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만 전승되는 예수재사후를 위해 미리 복덕을 쌓는 의례라 하여 생전예수재를 ‘살아있을 때 올리는 천도재’라 보기도 한다. 망자를 대상으로 한 천도재와 비교할 때 예수재의 가장 큰 특징은 ‘시점’과 ‘주체’이다. 시점은 죽은 다음이 아니라 생전에 미리 치른다는 것이고, 주체는 재자(齋者)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재는 ‘내가 주인공’이 되는 주체적 의례라 할 수 있다. 모든 천도재는 주인공이 망자이기에 남은 자들이 치러주는 타행(他行)의 의례이다. 이에 비해 예수재는 스스로를 향한 자행(自行)의
▶한줄요약직장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는 스트레스, 갈등 등 고통이다. 실제 한국인의 직장인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40점이라는 조사도 있다.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컴패션 경영’이 주목된다.월요병(月曜病)! 네이버 국어사전에 ‘한 주(週)가 시작되는 월요일마다 정신적·육체적 피로나 힘이 없음을 느끼는 증상’으로 정의되어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주말을쉬고 나면다시평일로돌아가야하는데주말 동안늘어졌던몸이회복이덜되어서기운이없고무기력해진상태.또는주말 동안너무잘놀다 보니다시일하기위한콘트롤모드로의변환이되다만상태.꼭주말다음뿐만이아니라연휴 뒤나
비만, 현대인에게 큰 숙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비만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몸무게의 숫자만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개인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개인에 따라 지방세포의 크기가 클 수도 있고, 성장기 과정에서 지방세포의 수가 많은 사람도 있어서 몸무게의 숫자를 비만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비만이라는 것은 체내에 지방 조직이 과다한 상태를 말한다. 체중은 많이 나가지만 근육량이 증가해 있고 지방량이 많지 않은 경우는 비만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오히려 표준체중이거나 적은 체중이더라도 체내 지방이 과다하게 축적되어 있
뉴델리에서 며칠 ①-그 여잔 내가 구례 절에 있을 때 데리고 있던 공양주였소이다. 내가 이곳으로 들어오니까 따라왔고, 이지안 금어가 아들과 들어오니까 그들의 수발을 들게 된 것이오.-그렇군요.그들은 지금 조사 중이니까 뭔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어쩌고 하면서 돌아갔다.-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그날이 언제쯤…?돌아가는 그들에게 살림을 담당하는 원주(院主)스님이 지객스님 곁에 있다가 물었다.-일단 기본조사가 끝나야 합니다. 날이 더워 마냥 방치할 수 없으니 돌아가는 대로 병원 안치실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 아세요.그들이 돌아가고 나자
승방-법당-부엌-대청을 갖춘 대웅전양산 안적암은 천성산(922m) 중턱에 있다. 접근하는 길이 수월치 않다.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지 못하니 언제 가더라도 고요하다. 원효 스님은 이곳 천성산 자락에서 〈화엄경〉을 강론한 것으로 전해진다. 89암자에 1천 명에 달하는 수행자들이 머물렀다. 산의 이름도 1천 명의 성인이 머문 산이라는 의미로 ‘천성산(千聖山)’이다. 안적암은 천성산 89암자 중의 하나였다. 옛 가람의 흔적은 일주문과 대웅전에 남아있다.대웅전은 1646년에 영훈대사가 중창불사로 세웠다. 그 같은 사실은 강희 18년(167
우리들의 꽃자리는 어떤 자리일까?모두가 바라고 앉고 싶은 그 자리 꽃자리.구상 시인의 시 중 한 소절입니다.“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가시방석처럼 여기는 자리내가 지은 감옥속에 갇혀있고내가 만든 쇠사슬에 메여있고또 그가 만든 동아줄에 엮어있다.저 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그제사 세상이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그것이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 세상 살아가는 우리네들 모두가 환경과 조건이 엉망이라는 이들이 참 많다. 그리고 고통, 시련이 나를 피하지 않고 그냥 나에게 다가온단다. 이 일을 어찌할까. 사람들 중
공복 산책/ 조온윤걸어가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이걸어가고 있었다하염없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한 가지 대답을 만나고 싶었지이봐,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자 하는 거지?깨달음을 얻고 싶었지만 글쎄, 이곳은 보리수 아래가 아니고이곳은 사과나무 아래가 아니어서 사과가내 발밑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허기가 생각을 이길 때나는 텅 빈 몸을 채우러 외출하고 있을 뿐이었다거리에는 다만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걸어오는 사람들도 있었고제 몸을 끊임없이 마르게 하는 것으로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보리수 대신 천막으로 그늘을 치고 그 아래 가부좌를 틀고
〈원문〉“아난아, 어찌하여 육입(六入)이 본래 여래장인 묘한 진여의 성이라 하느냐 하면, 눈동자가 쏘아볼 때 피로가 생긴 경우에도 눈이 쏘아보는 것이나 피로가 생긴 것이 모두가 보리가 쏘아보며 피로를 발한 모습이니라. 밝고 어두운 두 가지 망진(妄塵)을 인하여 견을 발하여 가운데 있으면서 이 진상(塵象)을 흡취(吸取)하는 것을 보는 성품(見性)이라 이름하거니와, 이 견이 저 밝고 어두운 두 진(塵)을 여의고는 필경에 자체가 없느니라. 이러하니 아난아, 마땅히 알아라. 이 보는 것(見)이 밝고 어두운 명암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근(根
공관(空觀)을 할 줄 모르면 이때의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다. 공관을 하기 위해서는 중심 분리를 통해 이면을 확보해야 한다. 6장, 6부의 균형이 깨졌을 때 중심에서 드러나는 경상이 있다. 이때 드러나는 경상이 13가지이다. 그 중 12가지는 장부가 안 좋을 때 드러나는 경상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장부의 상태가 안정되었을 때 드러나는 경상이다.중심 자리에서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설렘이 일어나면 신장이 안 좋은 것이다. 메슥거림이 느껴지면 비장이 안 좋은 것이고, 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지면서 통증이 있으면 심장이 안 좋은 것이다.
“무엇을 열반이라고 합니까?” 아주 간단한 질문이지만 질문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궁금하고 난해한 문제일 것이다. 몸이 사라지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두려운 죽음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자연스러운 열반이 된다. 하나의 문제가 서로 다른 행로를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생멸을 보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생멸이 존재한다고 보는 기준에서는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떠나지 않는 근심거리이다. 하지만 생멸이 없다는 앎의 기준에서는 삶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환(幻)이므로 아무런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생멸에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불교와 서양의 만남은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최근 들어 서양에서 불교는 일부 지식인층의 지적 호기심 단계를 넘어 대중의 지대한 관심 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선불교(禪佛敎)에 입문한 스티브 잡스(Steve Jobs), 할리우드의 수도승이라는 별명을 얻은 할리우드 스타 리처드 기어(Richard Gere), 미국인으로 우리나라 숭산 스님의 제자가 된 현각 스님 그리고 달라이 라마의 노벨 평화상 수상 등은 현대 서양사회에서 불
지금까지 서구 치유 명상의 장점과 한계를 살피며 불교의 깨달음 명상의 가치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하지만, 깨달음 명상 중에서도 정견 없는 참선 명상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역사적인 사례로 확인하였다. 이제 결론으로 서구 치유 명상의 대안으로 한국 간화선에 대하여 살펴보자.한국불교의 선(禪)은 동아시아 선종의 종지(宗旨)인 직지(直指), 돈오(頓悟)의 전통을 가장 잘 전승하고 있다. 어째서 그런가? 선종이 탄생한 중국은 당송시대에 융성하여 신라와 고려, 일본, 베트남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면서 선종의 황금시대를 구가하였지만, 근세에 와
모든 사람은 저 나름대로 재능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이 세상이 나의 재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장자〉에 보면 ‘쓸모없는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습니다.이 세상에 가치 없는 것은 없습니다. 휘어진 나무는 휘어진 대로 가치가 있고, 생채기가 있는 나무는 그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꼭 궁전의 대들보가 되어야 하고, 웅장한 집의 대들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쓸모가 없어서 산을 지킨다는 것은 쓰임이 없어 생명을 보전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쓰임이 없다고 하지만, 나무는 그 자
지난 연재에서 ‘존재의 바탕(법신)과 그것의 예술적 표현’에 대해 언급했다. ‘바탕 의식’의 특성은 ‘여여(如如)하다’ ‘고요하다’ ‘순수하다’ ‘청정하다’ ‘반응하지 않는다’ ‘부동(不動)이다’라고 정리한 바 있다. (사마타 수행을 통한) 바탕 의식에 대한 눈 뜸으로 인해, 고통의 개체의식(자의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를 맛볼 수 있다는 원리를 논했다.이러한 바탕 의식을 ‘법신’이라 하고, 대승불교의 불신관 또는 우주관은 법신에서 시작한다. 법신에서 보신이 일어나고, 보신에서 응신이 일어나는 ‘법신→보신→응신’의 ‘삼신(三身)의
음력 2월 초가 되면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아득한 바람의 궁전에서 제주를 찾는다. 영등할망은 보름 동안 제주의 땅과 바다에 풍요와 생명의 ‘씨 뿌림’을 한다. 그러면 복수초와 매화를 시작으로 동백·수선화·유채 등 바람의 꽃들은 기운을 차리고 그 향기를 강렬하게 내뿜는다.봄바람이 살랑거려도 아직 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기구한 사연을 가슴에 담아둔 씨앗들도 있다. 이번 오등동사지 발굴에 따른 이야기들이 그렇다. 우선 이번에 출토된 자기류 가운데 청자가 많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제주에서 흔치 않은 사례다. 제주불교의 문화 수준을
생전예수재, 생전에 만드는 수의올해는 이월에 윤달이 들어 사찰마다 일찌감치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 입재 법회를 봉행한 소식이 분주하다. 백여 년 전인 1917년에 순천 송광사에서 예수재를 행한 기록이 전하는데, 당시의 예수재도 윤이월이었다. 이는 통영에 거주하는 부부를 위한 독설판 예수재로, 윤 2월 2일에 입재하여 열사흘이 지난 14일에 회향했다고 한다. 당시 지전을 만드는 조전소(造錢所)를 설치하고, 각종 번(幡)과 개(蓋), 지화와 서기포(瑞氣布) 등의 장엄을 갖추어 의식문에 따라 봉행한 여법한 예수재였다.이처럼 오늘날과 마찬
왕십리 단우물 근방에 살고 계셨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나는 1950년대 말 심인당(心印堂)이라는 절에 다녔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참 특이한 절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그곳이 울릉도에 본찰이 있는 대한불교 진각종 심인당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그곳 법당에는 불상도 없고 법단에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란 글이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왼손의 검지를 세워 오른손으로 말아 쥐고, “옴마니반메훔”을 30분 남짓 염송을 하면 딱! 딱! 딱! 전수님의 짧은 죽비 소리와 함께 몸을 편히 쉴 수 있었다. 염송만
‘행복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지금도 어린 시절 그때가 떠오른다. 할머니와 김을 매다가 힘들면 밭 둑 잔디밭에 누워 흰 구름 떠다니는 하늘을 바라보던 모습이다. 아지랑이 아롱거리고 나비와 잠자리가 날아다니던 그때가 내 기억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다가온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이처럼 ‘행복하다’라고 하면 우선 먼저 기억 속에 어떤 상황이 함께 떠오른다. 언덕 위 바위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본다든가, 길가 노란 수선화와 복수초가 환하게 피어있는 모습, 까치와 참새 떼가 날아다니는 것 등,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연
뉴델리에서 며칠 ①가겟집 여자가 고개를 갸웃했다.-한국 사람들 요상하게 생겨서 뭐 하긴 한대…. 나이가 수월찮니 됐지 아마.-얼마나요?사내가 다시 물었다.-우리 나이로 한 육십 한둘이 되었나?가겟집 여자가 대답했다.육십 한둘? 뜻밖이었다. 그 양반이 그렇게 젊어 보였나? 조실은 이지만 금어를 떠올리며 가겟집 여자를 가림막 틈새로 바라보았다.-맞아유. 그렇게 되었시오.-여자가 함께 죽었는데?-그 한국여자, 공양주야요.-공양주?-아, 스님 밥해주는 사람 말이오.-그래요? 그 여잔 몇 살이나 되었소?-한 쉰 됐나? 소문에는 이곳에서 집도
〈원문〉“아난아, 어찌하여 오음이 본래 여래장인 묘한 진여의 성(性)인가 하면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깨끗한 눈으로 청명한 허공을 볼 때는 오직 맑은 허공뿐이어서 툭 트여 아무것도 없다가 그 사람이 까닭 없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눈을 부릅떠 있다 눈에 피로가 일어나면 곧 허공에 따로 어지러운 헛꽃(狂華)이 보이기도 하며, 다시 온갖 헛것이 있게 되나니, 색음(色陰)도 마땅히 이와 같은 줄 알아야 하느니라.아난아, 이 헛꽃이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눈에서 난 것도 아니니라. 만약 허공에서 나왔다면 이미 허공에서 나왔으니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