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作心三日).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수많은 결심을 하고, ‘삼일’만에 그 결심을 깨고 만다. ‘성불하겠다’ ‘꾸준히 수행을 하겠다’는 거창한 원력도 아니다. ‘술을 줄이겠다’ ‘담배를 끊겠다’는 명분 있는 결심도 아니다. ‘하루 삼십분씩 책을 읽겠다’거나 ‘부모님께 자주 전화 드리겠다’는 등의 생활 속 소소한 다짐들마저 그러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세운 다짐인데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은 어찌 그리 어렵기만 할까? 지키지도 못할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어떤 것을 다짐하고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합천 해인사로 향했다. 그곳에는 율사(律師)로서 불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해인율원 율주 종진 스님이 계셨다. “왜 사람들은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지 못
{image1}_c살아있다는 것은 흔들림의 연속인 것 같다.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튼튼한 뿌리를 얻는다. 지난 한해도 그러했다. 늘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받아들이는 것, 의연함을 배우는 것이 삶이라고. 또다시 새해를 맞이한다. 새로운 것은 늘 설레임과 함께 막연한 불안도 동반한다. 지난한해 불교계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어떤 때는 간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떠나갔고 그리고 서서히 잊혀졌다. 그 자리는 다시 새로운 인연들로 채워졌다. 이웃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왜 우리는 떠나가는 사람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고 간절히 붙잡지도 않는 것일까. 누구의 잘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이런 불교계의 현실이 나는 참
새해 벽두는 늘 그렇듯이 기대 반 걱정 반이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설레임. 무언가 이루겠다는 기대감. 하지만 그 속엔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또 한 해는 그렇게 시작됐고, 그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해답 구하기는 쉽지 않다. 저마다 삶의 지표가 다르니 사는 방식이 다름은 당연하다. 그래도 모두에게 다르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람다운 삶’이다. ‘어떻게 사느냐’를 ‘사람다운 삶’에 놓고 본다면 그리 간단치 않은 화두다. “어서 오세요. 현대불교신문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렵고 힘드실 겁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이치가 다 그러니 상심하지 말고 힘을 내세요.
【610-A-11 문화강좌 모범 사찰】 취미생활 즐기면 신심도 UP! 리본아트 은공예 오카리나 요가…. 백화점 문화센터 못지않은 다양한 문화강좌를 운영하는 사찰들이 늘고 있다. 사찰 문화강좌는 저렴한 비용으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일반인들이 사찰과 불교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편이라는 점에서 사찰과 불자 모두에게 각광받고 있다. 2001년 문화센터를 개설한 인천 용화선원을 비롯해 특색 있는 문화강좌를 개설한 사찰을 살펴본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10초간 유지합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세요.” 1월 3일 찾아간 인천 용화선원 문화센터 선단공 수업 현장. 10여 명의 회원이 선단공 특유의 몸동작과 단전호흡을 익히는데 열중하고 있다. 선단공은 산중에서 전래돼
“세상의 온갖 경전과 소(疏) 논(論)을 다 통달하면, 이 때문에 깨달을 때에 부처님의 지혜를 얻어 다시는 미혹하지 않게 된다. 이런 지혜를 무애지(無碍智)라 한다.” ‘책 안 읽는 한국인’은 이제 수년째 되풀이되는 ‘해묵은 한탄’이 되고 있다. 미디어캠퍼스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1명은 전공서적과 잡지를 제외하고는 한 해 동안 단 1권의 책도 읽지 않았고, 한 달에 한 권 이상을 읽는다는 비율도 35%를 넘지 않았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독서실태도 나을 것이 없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은 하루 책 읽는 시간이 10분도 되지 않았고, 문화관광부와 한국출판연구소가 1993년부터 10년간 조사한 ‘국민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중 23.7%가 한해 단
{image1}_c돼지는 묘한 짐승이다. “너는 돼지 같다”고 하면 누구나 화를 낼 것이다. 그런데 돼지꿈을 꾸라 하면 좋아한다. 또 고사를 지내거나 할 때는 돼지 머리 앞에 절을 한다. 죽으면서도 웃는 표정을 지은 돼지 머리 앞에~ . 자기가 그렇다는 건 인정할 수 없지만 묘한 주술적 힘을 지니고 있어 재수를 불러들이는 돼지…. 돼지란 동물이 어떻기에 이런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돼지 가운데 가장 스타(?)로 부상한 것은 저팔계일 것이다. 에 등장하여, 힘은 강하지만 먹을 것과 여자를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고질병 때문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또 그래서 우리에게 친근한 느낌과 웃음을 주는 존재가 바로 저팔계이다. 바로 이 저팔계라는 상징 속에 돼지가 가진 이중적 의미가 들어있지 않을
‘열심히 공부하면 신랑얼굴이 바뀐다.’ 어떤 TV광고에 한 학교의 급훈으로 이런 내용이 떴다. 아울러 지독히 못생긴 신랑과 결혼하게 되는 꿈을 꾼 여학생이 기겁을 해서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공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에게 무조건 열심히 공부하라고 채근하는 것보다 동기부여라는 측면에서 무척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된다. 이 광고를 보면 남자들만 예쁜 여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들도 잘난 남자를 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멋진 남자와 예쁜 여자가 환영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기야 예뻐 보여서 손해 볼 건 없다. 얼마 전 자동차가 고장 난 것처럼 길가에 세워놓고, 지나가는 차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반응실험을 본 적이 있다. 옷 잘 입고 예쁜 여자와 대충 헐렁한 옷에
{image1}_c현대불교신문이 계속 발간된다. 운영 주체인 한마음선원이 커다란 용단을 내었다. (주)현대불교신문사는 12월 23일 주주총회를 개최하여 신문사측의 자구책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주)현대불교신문사 이사회는 경영상의 비효율과 누적되는 부실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폐간을 결정한 바 있다. 지난 12년간 ‘현대불교’가 포교와 불교문화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었기에 이런 사태를 아쉬워하는 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폐간 유보결정을 들으니 안도의 숨을 쉬게 된다. ‘현대불교’가 원력과 그간 축적한 노하우로 더 좋은 신문으로 불교계에 보답할 것을 다짐하며 새 출발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새 길을 모색하고 있고 한마음선원 역시
송구영신 다사다난했던 2006년 한 해가 저뭅니다. 삶의 여정에서 험난한 위기를 맞닥뜨릴 때마다 사자후를 토하며 삶의 지표를 일러 주었던 큰스님들의 가르침은 어두컴컴한 바다에서 등대를 만난 것처럼 불자들에게 큰 위안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2006년 한 해 동안 ‘큰스님 편안하십니까’ 코너를 통해 들었던 큰스님들의 법문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것도 새해를 맞는 큰 기운이 될 것입니다. 신년을 열었던 동화사 조실 진제 스님의 법문에서부터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수산 스님, 서울 운문사 주지 운문 스님, 순청 송광사 회주 법흥 스님 등 열네분의 법문을 가려뽑아 향훈의 울림이 큰 부분만을 모았습니다. 큰스님들의 수행력에서 우러나오는 주옥같은 감로법문을 곱씹으며 한 해를 잘 마무리 하시기
오랫동안의 독일유학을 끝내고 5년 전에 우리나라로 돌아왔을 때 불교계에 있어 가장 눈에 띄었던 현상 중의 하나가 불교미디어의 활발한 움직임이었다. 이것은 불교계가 사회의 변화에 눈을 막지 않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징표처럼 느껴져 고무적이었다. 나는 90년대 말에 불교계에서 여러 부끄러운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음에도 왜 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이 미약하나마 불고 있고 그나마 신자수가 격감하지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감시자로서의 불교언론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일이라고 보인다. 더구나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만큼 일반인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파워그룹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비록 불교계의 경우에 있어서처럼 불교계 언론이 재정적으로 아직 독립되어 있지는 못
현대불교신문이 신판 대장경입니다 2년 반의 긴 횡설수설을 어떻게 마감할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날벼락같은 소식이 들여왔습니다. 현대불교신문을 폐간하겠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등불 하나가 위태롭게 깜박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그리고 사부대중 여러분, 그래도 될까요. 1. 왜 현대불교신문인가 터놓고 물어봅시다. 지금 불교는 어디 있습니까. 불교가 어디에서 시퍼런 생명력을 얻고 있다고 보십니까. 사찰입니까, 점에 진열된 불교책들입니까, 스님들이 들고 있는 간화 속에 있습니까. 사찰은 다만 경배의 공간이고, 책들은 일방적 훈계이며, 간화는 일초직입의 예외적 말후구(末後句)입니다. 여기 공통되는 것은 ‘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오직 ‘소통’하는 것, 그 현장에만 살아있습니다. 나머지는
불교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있다. 오색단청의 사천왕상과 괴기한 명부전, 칠성각과 산신각 등 고색창연한 불교의 이미지이다. 천년 전에 성장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한국불교. 샤머니즘과 결합된 불교, 따라서 한민족의 무의식에 면면히 흐르는 정서로서 자리잡고 있는 불교. 외국인들이 한국 방문에서 가장 한국적인 문화 체험으로 한국의 고즈넉한 사찰을 꼽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허지만 전통문화의 보고요 지킴이로서 불교의 현재 얼굴은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고 있고 자랑하고 싶지 않은 천덕꾸러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국 불교를 현대화시켜 한국인의 삶에 다시 뿌리내려보겠다는 서원을 세운 분이 한마음선원의 대행 스님이다. 사찰 건립이나 불상 제작 등이 불사의 전부인 줄 알던 시절에 그 분은 선각자처럼 기
창간 12년을 맞는 ‘현대불교신문’이 폐간의 기로에 서 있다. 1994년 ‘불교의 생활화, 현대화’를 기치로 출범하여 불교언론의 새 장을 열어왔던 그 ?기개?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지려 하고 있다. 그동안 ‘현대불교신문’의 운영주체였던 한마음선원은 지난 12월7일 신문의 해산결의를 통보하였고, 그로부터 3주후에 자동폐간 된다고 언명하고 있다. 지난 12년동안 ‘현대불교신문’이 이룩한 문화적 업적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운 정도로 지대하다. 제호(題號)처럼, 정법(正法) 불교의 정착과 불교의 현대화를 향한 값진 발자취였음을 이천만 불자들은 공감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의 폐간조처는 비이성적일뿐 아니라,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몰상식적 처사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폐간선언의 과정을
12월 1일 열린 조계종 제3차 간화선 세미나에서 조명제 박사(부산대 강사)는 ‘간화선의 사회적 역할’을 주제로 발제하면서 고려 ㆍ중국 송대ㆍ일본ㆍ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간화선과 사회적 관계에 대해 진단하고, 전근대 동아시아 간화선의 역사적ㆍ사상적 한계와 불교 근대화의 과제와 조계종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이상호씨(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박사과정)는 조명제 박사의 발제 내용에 몇 가지 문제점과 아쉬운 점이 있다며 이에 대한 기고문을 본지에 보내왔다.[편집자주] {image1}_c조명제 박사의 논문(이하 논자)은 중국 송대, 고려,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간화선과 사회적 관계에 대하여 깊은 고찰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 논문은 지금 이 시대의 간화선 정체성 확립을 위하여도 시의
10년 전 어느 날 송암 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는 죽림정사 앞마당에 세 그루의 오동나무가 새순을 틔웠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닌데 건너 산에 있는 오동나무의 씨가 날아와 마당가에 나란히 세 그루가 자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뽑아 버려야 한다고도 했지만 스님은 “저도 인연 따라 왔으니 그냥 두라”고 했다. 지금 죽림정사에 가면 한그루의 오동나무가 본래부터 그 곳에 있었던 것처럼 마당 한 켠에 우뚝 서 있다. {image1 center} “세 그루가 나더니 한 그루만 저렇게 남았어. 저 오동나무만 봐도 저마다 제 뿌리 제가 내리고 주위 환경과 어울려가며 스스로를 키워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잖아. 저 나무는 십년 세월을 지내며 주위와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지. 사람 사는 것도 다르지 않아.” 오동
12월 5일 병술년 동안거 입제를 맞아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이 결제법어를 내렸다. 다음은 법어 전문. {image1}_c모두에게는 원래 공적(空寂)한 도리(道里)가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자 한다면, 일체의 허상(虛想)을 집착(執着)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일채의 모든 법(法)이, 마음의 인연(因緣)을 따라 생겨난 허망(虛妄)한 모습인 것을 안다면, 어찌 집착이 있을 수 있겠는가? 방거사(龐居士)가 이르기를 “마음이 여여(如如)하면 경계도 여여하니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 있음도 관계치 않고 없음도 구애치 않는다.” 하신 것이 바로 이 도리이니라. 三千里外 望家鄕(삼천리회 망가향) 雲水重重 客路長(운수중중 객로장) 何必寒風 ?樹葉(가필한풍 감수엽) 碧?重送 暮秋景(벽
대구 수성구 지산동에는 어르신 십여 명이 스님과 함께 수행정진하며 살고 있는 염불선원(주지 성범)이 있다. 1996년 입적하신 수산 스님을 따르던 어르신들이 모여 마지막 남은 여생을 부처님 전에서 수행정진하며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무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11월 29일 사시예불시간에도 극락보전에서는 어르신들의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지난 음력 10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는 년 중 한번 있는 미타참회기도기간이라 수십년 전부터 수산 스님을 따르던 전국의 어르신들이 찾아와 여느 때보다 많은 대중들이 동참했다. 오전 11시 30분, 사시기도가 끝나자 극락보전에서는 50여명의 어르신들이 나왔다. 연세가 70~80은 족히 넘은 어르신들인데, 수행정진하며 스스로를 가
광주불교사암연합회와 현대불교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2006 빛고을 불교아카데미’가 11월 29일 ‘쌍림열반상’을 끝으로 2개월에 걸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린 빛고을 불교아카데미는 1100명이 등록해 매주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빛고을 불교아카데미에는 광주지역 30여 신행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내년에도 새로운 주제와 강사진을 갖추고 진행된다. [편집자주] {image1 center} 오늘은 이번 빛고을 불교아카데미의 마지막 강좌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입니다. 현대들어 서양의 식자층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인류문명사의 흐름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했습니다. 아직 정확한 답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모두가 동의하고 인정했던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image1}_c지난 2개월간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빛고을의 무명을 지혜의 빛으로 밝혔던 2006 빛고을불교아카데미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해 부처님의 십대제자를 주제로 했던 05년 아카데미에 이어 올해는 를 대주제로 부처님의 생애를 팔상성도에 따라 살피는 강의가 8회에 거쳐 진행됐다. 지난해 10월 2005빛고을불교아카데미를 개강을 준비하며 모두가 가졌던 불안감을 생각하면, 이번 회향에서 느꼈던 자신감이야말로 우리들에게 아카데미가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불교아카데미를 준비하던 시기의 광주지역불교계는 불교대학들의 침체와 몇 년간 대규모 대중법회의 동참자 부진 등 불교대중들이 대규모로 동참하는 법회나 교육 과정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
12월 5일 병술년 동안거 입제를 앞두고 태고총림 선암사 방장 혜초 스님이 결제법어를 내렸다. 다음은 법어 전문. {image1}_c중국의 단하(丹霞)선사는 출가하기전 묵자(墨子)를 공부하여 구경(九經)을 통달한 유학자(儒學者)입니다. 어느날 방(龐)거사와 함께 과거시험을 보려고 낙양(洛陽)으로 가는 도중 행각(行脚)하는 스님 한분을 만났습니다. 차(茶)한잔을 나누던 중 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시오?” “과거를 보러갑니다.” “공부가 아깝습니다. 어찌 부처를 뽑는 곳으로 가지 않고 벼슬아치를 뽑는 곳으로 갑니까?” “부처를 어디서 뽑나요?” “강서(江西)에 계시는 마조(馬祖)선사께 법을 듣고 도(道)를 깨친 이가 아주 헤아릴 수 없이 많소, 그곳이 바로 부처를 고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