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젊은 시절 실수 자녀는 범하지 않길 바라며 솔직한 대화 하고 싶지만 잔소리로 그치는 경우 많아 자녀 말, 온 마음으로 들을 것? “아빠한테 원하는 거 3가지만 얘기해봐.” 대학교에 갓 입학한 딸에게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이 충격적이다. “음, 전화하지 말 것, 문자하지 말 것, 언제 들어 오냐고 물어보지 말 것.” “….” 한마음아버지마당에서는 첫 주를 마치면 아버지들에게 아내와 자녀가 원하는 것 세 가지를 알아오라는 과제를 준다. 단 조건이 있다. 아내와 자녀가 자신에게 원할 것이라 생각되는 세 가지를 본인이 먼저 적고, 그 다음에 물어보도록 했다. 전 회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의 아버지세대는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이자 가치이다. 자녀들도 당연히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 되는 법’ 배운 적 없어 가족과 사회 요구 앞에서 ‘갈팡질팡’ 점점 더 설 곳 없는 존재 되어가 ‘아버지 행복법’ 연구 필요성 느껴 얼마 전 종영된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넉넉지 않은 가정서 언니와 생일이 같아 한 개의 케이크에 촛불만 새로 켜서 생일축가를 부르는 가족. 그리고 그게 싫어 화를 내고 울면서 뛰쳐나간 둘째 딸을 보며, 아빠는 새로 장만한 생일케이크를 손에 들고 딸을 찾아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미안해, 아빠가 아버지 역할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 우리 딸이 이 아빠를 이해해줘.” 단순히 드라마로 흘려듣기에 이 대사는 이 세상 아버지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필자를 포함한 한국 아버지들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어떤 대상에 대한 내 사랑은 지나고 보면 늘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상대에게 끌려 애틋하고 그립고 매일 보고 싶어지면 그게 사랑이라 생각했고, 그 사랑이 영원하길 성급하게 꿈꿨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언제나 나 홀로 낯선 곳에서 찬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얼굴과 가슴에 몰아친 흙바람도 사랑을 위한 시련이라 여기며 미련하게 견디며 기다렸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온몸이 모래에 파묻혀 더 나아가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난 억울하지 않다. 결실을 맺은 사랑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혼자만 영원한 사랑이라 믿고 애태웠어도, 사랑은 온전히 아름답다. ‘사랑’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겁고 설렌다.
외나무다리는 깨달음 의미 강물의 시체는 육신 초탈 목숨 건 도전이 곧 수행 부처님 땅에 도달해서 만나는 갈림길…. 낡은 통나무로 된 아득한 외나무다리, 밑바닥 없는 배. 이것들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그렇게 고생스럽게 도달한 현장법사 일행을 끝까지 괴롭히기 위한 시험? 그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시험이라면 다시 요괴를 등장시킨다던가 하겠지요. 그렇다면 이 갈림길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아득한 외나무다리는 깨달음에 이르는 마지막 외길을 이야기하는 것이겠네요. 수만 갈래의 길이 있지만 결국 마지막은 외길일 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수천 수만 가지 방편을 통해 깨달음을 지향하지만 결국은 궁극적인 깨달음을 향한 외길 하나뿐이라는 것이지요. 수만 갈래의 길, 그 길이 겉으로는
1620~1640년대 불상 제작 주도 조각승 청헌 스님과 사형사제 현진 스님과 청헌 스님과 불상 제작 파주 보광사 봉안 불상에 흔적 남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두 번의 전쟁이 끝나고 사찰의 중창과 중수로 명산대찰(名山大刹)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후, 1640년대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의 복원이 이루어진다. 이 시기는 17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조각승인 현진 스님, 수연(守衍) 스님, 인균 스님 등에게 불교조각을 배운 스님들이 수화승이 되어 불상 제작을 주도하게 된다. 1630~1650년대 전국적으로 사찰의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100여명의 조각승들이 불상을 만든다. 대형 불상을 제작할 시에는 공동 작업이 행해진다. 이 가운데 근래 수화승으로 제작한 불상이 발견된 조각승 영색 스님이
사찰에 현존하는 목각탱은 8점 문경, 예천 등 경북북부에 중점분포 삼존불상과 일체형의 후불 목각탱 맨 아래 하단부는 구품연지의 세계 목각탱, 후불탱화의 조각화 일반적으로 대웅보전 석가모니삼존불 후불벽에는 영산회상도를,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불 후불벽에는 극락회상도를 후불탱화로 봉안한다. 후불탱화의 재질은 삼베 천이거나 벽화의 경우 마감한 흙벽 자체가 바탕이 된다. 불전건물의 본존불 뒤에 후불탱화를 배치하는 작례는 한국 특유의 독창적인 양식이다. 후불탱화 대부분은 천이나 흙벽에 조성한 평면회화다. 그런데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전란 이후 17세기 후반에 경상북도 문경, 예천, 상주 일원을 중심으로 대단히 창의적인 후불탱의 양식이 시도되어 주목을 끈다. 평면회화 양식의 후불탱을 입체적 목조조각으로 표현한 것
정몽주 문하서 성리학 공부 조선 전기 나라 기반 다져 〈척불소〉 상소 올렸지만 불교 교유는 계속 이어가? 조선 전기의 문인 하연(河演, 1376~ 1453)은 조선이 건국된 후 성리학을 토대로 나라의 기반을 다지는 데 공헌했다. 그의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 또는 신희옹(新稀翁)이다. 어린 시절부터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과 야은 길재(冶隱 吉再, 1353~1419)에게 뛰어난 필법과 재주를 인정받았으며 대학자 정몽주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고려의 은택을 입었는데 조선이 건국되자 부친 하자종(河自宗, ?~1433)은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들 하연이 식년문과에 급제, 봉상시 녹사에 중용되자 마음을 바꾸어 조정에 나아
현실은 사실일까? 진실일까? 현실을 대하는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인식이 되며 동일한 현실 속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진실한 인식을 하는 방법들을 찾아 나선 작가가 있다. 선사상 접하며 인식의 확장 현실의 표면 아닌 본질 추구 추상미술로써 현실을 표현해 ‘卽心是佛’의 메시지 읽어야 블링키 팔라모(Blinky Palermo, 1943~1977, 독일)는 미니멀적 추상미술의 선두주자에 들어가는 작가이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며 세상 속에 묻혀있던 그의 작품들이 1980년대 이후 많은 찬사를 받으며 다시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요셉 보이스의 제자이며 몬드리안의 미학적 개념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그는 예술의 정신성에 대하여 많은 고뇌를
올해 연말까지 예정돼 있던 김준호 교수의 '니까야서 길을 묻다' 연재가 필자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종료됐음을 알려드립니다.
마음이 헤이해지면 꼭 발생하는 재앙 끊임없는 정진 의미 “우환 속에서 오히려 살게 되고, 안락함 속에서 죽게 된다”는 맹자의 말, 참으로 되새길 만한 말이라 했지요? 우리는 늘 안락함을 바랍니다. 그것을 추구함은 나쁠 것이 없지요. 행복이란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경향입니다. 그리고 안락함이란 행복의 기본 조건인 셈이지요. 그런데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진리가 있지요. 안락함도 무상합니다. 변합니다. 계속 안락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안락함에 빠져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불행이 그 속에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우환 가운데 있으면 괴롭기는 하지만 경계하려는 마음이 있기에 더 큰 불행이 닥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우
? ? ? ? ? ? ? ? ? 조각승 인균 계보 속한 스님 1660년대 수화승으로 활동 무위사와 상원사 불상 조성 전국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 17세기 중반에 활동한 많은 조각승 가운데 몇 명의 스님이 수화승(首畵僧)으로서 제작한 불상이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조성발원문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불상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대의 처리 등 양식사적 검토를 통하여 작가를 추정하였지만, 근래의 불상 조사가 진행되면서 복장으로 봉안하였던 조성발원문 등이 발견되어 스님의 활동이나 계보 등이 명확하게 밝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대표적인 조각승이 회감 스님이다. 스님은 5년 전만 해도 2점밖에 기년명 불상이 조사되지 않았지만, 계속적인 학술조사가 이어지면서 기년명 불상 1점과
어느 남자 어르신을 상담할 때였다. 고된 노동으로 평생을 보내셨고 떨어져 사는 가족들과 사이도 좋지 않은 분이셨는데, 신세한탄을 하시다가 느닷없이 자기 상황에서 어찌하면 좋을지 똑 떨어지게 답해달라며 졸랐다.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고 말을 돌리니 그만 화가 폭발하셨다. “이게 무슨 상담이냐. 원 이거 해서 밥이나 먹는 놈인지 모르겠다”며 화를 내시는데 여간 당황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상담이란 거울 같은 것. 차분히 이해시키고 달래드리니 조금씩 화가 누그러져갔다. 찔끔찔끔 눈물을 쏟고 이런 저런 후회를 하며 해묵은 감정들을 묶고 풀기 여러 번, 그러다가 문득 한마디를 하셨다. “그래도 나 착한 늙은이여, 마누라는 그래도 나 오래 살기 바랄거야.” 패인 주름 사이로 빛나는 눈빛을 비롯해 그 분의 첫 표정
내가 여행을 떠나며 다짐한 더 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다는 각오의 모습이 뒤를 돌아보며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은 강력한 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늘 기대하며 믿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무너져도 다시 쌓고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요새와 같은 멘탈을 만든다면 분명 상처받진 않을지 몰라도 성 안에는 홀로 살아야 할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삶은 모두와 어울려 살아가는 시장과 같은 삶에서 그 안에 있는 내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스스로 믿는 것임을 알았다. 또 그렇게 늙어가는 것이 아름다운 삶의 후반부로 들어서는 게 아닐까? 절집을 빠져나와 다리의 끝에서 작은 찻집을 만났다. 차나 한잔하고 가시게라는 작은 문구가 가슴을 따뜻하게 만
화사한 색채들이 보는 사람의 시각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각각의 색상들이 어울려 하나의 커다란 예술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장 창의적이며 한순간도 동일하지 않은 움직이는 작품이다. 예술에 자연 추가한 대지 예술가 자연 속 시간의 흐름을 이미지화 9개의 거울 배치한 작품 ‘신기루’ 공간 속 무수한 변화 묵묵히 보여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 1938~1973, 미국)은 자연의 커다란 변화를 보며 자신의 예술에 자연을 추가한다. 대지예술가로 잘 알려진 스미스슨은 거대한 자연 속에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을 만들어 놓는다. 이 작품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처음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가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자연 속으로 돌아가 그 흔적을 발견 할 수가 없게 된다.
만추의 도솔천은 여울이 아니라?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모든 집착을 내려놓는 무여열반 도량 두두물물 종의 다양성 1980년대에 ‘뿌리깊은 나무’에서 발행한 〈한국의 발견〉 전라북도 편에서 이 고장 사람들의 기질을 일러 “낙천적이며 평화롭고 다사로움을 드러내는” 온의 정신을 가졌다고 평했다. ‘온’ 이라는 말은 백제의 ‘백(百)’이나 전주의 ‘전(全)’이나, 완산의 ‘완(完)’이나 모두 같은 뜻이라고 하면서, ‘온’은 완전하고, 원만하며, 순수하고, 모든 것이 어울린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늘은 땅을 내고 땅은 사람을 기른다. 사람의 기질은 환경과 자연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지리가 인문의 바탕이 된다. 인문(人文)이라는 것은 삶의 무늬다. 삶의 무늬를 펼쳐보면 어느새 자연을 닮아 있다.
쥐 요괴를 살려준 탁탑천왕 요괴 행패에 대신 사과해 사람 처신의 어려움 표현 앞에서 이야기한 것을 좀 다시 상기해 볼까요? 도교의 근본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수명을 늘리고, 신선이 되어 영원히 산다.” 대충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목적을 무분별하게 추구하고,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면 매우 위험하게 되지요. 예를 들어 도교의 수양법 가운데 하나인 방중술 자체야 잘못된 것이 아니겠지만, 그것이 잘못된 성적인 행태를 낳게 되면 얼마나 위험하겠어요? 모든 사태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요괴 도사, 즉 국왕을 홀려서 아이들을 재료로 한 영약을 만들게 한 그 도사의 말을 좀 들어볼까요? ? 사계절에 맞추어 약재를 채취하고 아홉 번 뜨거운 불에 정련하여 단약을 만든다. 푸른 난새 타고 옥황상제
‘대상세계’(境)를 제대로 보고 아는 데는 여러 가지 능력이 요구된다. 어원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상세계란 움직이는 것이어서, ‘여섯의 감각기관’(六根)으로 그 대상을 받아들이는 양상은 매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움직이고 있는 대상을 시각으로 포착할 때에 주어지는 자료는 ‘동영상’이다. 그러나 실제가 동영상의 형태라고 해도 ‘대상과 접촉’(觸)하여 ‘받아들일’(受) 때에는 1차적으로는 그 영상들을 일련의 정지된 화면으로 붙잡는다. 곧 ‘시각의 대상’(色)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사건이든 시각 자료의 특정 부분에 먼저 초점을 맞출 것인데, 시각을 어느 지점에 두느냐에 따라 생겨나는 느낌과 인식과 감정의 굴곡은 다양한 층을 이룬다. 하나의 동영상에서 저마다 선택한 정지화면들의 집합, 이로써 저마다 ‘시각으로 구
“으아앙! 쪼꼬미야, 미안해. 오빠가 정말 미안해!” 찬솔이는 베란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다리를 버둥거리고, 팔을 휘저어 가슴을 쳐도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내가 너를 먹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저녁 식사에 닭볶음탕이 올라왔을 때 찬솔이는 냉큼 닭다리를 가져다가 맛있게 뜯어먹었다. 엄마가 남은 닭다리를 아빠 밥그릇에 올려놓자 은솔이 누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찬솔이를 흘겨봤다. “왜? 지난번엔 엄마랑 누나가 먹었으니까 이번엔 아빠랑 내 차례라고.” 닭은 왜 다리가 두 개밖에 없는 걸까. 네 개라면 좋을 텐데. 닭 요리를 먹을 때마다 누나와 찬솔이가 다리를 서로 먹겠다고 싸우자 엄마가 규칙을 정했다. 이번에 엄마와 누나가 먹으면 다음엔 아빠
송설체(松雪體) 능한 문재 日·中 사신도 문장력 감탄 세간 ‘변절자’ 폄하 받지만 허망한 功名의 이치 깨달아 신숙주(申叔舟, 1417~1488)는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 찬문(贊文)을 올릴 만큼 시서(詩書)에 능했던 인물이다. 특히 송설체(松雪體)를 잘 썼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원대 조맹부(趙孟?, 1254~1322)가 완성한 서체이다. 왕희지의 서체를 법 삼아 유려하고 굳센 서체를 만들었던 조맹부는 고려 후기 이제현(李齊賢, 1287~1367)과 깊이 교유했다. 그러기에 조맹부의 아내 관도승이 죽었을 때에 이제현이 멀리 호주까지 문상을 갔던 것이니 그들의 사귐은 신분과 나이, 학식과 국경을 초월했던 셈이다. 따라서 고려에서 송설체가 유행한 것은 이제현의 영향이 컸으니 신숙주가 송설체에 능
동화나 영화 속 장면을 상상하며 찾아가는 곳은 대부분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실망을 가득 안고 돌아 나오면서 그래도 스스로 위안한다면 그래도 아직은 내게 세상에 대한 기대가 많이 남아 있다는 믿음이었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더 이상 놀랄 것도 기대할 것도 없어지는 것 같다. 내가 믿고 있었던 무언가가 실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동화나 소설, 영화에 공감해 울고 웃는 자신을 더 이상은 발견할 수 없거나, 내가 사랑하고 아낀 모든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내게서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늙어버린 자신을 마주하는 날이 아닐까? 다시 기대하고, 무너지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생이 아름답지 않을까? 세상은 다 그럭저럭 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