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鷄龍山) 서남부 연천봉 아래에 위치한 갑사는 조계종 제6교구본사 마곡사의 말사(末寺)이다. 갑사(甲寺)는 계룡갑사(鷄龍甲寺), 갑사(岬寺), 갑사사(甲士寺), 계룡사(鷄龍寺)라고 불렸다. 이 사찰은 420년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556년 혜명(惠明)이 창건하였다는 설, 아도가 창건하고 혜명이 중창했다는 설 등이 분분하다. 679년 의상(義湘)이 사찰을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華嚴大學之所)로 삼았으며, 이때부터 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가 되었다. 그 후 갑사는 859년과 887
충청남도 예산군 덕숭산 기슭에 위치한 수덕사는 조선 말기에 경허 스님이 머물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고, 1898년에 경허 스님의 제자 만공 스님이 중창한 후 많은 선지식을 배출한 사찰이다. 현재는 우리나라 4대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고, 조계종 제7교구본사로 충남 지역에 47개의 사찰과 관외 지역에 21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수덕사 창건에 관한 기록이 명확하지 않지만, 설화로는 〈덕산향토지〉의 수덕도령과 덕숭낭자 이야기와 함께 대웅전 서쪽 백련당 뒤편에 있는 바위로 관세음보살의 현신 묘령여인과 정혜청년에 관한
지난해 예산 향천사와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의 후원을 받아서 을 간행했다. 그 과정에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관련 기록과 사진 등을 수집할 수 있었는데, 올 해 사찰 유출문화재 기고를 준비하면서 향천사에 소장된 성보물의 현황을 알 수 있는 일제강점기 두 건의 재산대장을 찾게 되었다.1970년대부터 성보 도난 시작돼불화 9점 훔친 도둑 검거되기도현재 지장시왕도·현왕도 등 묘연천불전 석조불상 460점도 유출충남 예산 금오산 기슭에 자리 잡은 향천사는 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로, 652년에 일본으로 건너갔
개별 사찰에서 유출된 성보문화재를 조사하는 첫 단계는 여러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재산대장을 수집하는 일이다. 이 작업은 한국전쟁 이전에 사찰 소장 성보문화재의 현황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서, 작성 시기가 다른 여러 본이 남아있어 선후 관계를 파악할 수 있으며 유물의 소유 현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에 활동한 사람들의 자서전 등을 통해서 관련 내용까지 정리된다면 당시의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구례 화엄사 전쟁 피해 없었으나일제강점기부터 도굴범 인해 몸살현대
우리나라 불교문화재는 화재와 수해 등의 자연 재해를 비롯하여 전쟁 중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몽고 침략, 임진왜란, 한국전쟁은 전국적으로 대규모 사찰 파괴를 불러일으켰고, 종전 후 새로운 성보물의 제작으로 인해 불교미술사의 시기를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 그 가운데 한국전쟁 중에 지리산 내에 있는 사찰은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구례 화엄사와 천은사, 하동 쌍계사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하동 쌍계사는 1953년 9월 18일에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끝까지 저항하다 숨진 빗점골과 불과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
스님들의 수행처인 암자(庵子)는 사찰 주변에 인적이 드문 곳에 주로 세워졌다. 대부분의 사찰은 3~4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암주(庵主)를 임명해서 운영해왔다. 암자의 성보문화재 도난은 일제강점기 신문 기사에 여러 번 보도됐다.1917년 1월 21일자 〈매일신보〉에 “충남 공주군 계룡면 하대리 김춘학(金春學, 35)은 김호준, 이덕진과 공모하고 1912년 4월 29일 밤 각각 방망이를 가지고 거촌면 사자암에 침입하여 승려 몇 명을 난타하고 불단 위에 있는 도금아미타불 일체를 강탈…”이나 1932년 2월 7일자 〈동아일보〉에 “경남 산
현대사에서 한국전쟁은 인적이나 물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힌 역사적 사건이다. 특히, 지리산이나 태백산 등지의 사찰이 북한군이나 빨치산들에게 이롭게 활용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상당히 많은 사찰이 우리 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북쪽에 있던 사찰들은 미국의 폭격으로 한순간에 폐허가 되었다.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정부와 군부의 판단이 결국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든 사례는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순천 송광사. 장성 백양사, 정읍 내장사, 평창 월정사, 남양주 봉선사, 구례 연곡사, 양평 용
사찰에서 도난당한 불교조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특히, 이동하기 쉬운 크기의 여래상, 보살상, 동자상, 인왕상 등이 대부분이지만. 이 가운데 많은 수를 차지하는 존상은 전각에 주불로 봉안된 여래상보다는 명부전 등에 봉안되었던 동자상이다. 동자상은 주로 임진왜란 이후 사찰의 중창과 더불어 명부전 내 시왕상을 보좌하는 시자(侍子)로 봉안된 존상이다. 명부전 내에 봉안된 동자상은 선동자, 악동자로 불리는 데, 대체로 이들 선악동자상은 소조나 나무로 제작되고, 어린 소년이나 소녀의 모습이다.동자상은 머리에 쌍계(雙?)나 길게 머
최근 보물 제1958호로 지정된 경북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는 1989년 6월 5일에 사찰에서 도난당해 25년 만인 2014년 5월 서울에 위치한 사립박물관에서 문화재청 사범단속반과 서울경찰청 지능범죄대수사대에서 압수한 유물이다. 삼장보살도는 압수된 이후 법적인 절차를 끝내고, 작년 4월에 조성사찰로 돌아가 극락전에 안치되면서 다시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졌다.보문사 삼장보살도는 조선 후기에 그려진 전형적인 삼장보살도와 화면 구성이나 존상 배치가 특이한 불화이다. 우선 화면 중앙에 지장보살을 그리고, 좌우로 천장보살과 지지
사찰에서 도난당한 수많은 불교회화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종류는 신중도, 독성도, 산신도, 진영 등이다. 이 불화들은 규격이 작아 오려내기 쉽고, 불교적 색채가 농후하지 않아서 일반 수집가들이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가운데 진영은 고승(高僧)이나 조사(祖師) 등을 그린 그림으로 영정(影幀)이라고도 부른다.진영은 일반 초상화와 달리 신앙의 대상인 종교미술로, 스님이 살아있을 때 제작되거나 입적(入寂)한 후 불화승을 모시고 그리게 하였다. 스님이 열반하신 후, 다비에서 나온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부도를 세우고 석비(石碑)를 건립하
우리나라?불교미술사에서?사찰과?문화재가?가장?많은?피해를?입었던?시기는?몽고?침입,?임진왜란,?한국전쟁이?일어났던?해이다.?그?전쟁기간?중에?사찰에?봉안된?불교문화재들이?거의?파괴되거나?소실되었다.?몽고와?왜구의?침입에?항거하던?의승군(義僧軍)의?활동?거점지였던?사찰이?왜군들에게는?신앙의?성소가?아닌?저항군이?머무르는?곳으로?인식되면서?파괴되었고,?한국전쟁?중에는?정부를?반대한?세력들이?산에?들어가?저항군으로?활동하면서?은신처가?될?수?있는?대부분의?사찰을?국군이?직접?소각하는?상황이?벌어지게?된다.?결국?전쟁은?몇?백?년의?역사를?한?순간에?파괴하는?결과를?초래하였고,?당시?호남,?관동,?경기?북부?등에?위치한?많은?사찰이?처절하게?파괴되는?비운을?맞게?된다. 전쟁이?끝나자?사찰에서는?중창불사를?일으
대한불교조계종?제13교구?쌍계사의?말사인?옥천사는?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의?화엄사상을?널리?펴는?‘화엄전교십찰(華嚴傳敎十刹)’?가운데?하나로?676년에?의상대사가?창건했다.?옥천사는?893년에?진경국사?심희(854~923)가?중창한?후,?고려?말까지?여러?차례?중건이?되었지만,?조선전기는?겨우?법등만?유지된?것으로?보인다. 1592년에?일어난?임진왜란으로?사찰의?모든?전각이?소실된?후,?1639년?학명(學明)스님이?의오(義悟)?스님과?함께?중창?불사를?시작해서?1640년에?동상실(東上室)을?창건했고?1642년에?미옥(美玉)?스님이?화주가?되어?승당을?지었으며,?1645년에?심검당을?건립하였다.?1654년에?중심?전각인?법당을?지었으며,?1664년에?정문을?세워?7중창을?완성하였다. 이후에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