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도 음성따라 진실법 듣고묘음 설법 방편 따르도록 권유가르침 들은 중생 아라한과 증득 여래께서 문수사리법왕자에게 말씀하셨다.너는 이제 이 스물다섯 뛰어난 무학보살(無學菩薩)과 아라한들을 보아라. 그들은 각기 최초의 성도방편(成道方便)을 설하면서 다들 진실한 원통법을 닦았다고 말했느니라. 저들의 수행은 참으로 우열과 전후의 차별이 없느니라. 내가 이제 아난을 깨우치려면, 25행(行) 가운데 어떤 법이 그 근기에 가장 알맞겠으며, 또 내가 열반한 뒤에 이 사바세계 중생들이 보살승에 들어가서 더없이 높은 도를 구하려면 어떤 방편문으로
용성 스님 이 중 용성 스님은 한글화에 앞장섰다. 용성 스님은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 됐을 때 성경을 비롯한 타종교의 서적이 모두 한글로 번역된 것을 보고 한글 역경에 앞장섰다. 1921년 4월 역경을 전문으로 하는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했다. 삼장역회는 첫 한글판 〈금강경〉을 출간하고 이후 〈심조만유론〉과 〈신역대장경〉, 〈수심정로〉, 〈선문촬요편집의역〉, 〈대방광불화엄경〉 등 수많은 한글경전을 펴냈다. 용성 스님의 수많은 한글 번역본은 현재 법손인 보광 스님이 대각사상연구원에서 총서 발간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운허 스님 젊은시절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운허 스님은 상해 임시정부와 관계가 있었으며 관련 인사들과도 교류가 있었다. 광복 후 운허 스님은 봉선사 스님들을 모아 놓고 이제 해야 할 일은 조국
불교계에서는 교육, 포교, 역경을 3대 불사라고 지칭한다. 이 중 역경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경전을 번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현대까지 한국불교의 경전 대부분이 한문으로 이뤄져 있기에 역경 사업은 중요한 과제로 꼽혀왔다. 이러한 역경은 최근에 들어 디지털 화 등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띄고 있다. 한국불교의 현대화를 통해 불교가 쇠락해 하는 것을 방지하고 다시 그 중흥을 도모한 것이다. 노덕현 기자 noduc@hyunbul.com 통합종단 3대 역점 사업 ‘역경’ 1964년 동국역경원 출범, 석학 대거 참여 2000년 〈한글대장경〉 184책 완간 결실 빨리어 경전 번역 초기불교 활성화 계기 개역 및 디지털화, 역경사 양성 과제
청담 스님… 한 해 288회 설법 운허 스님… 능엄경 전권 강의 광덕·대행 스님… 도심포교 앞장 1960~80년대 포교 침체기에 빛나는 노력으로 포교 역사를 이어간 선구적 활동들이 있었다. 바로 포교에 헌신한 스님과 재가자들의 활동이다. 종단정화운동 당시 조계사 주지 겸 중앙총림강사, 중앙포교사를 겸임한 관응 스님은 정화중에 조계사에서 정기법회를 열어 매주 300명~500명 정도가 법회에 참석하는 등 정화 초기 포교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대은 스님은 탑골승방에서 〈관음경〉을 강의하며 대중을 교화했고, 대월 스님은 밀양, 화산 스님은 대구 관음사를 무대로 포교활동을 펼쳤다. 소천 스님은 특히 〈금강경〉 강의로 유명했는데 서울 대각사 대각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음을 전했다. 정화의
두 번째 시간은 육근원통에 관한 내용이다. 불교에서는 흔히 원통법문이라 칭하는데 이는 육근을 관찰해 깨달음을 얻는 수행을 말한다. 안(눈), 이(귀), 비(코), 설(혀), 신(몸), 의(의)의 육근의 경계를 살피고 색성향미촉법과의 작용에서 무상과 무아를 체득해 집착을 여의는 것이다. 아나율타 ‘눈을 쓰지 않고 근원 보는 법’주리반특가 ‘호흡 관찰 공 이치 증득’교범발제 ‘맛보는 작용 지견으로 돌려’필릉가바차 ‘아는 작용에 청정함 더해’수보리 ‘온갖 모양 無로 돌아가는 법’관세음보살 이근원통은 따로이 전해 아나율타:
다섯 비구 “음성의 경계 관찰 증득”우바니사타 “색상관찰, 空色二無 증득”향엄동자 “향의 장엄법으로 무루도 밝혀”약왕, 약상 “맛의 원인 분별 환히 깨달아”발타바라 “촉감의 경계 관찰 무학 성취”마하가섭 “공적한 법으로 멸진정 닦아” 오는 3월 27일(음 2.8)은 부처님 출가절이며 4월 3일(음 2.15)은 부처님 열반절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부처님의 출가와 열반이 있어 오늘 우리 삶의 지남이 되고있다. 경전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볼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 가운데 〈능엄경〉은 수행하는 스님뿐 아니라 재가자들도 꼭 읽어야
새벽 2시 일과 시작해 밤 10시 마쳐도 ‘수행’ 모든 수좌가 소임 맡고 민주적으로 문제 풀어 한국불교의 선원은 납자들의 수행처로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 많다. 특히 여름과 겨울 안거 기간에는 더욱 그렇다. 안거에 든 수좌 스님의 마음 가짐은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성철 스님이 생전 해인사 수좌 스님들에게 강조했던 ‘수좌 5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성철 스님이 강조한 수좌 5계는 △잠을 적게 잔다 △간식을 탐하지 않는다 △경전을 보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다 등이다. 성철 스님의 ‘수좌 5계’는 매일 새벽 2시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수좌 스님들의 일상 생활을 짐작케 한다. 음력 10월 15일부터 3개월간 계속되는 동안
정화운동 이후 통합종단 출범하며 무문관 개원 등 선수행 열기 확산 불교 전통 안거 문화 그대로 계승 1980년대 이후 꾸준히 방부 늘어 간화선 대중화 위한 노력도 이어져 한국불교에서 ‘선(禪)’이 가지고 있는 비중은 크다. 특히 대표 종단인 조계종은 ‘선종(禪宗)’을 표방하며 종지 역시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전법도생(傳法度生)’으로 선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1700년 한국불교 역사에서 선법이 전해진 것은 도의선사가 821년(신라 헌덕왕 13년) 중국 선종 제6조 조계혜능의 선을 계승한 서당지장(738~817)의 인가를 받아 오면서 각 지역에 선문(禪門) 개설되고 그 뿌리를 내리게 됐다. 고려시대에는 지눌 스님(1158~1210)이 대혜 스님(1089~1163)이 제창한 간
19세기 말 조선에는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물결은 일제 침탈이라는 격랑으로 바뀌었다. 당시 불교도 이런 시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경허 스님은 정혜결사를 주창하며 선풍(禪風)을 진작시켜 일제 시기 불교의 정맥이 굳건히 유지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경허 스님을 한국불교의 중흥조로 꼽는 이유도 여기 있다. 경허 스님의 법은 제자 혜월·수월·월면(만공) 스님에게 이어졌고, 이 같은 명맥은 면면히 현대 한국불교로 계승됐다. 오늘의 한국불교를 만든 것은 한국불교의 선맥을 이어가기 위한 스님들이 구도열과 정법 수호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원력과 열정은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사회를 이끌어간 정신적 스승인 고승들로 화현됐다. 이에 본지는 해방 이후 근현
1995년 3월 1일 개국 고불식영상 법문·문화·교양·다큐 등20년 간 6만여 프로그램 제작불법홍포·불교문화 진흥 앞장스마트라디오·아카이브 시스템 등종교방송 트렌드 선두주자 나서 오는 3월 7일 개국 20년 기념 법회4대 목표 발표·축하 공연 등 진행개국 기념 정목 스님 토크 콘서트 4월까지 전국 4차례 순회 공개방송 “날로 혼미해져가는 세상, 인성(人性)이 불 꺼지니 백일(白日)도 어둡고 백일(百日)이 어두우니 인륜도 캄캄합니다. 이제부터는 사람의 가슴 속에 더 많은 법당을 지어야 합니다. 불교 텔레비전이 그 일을 해
1945년 8월15일 오후 2시.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 항복 선언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 있던 한국에게 광복의 기쁨과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장미빛 환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38선을 설치하고 남북을 분단시켰고 오래지 않아 한반도는 좌우 대립의 갈등에 몸살을 앓았다.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는 저서인 에서 “해방공간의 불교는 한국 근대불교와 현대불교의 가교 역할을 한 무대이자 연결고리”라면서도 “근대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지향으로 가려했던 현대불교는 해방공간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하지만 그 만남은 화해와 상생이 아닌 갈등과 대립의 양상으로 전개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한국불교는 격랑의 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