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물 제1958호로 지정된 경북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는 1989년 6월 5일에 사찰에서 도난당해 25년 만인 2014년 5월 서울에 위치한 사립박물관에서 문화재청 사범단속반과 서울경찰청 지능범죄대수사대에서 압수한 유물이다. 삼장보살도는 압수된 이후 법적인 절차를 끝내고, 작년 4월에 조성사찰로 돌아가 극락전에 안치되면서 다시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졌다.보문사 삼장보살도는 조선 후기에 그려진 전형적인 삼장보살도와 화면 구성이나 존상 배치가 특이한 불화이다. 우선 화면 중앙에 지장보살을 그리고, 좌우로 천장보살과 지지
사찰에서 도난당한 수많은 불교회화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종류는 신중도, 독성도, 산신도, 진영 등이다. 이 불화들은 규격이 작아 오려내기 쉽고, 불교적 색채가 농후하지 않아서 일반 수집가들이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가운데 진영은 고승(高僧)이나 조사(祖師) 등을 그린 그림으로 영정(影幀)이라고도 부른다.진영은 일반 초상화와 달리 신앙의 대상인 종교미술로, 스님이 살아있을 때 제작되거나 입적(入寂)한 후 불화승을 모시고 그리게 하였다. 스님이 열반하신 후, 다비에서 나온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부도를 세우고 석비(石碑)를 건립하
우리나라?불교미술사에서?사찰과?문화재가?가장?많은?피해를?입었던?시기는?몽고?침입,?임진왜란,?한국전쟁이?일어났던?해이다.?그?전쟁기간?중에?사찰에?봉안된?불교문화재들이?거의?파괴되거나?소실되었다.?몽고와?왜구의?침입에?항거하던?의승군(義僧軍)의?활동?거점지였던?사찰이?왜군들에게는?신앙의?성소가?아닌?저항군이?머무르는?곳으로?인식되면서?파괴되었고,?한국전쟁?중에는?정부를?반대한?세력들이?산에?들어가?저항군으로?활동하면서?은신처가?될?수?있는?대부분의?사찰을?국군이?직접?소각하는?상황이?벌어지게?된다.?결국?전쟁은?몇?백?년의?역사를?한?순간에?파괴하는?결과를?초래하였고,?당시?호남,?관동,?경기?북부?등에?위치한?많은?사찰이?처절하게?파괴되는?비운을?맞게?된다. 전쟁이?끝나자?사찰에서는?중창불사를?일으
대한불교조계종?제13교구?쌍계사의?말사인?옥천사는?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의?화엄사상을?널리?펴는?‘화엄전교십찰(華嚴傳敎十刹)’?가운데?하나로?676년에?의상대사가?창건했다.?옥천사는?893년에?진경국사?심희(854~923)가?중창한?후,?고려?말까지?여러?차례?중건이?되었지만,?조선전기는?겨우?법등만?유지된?것으로?보인다. 1592년에?일어난?임진왜란으로?사찰의?모든?전각이?소실된?후,?1639년?학명(學明)스님이?의오(義悟)?스님과?함께?중창?불사를?시작해서?1640년에?동상실(東上室)을?창건했고?1642년에?미옥(美玉)?스님이?화주가?되어?승당을?지었으며,?1645년에?심검당을?건립하였다.?1654년에?중심?전각인?법당을?지었으며,?1664년에?정문을?세워?7중창을?완성하였다. 이후에도?여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진열된 불교문화재를 관람하다 보면 어떤 인연으로 사찰에서 모시던 신상(神像)이 속세로 나와 수집이나 관람의 대상이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이런 고민이 계속되는 이유는 불교 유물 관련 문헌이나 중요한 기록이 훼손된 채 전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20여 년을 조선 후기 부처님을 만든 작가를 밝히는 연구를 하다 보니 “부처님 덕에 먹고 사는 연구자입니다”라는 자기소개로 강의를 시작하곤 한다. 불상을 제작하고 불화를 그린 작가들을 연구 주제로 삼은 것은, 작품의 양식적인 분석이나 변천 등의 연구가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