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정신은 무엇인가올해 5.18행사 때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여야 정치 지도자들이 대거 광주로 내려갔다. 코로나19 재난 속에서도 옛 전남도청 앞에서 행사를 치렀다. 5.18민주화운동이 공식명칭이다. 그러나 광주시민들이 단순히 민주화운동 차원에서 시위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내놓고 계엄군의 야만적인 살상에 맞서 투쟁했으므로 5.18민중항쟁이라고 해야 옳다. 5.18민주화운동은 어정쩡하게 보수와 진보가 봉합한 이름일 뿐이다. 올해 같은 분위기라면 잃어버린 민중항쟁이란 이름도 머잖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해본다. 광주 5.1
1980년 5월 광주는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기억 중 하나다.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요구한 시민들의 봉기를 계엄군이 무자비하게 탄압했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 부처님오신날이었던 5월 21일은 계엄군의 집단발포로 많은 시민들이 스러져가 아픔을 더 했다. 이 같은 신군부의 폭압과 폭력의 현장에서 지역 스님과 불자들은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항쟁에 적극 가담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불자 중 가장 대표적 인물은 故 지광 김동수 열사(당시 22세)이다. 그는 1980년 당시 조선대 공과대학 3학년 학생으로 한국
5.18광주민주화운동에서 지역 스님과 재가불자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하지만 전체 불교계의 활동 상황은 기독교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하지만, 불교계도 1980년 5월의 광주와 함께하려고 했던 노력들은 확인된다. 현재 확인된 당시 불교계 문서는 1980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배포된 유인물이다. 해당 유인물은 5월 16일 광주공원 내 시민회관서 열린 ‘불교사상대강연회’에서 배포된 것으로 배포단체는 한국민중불교연합회로 명시돼 있지만, 정확한 배포 주최는 ‘모임 아들’의 불자회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유인물에는△민주화 운동 적극 참여
불교계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후방에서 지원했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월주 스님은 중앙 교단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직접 광주에 방문해 천도법회를 봉행하고 성금을 전달했다. 월주 스님은 신군부 세력이 요구했던 자율정화 지침 수용과 전두환 장군 지지 표명 요구를 모두 거절했고, 그해 7월에는 어용불교단체였던 대한불교총연합회와 전한국불교회를 탈퇴했다.이 같은 조계종의 행보는 신군부에게는 걸림돌로 보였고 10.27법난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1980년 10월 27일 국보위 산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본부장 노태
유래 없는 부처님오신날이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 온 세상이 힘겹다. 유래 없는 생과 사. 이 무명을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또 이 시절을 기적처럼 끝낸다 해도 다시 유래 없는 시절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이 암담한 시절의 유래가 없듯이 또다시 유래 없는 암담한 시절이 온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늘의 일이 단지 오늘에서 벌어진 일이 아님을 생각할 때, 이 암담한 시절은 다름 아닌 우리의 내일인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희망의 답을 구해본다. 산중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선지식과 도심 한가운데서 오늘을 겪고 있
5월 18일 국립 5.18묘역.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을 재현하는 영산대재가 펼쳐졌다.대령-관욕-상단권공-추모재로 진행된 영산재는 5.18광주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영령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열렸다.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영산재를 봉행한 단체는 광주 무형문화재 제23호 (사)광주영산재보존회(회장 월인)로, 항쟁 이듬해인 1981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9년 간 이어왔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봉행된 영산재에서 보존회원 스님 40여 명은 故 김동수 열사 묘역을 비롯한 항쟁 희생자들의 묘역을
불기 2564년 4월 초파일, 윤달 4월 초파일. 초유의 부처님오신날을 맞는다. 연등행렬 없는 부처님오신날이다. 마지 한 그릇, 꽃 한 다발 여법하게 올릴 수 없는 오늘, 다시 아기부처님을 뵌다. 무어라 고할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고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없는 이 시절을. 法으로 충만했던 부처님시절에서 모두가 아픈 시절로 와있는 오늘을. 이 설명 불가능의 시절인연을 무어라 고할까.그 많은 가르침의 무색함을 어떻게 고할까. 일곱 걸음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 날을 무엇으로 장엄할 수 있을까. 민망하고 송구스런 오늘. 별이 어
2564년 전 4월 초파일, 궁전을 떠나 친정으로 가던 마야부인은 백화가 만발한 룸비니동산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태자를 낳았다. 태자는 일곱 걸음을 걷고 난 후 손을 들며 말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태자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 제천은 기뻐하며 갖가지 보물을 공양했다. 싯다르타는 이 세상에 오기까지 여러 생을 거치며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과 공덕을 쌓았다. 그리고 마침내 정반왕과 마야부인을 부모로 하여 이 땅에 왔다. 인류의 삶에 커다란 일이었다. 태자는 이전에 없었던 많은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불기2564(2020)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봉축법어를 내렸다. 진제 스님은 봉축법어를 통해 “어두울수록 등불을 찾듯이 혼탁의 시대일수록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참 뜻을 알아야 한다”고 당부하며 “모든 불자들은 인류의 화합과 공생(共生)의 연등(燃燈)을 켭시다. 이웃에게 즐거움을 주는 마음으로, 이웃의 괴로움을 덜어 주는 마음으로, 이웃이 즐거움을 얻으면 기뻐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으로 대광명(大光明)의 연등을 켭시다”라고 설했다. 최근 발생한 코로나19에 대해서는 인간의 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