’ 아쇼카왕의 8만4천 불탑의 조성을 계기로 고대 인도의 불교문화는 불탑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과거에는 인도 각지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불탑이 그 위용을 자랑하였으며, 불자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없어져 역사 속으로 살아지고 말았다. 그나마 산치에는 예전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거대한 불탑이 남아있어 천만다행이라는 표현에도 부족함이 없다. 인도 중부 마드야 프라데쉬주의 수도 보팔 근처 북부 46km 지점에 자리한 산치에는 현재 3기의 불탑이 남아 있으며, 스님들이 수행하던 승원과 사당의 터는 수십 개가 남아
전생 소년 때 부처님께 흙밥 공양 전륜성왕·불탑조성 수기 받아 불탑신앙 단초, ‘8만4천’은 상징 아쇼카왕 불탑 고구려탑의 기원 〈찬집백연경〉, 〈잡보장경〉과 함께 불교의 3대 비유 경전으로 꼽히는 〈현우경〉의 ‘아수가시토품’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이른 아침에 시자인 아난존자와 함께 걸식을 하기 위하여 성안에 들어가셨다. 길을 가는 도중에 어린 아이들이 소꿉장난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흙을 모아 집과 창고를 짓고 곡식과 많은 보물을 만들었다. 그 때, 한 아이가 멀리서 오는 부처님의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무한한 공경심과 무엇인가 보시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생겼다. 그 아이는 곧 창고에서 곡식이라 이름 지은 흙을 한 줌 쥐어 부처님에게 보시하려
사리팔분에 의한 근본 8탑 조성 숯탑과 재탑 더해 10탑 조성설 병탑 포함한 11탑 조성설 사리팔분(쟁탈)은 부처님 위상 반증 당시 정·교분리 속 종교문화의 영향 근본8탑 중 피프라와 불탑과 바이살리의 릿차비 불탑 2기만 현존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한 후 석가모니부처님의 사리는 8등분 되어 여덟 지역에 각각 사리탑으로 조성되었다. 그 이유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사리를 차지하려고 주변 여덟 나라 사이에 무력 충돌의 기미가 보였고, 이를 8등분하여 각국에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분사리, 또는 사리8분이라고 한다. 결국 석가모니부처님의 사리를 8등분하여 여덟 지역에서 사리탑으로 조성하였다는 것은 불교를 믿는 각국으로 전파되어 지속적인 불탑 건립의 시초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유행경〉의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라에 ‘열반탑’ 1.6㎞ 떨어진 곳에서 다비하고 불탑의 상징 람바르 불탑 조성 모든 탑은 사거리에, 쉽게 많이 보도록 ? 지난 호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열반 이전의 탑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불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구조물을 말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불탑은 역사적 실체로서의 불사리탑을 의미한다. 1) 전륜성왕의 장례법과 불사리탑 석가모니부처님은 부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에 45년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시면서 중생교화를 위하여 설법하셨다. 80세가 되던 해에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시려고 하셨다. 그러자 아난다는 장례식 절차와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를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전륜성왕의 장례식을 자세히 설명하시면서
불탑의 기원 석가모니불 이전일 수도 과거불 불탑조성 기록 경전에 불자외 제석천도 불탑 건립 주체 불탑의 의미 ‘종교적 의미’ 커 부처님 머리카락, 손톱 봉안한 발탑·조탑 부처님 돌발우 불탑으로 생각하기도 석가모니불 열반 이전의 탑 일반적으로 불탑이란 석가모니부처님의 유골인 사리가 봉안된 성스러운 건조물을 말한다. 그러나 반드시 석가모니부처님의 사리탑을 불탑의 기원이라 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실존 여부를 밝힐 수는 없지만, 경전에는 수없이 많은 과거불의 열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과거불의 불탑을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경전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석가모니불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리불과 목련존자에 대하여도 사리탑을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석가모니부처님의 머리카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