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앉아서 토론하고 음미하고, 마음 도리를 연구하는 데에 몰두하는 도반으로서 만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중반기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우리 개별적인 의의는 낳을 수 있을지언정 포괄적인 의의는 낳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중반기에 들어서서 세계와 더불어, 우주와 더불어 같이 포괄적인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대인이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이 드물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전체가 다 그렇게 대인이 되었으면 하는 사랑의 마음에서 조금도 쉬지 않고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
매해마다 촛불재를 하는 이유질문 부모님 따라 선원에서 행하는 촛불재에 몇 년째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해마다 정초에 그렇게 촛불재를 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나름대로 의미는 알 것 같지만 올해에는 좀 더 그 뜻을 마음에 새기면서 촛불재에 임하고 싶습니다.답변 우리가 왜 촛불재를 그렇게 하느냐. 왜 그렇게 귀중하게 해야 되느냐. 이 마음의 촛불재를 하는 것은 방편으로서 마음과 더불어 자신, 즉 ‘자(自)’는 이 몸이 되고 ‘신(神)’은 자기 불성(佛性)이 되는 겁니다. 이게 자와 신이 다 둘 아니듯이 촛불재를 하는 것도 마음에
지난 호에 이어서그러니 우리 마음은 얼마나 큰가. 허허, 헤아릴 수가 없이 크죠. 마음이라는 그건 말로 헤아릴 수 없이 크죠. 그러나 말로 헤아릴 수 없이 작기도 하답니다. 그러니 일체 허공의 생명들의 마음이나 산하대지의 생명들의 마음이나 마음을 한데 합쳐서 좁쌀 알갱이에다가 전부 넣어도 손색이 없다는 거죠. 그리고 이걸 꺼내서 이 삼라만상 대천세계에 다 풀어 놔도, 좁쌀 알갱이에서 다 꺼내서 풀어 놔도 손색이 없다는 얘기죠. 이렇게 광대하고 무변한 도립니다. 이런데 생활에서 좀 굴려서 쓰시라고 이렇게 가르쳐 드려도 그 마음 하나를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내가 항상 이날까지 설법을 해 왔는데 이제는 여러분이 질문을 해서 서로 응대가 있어야만 알아지는 데 좀 더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오늘도 질문하시기 바랍니다.질문자1(여) 큰스님! 질문 올리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 선원에서 공부를 시작해서 조금씩 체험이 되는 과정을 시나 글로 적어서 스님께 몇 번 보여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스님께서 “백지 편지를 써 보세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백지 편지라는 편지 아닌 편지를 쓰기 위하여 저는 한 일 년여를 몸부림을 치면서 참구에 참구를 거
질문 : 저는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절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새벽에 108배 정진을 하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대행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고 저도 제대로 마음공부를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제야 돌아보니 제가 너무 바깥으로만 공부하는 척했던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바르게 공부할 수 있도록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답변 : 우리가 수 해를 두고 이날까지 이렇게 봐 왔고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기복으로만 많은 세월을 흘러왔습니다. 그것이 아주 배서 인제는
지난 호에 이어서그리고 한마디 더 해야겠군요. 예전부터 천주교에서나 불교의 스님네들이 묵언을 많이 하고 갑니다. 3년을 하기도 하고 1년을 하기도 하고 한 철을 하기도 하고 몇 달을 묵언하기도 합니다. 근데 나는 위에서부터 배웠기 때문에 말입니다, 묵언이라는 게 있으면 묵언 아닌 게 붙습니다. 우리가 찰나찰나 시공을 초월해서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죠. 우리가 발을 떼고 올 때에 짊어지지도 않고 또는 거기에 애착도 없이 그냥 그대로 걸어왔다는 얘기죠.그런데 우리가 지금 말을 하는 것도 고정된 게 하나도 없어요. 말을 했어도 함이 없고
청주 여러분과 같이 한자리를 하게 돼서 감명 깊습니다. 먼저 누구나가 다 왜 각자 자기 뿌리를 믿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것을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기 청주에 오니까 마음공부 하시는 분들도 더러더러 계시지만 생무지인 분들도 많습니다.아주 간편하게 나무로 비유를 하죠. 나무들을 보면 모습은 다 각양각색으로 다르지마는 뿌리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죠? 저 나무들의 뿌리가 말입니다. 꽃나무든 버드나무든 소나무든 간에 각 나무는 바로 자기 뿌리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 뿌리가 없으면 잎새 하나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듯이 사람도
이 중세계에서 벗어나려면질문 큰스님 법문에 보면 이 중세계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 중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지요.답변 우리가, 인간이 이렇게 문리가 터지고 이렇게 저거 하면 이 중세계를 벗어나게 되거든요. 중세계를 벗어난다 하는 건, 우리가 곤충으로서부터 인간까지 된 거는, 이 인간도 말하자면 곤충의 주머니예요, 이게. 곤충의 주머니. 그런데 독의 곤충의 주머니냐, 선의 곤충의 주머니냐, 이거에 따라서 이 곤충의 주머니가 벗어지고 곤충의 주머니를 더 만들고 이러는 거죠. 만약에 그러한 문제
지난 호에 이어서또 내가 여기에서 가르치는 거는, 안 되고 되는 것을 어떻게 놓느냐 하는 겁니다. 자기 카세트에서 나오는 거 자기 카세트에다 되놔라. 안 되는 거는 ‘아, 나를 성숙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나를 다지기 위한 과정이다. 이건 고가 아니다. 나한테 부딪쳐 오는 이것이 나를 성숙하게 하고 물리를 터지게 해서 지혜를 얻게 해 주는 과정이다.’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감사할 거고, 또 ‘거기서 일체 만법을 다 해 나가니 감사하고, 또 잘됐으니 감사하고 이러니까 모든 게 다 감사해.’ 그렇게 그 감사함을 알고 가는 겁니다.또 그렇
제주도에 와 본 지도 한참 됐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 달에 두어 번은 올까 합니다. 우리가 이런 공부를 하루 이틀 익혀서 될 일은 아닙니다만 먼저 우리 마음이 정돈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과학과 모든 종교라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생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나 자체가 있기 때문에 상대성 원리가 스스로 이렇게 같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정립해서 알아야 하고, 또 중용을 할 수 있는 원심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러면 인과에 대해서 얘기를 한번 할까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인과, 업보, 유전, 조상의 문제 등에
어떻게 놓아야 하나요질문 : 요즘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고 살기도 막막한데 애들은 애들대로 말썽을 부리니 마음이 자꾸 우울해지기만 합니다. 놓으라 놓으라 하시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놓아야 하겠습니까.답변 : 내가 자주 얘기했죠. 큰 솥에다 팥죽을 쑤는데 말입니다, 팥죽 방울이 너무 많거든요. 수도 없이 그냥 막 끓어오른단 말입니다. 여러분 배 속에서도 수없는 생명의 의식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놓는 데도 한 군데, 나오는 데도 한 군데다 이겁니다. 그런데 요 방울 조 방울, 요 방울 조 방울이 연방 나오는데 한 군데서 나와서 한 가지로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 토론하는 중에 지난번에는 우리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이루어졌나를 한번 토론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셋째 일요일 날은 우리가 거기부터 잠깐 거론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렇게 오기까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오게 됐는지는 나중에 되돌아올 때 얘기가 되겠죠. 오늘은 거기에서 잠시 잠깐 끊고 다음에 또 하기로 하죠.그런데 처음에 제가 생각하기에 말입니다, 생각해서 아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 이 지(地) 수(水) 화(化) 풍(風)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수화풍의 성질과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탑에 관한 것이나 수계에 관한 것이 함께 첨부된 얘깁니다. 수계에 관한 건은, 우리가 항상 마음에서 고장난 거는 마음으로부터 해결을 해야 하는 거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겁니다. 우리가 수억겁을 거치면서 진화돼서 이 세상에 이렇게 인간으로서 등장을 했습니다. 인간으로 등장을 했는데 어떻게 살아야만이 우리가 업을 짓지 않고 현재의 모든 것을 다 녹이면서 생동력 있게 또 걸림 없이 살아나갈 수 있는가.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미생물에서부터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면서 수억겁을 천차만별로 모습을
공양 올리는 마음질문 : 우리가 보통 정성을 들인다고 하면서 부처님 전에 공양미나 초 또는 꽃 등 가지가지 공양물을 올리게 되는데 그럴 때 어떤 마음으로 올려야 하는지요.답변 : 이 공양이라고 그러는데 말입니다, 우리 몸뚱이 속에 사는 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공생이면서 공심이고, 공심이면서 공체고, 공체면서 공용이고, 공용이면서 공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올리는 것도 공심으로서 해야 공덕을 받죠. 공심이 아니라면 공덕이 안 됩니다. 달마 대사가 양 무제더러 공덕이 없다고 말한 원인도 거기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호에 이어서)질문자3(女) 스님, 저는 제가 체험한 걸 좀 얘기할까 싶어서요. 얼마 전에 이렇게 공부를 하고 나가다 보니까 집의 부엌에 개미가 참 많았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개미가 물에 씻겨 가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그러는지라, 마음이 참 아프더라고요. ‘아휴, 개미야. 부디 네가 살 데서 살아 다오. 여기서 살지 말고 네가 살 곳에서 살아야지 왜 여기서 사느냐.’ 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부엌에 들어가면서 일을 했었거든요.그랬는데 제가 가게 가서 일을 하다가 어느 날 저도 모르게 ‘아휴! 개미야.’ 하는 마음이 되더라고
벌써 날씨는 가을 날씨로 변했습니다. 우리가 살아나갈 때 쳇바퀴 돌듯 찰나찰나 변해서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인간이 정신계는 무시하고 물질계만 집착하여 물질 50%만 넣고 굴리려니까 맞지 않습니다. 정신계의 50%와 물질계의 50%가 맞먹어서 같이 작용을 해야만이 100%가 되는 이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바깥에서 끄달리고, 바깥으로 이름을 찾고, 바깥으로 형상을 찾고, 바깥으로 허공을 보고 모든 것을 허무하다고 하고 이렇게 나가시니까 50%는 감추어져서 100%가 같이 돌아가지 못하는 이치가 됩니다. 그러니
내가 죽은 이름 없는 이름이여질문 : 저희 집에 대행 큰스님께서 법회 중에 읊으신 “내가 죽은 이름 없는 이름이여. 나와 남이 두루 같이 죽은 이름 없는 이름이여. 나와 남이 두루 나투는 이름 없는 이름이여. 해산봉은 화산 터져 두루 불이 이름 없는 이름이여.” 이런 게송이 액자로 걸려 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공부의 세 단계를 말씀하신 것이라 여겨지긴 하지만 그 뜻을 좀 더 자세히 알려 주시면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답변 : “내가 죽은 이름 없는 이름이여.” 첫 번에 이랬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이것은 바로 내가
(지난 호에 이어서)질문자3(남) 스님, 조금 전에 말씀하셨는데, 여기 공동 묘지에 묻혀져 있던 그런 많은 영령(英靈)들이 큰스님과는 어떤 인연이었기에 그런 좋은 인연이 되셨는지요.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큰스님 인연이 별다르게 따로 없는 겁니다. 바람결같이 스쳐 가는 인연. 허허허. 우리 모두가 바람결같이 스쳐 가는 인연들입니다. 이게 생시도 아니요 꿈도 아니요, 꿈도 아니요 생시도 아닙니다. 생시와 꿈과 둘이 아닙니다. 이것이 모두 바람결같이 돌아가고 찰나 찰나에 만남이 있는 것이 그대로 인연입니다. 그래서 어쩌다가 보니까, 이
여러분께서 8월 추석을 지내셨습니다. 8월 추석을 지내신 뜻을 우리가 한 번쯤은 음미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분이든지 밥 먹지 않고 사는 사람 없고, 옷 입지 않고 사는 사람 없고, 물 안 먹고 사는 사람 없고, 불 쓰지 않고 사는 사람 없고, 땅 딛고 다니지 않는 사람 없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기를 마시지 않고 사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그런고로 우리가 8월 추석이라고 하는 것은 일 년 내내 농사를 지어서 우리가 첫 곡식으로 밥을 지어서 놓든 떡을 해서 놓든 무엇을 해서 놓든, 일체제불의 마음과 더불어
어떤 맘으로 주인공을 찾아야 하나요질문 : 누구나 자기의 삶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겠지만, 저 또한 갚아야 할 빚 때문에 매일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대행 스님의 모습과 법문을 대하면서 지친 마음을 애써 다독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는 게 답답하기만 하고 어느 날 주인공에 맡기라는 말 또한 너무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떤 마음으로 주인공을 찾아야 하는지요.답변 : 첫째는 무조건 ‘네가 있다는 것을 네가 증명하는 거다.’ 하고서 관하는 거고, 둘째는 가정살이 돌아가는 것 전부 ‘그놈이 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