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암서 누더기 입고 1년 장좌불와 숨쉬는 등신불 같던 용맹정진 끝에 심신 습기 조복받아 생사자재행함 없고 한가로운 오도가 불러 동학사 법회서 강주 스님이 “곧은 나무라야 쓸모 있다” 하자 경허 스님 법석 올라 말하기를 “삐뚠 것은 삐뚠 대로 곧은 것” 계룡산 동학사에서 젊고 유능한 강사로 명망이 높은 경허 스님에게 수학하려고 밀려드는 학인들의 수는 나날이 많아져 갔다.하지만 발심한 경허 스님은 강사를 그만두고 조용한 수도처를 찾았다. 이는 생사의 무상함을 깊이 느껴 장부의 대사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동학사에서 주장자와 발우를 거둔 뒤 스님이 찾은 수행처는 홍주 내포였다. 오늘날 충남 서산군 연암산에 있는 천장암(天藏庵)이다.바랑을 풀고, 경허 스님은 마음껏 용맹 정진했다. 천장암은 학인·
나하나 살고 죽는 문제도 수습할 줄 모르면서 중생을 인도 하겠다니참으로 어리석은 것 날카로운 송곳 턱밑에 놓고수마 쫓으며 참선 정진 백천법문 문득 재가 되니한국 근대선의 서막 올라 경허(鏡虛; 1849~1912) 스님은 한국불교 중흥조이다. 스님은 1849년 전주에서 출생해 9세 때, 경기도 과천 청계산 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했다.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이다.경허 스님은 억불숭유로 바람 앞 촛불과 같던 때 선맥을 되살린 선지식이다. 큰 깨달음을 얻어 대자유인의 경지에 오른 스님의 도리가 얼마나 깊고 높은지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경허 스님의 행적은 어떤 때는 심산유곡에 깃들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시끄러운 저자 한복판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