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부루나야, 물속에 해의 그림자가 나타나거든 두 사람이 물속의 해의 그림자를 같이 보다가 한 사람은 동쪽으로 가고 한 사람은 서쪽으로 가면 해의 그림자도 두 사람을 따라 각각 동쪽 서쪽으로 가 본래 있던 표준 위치가 없나니 해가 하나인데 어찌하여 그림자는 동서로 각각 둘이 되어 가느냐고 따질 수 있겠느냐? 또 물속의 해의 그림자는 둘인데 어찌 하나로 나타났다 하겠느냐? 완연히 허망하여 의빙할 근거가 없느니라.부루나야, 네가 여래장에서 색(色)과 공(空)으로써, 서로 기울고 서로 빼앗으므로 여래장도 따라서 색(色)과 공(空)이
처음 꼬리뼈가 열리는 것은 척추뼈 순화의 과정에서다. 특히 선천원기가 깨어날 때 꼬리뼈의 자극이 극렬하게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꼬리뼈 순화가 충분하게 진행되었으면 내단전이 형성된 이후에 나타나는 증상들이 간소해진다. 만약 척추뼈 순화의 과정에서 양 족심(발바닥의 용천혈)이 열렸으면 그 이후에는 극심한 통증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반신 소주천의 경로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중간중간 꼬리뼈 순화가 진행된다. 가슴에서 일어나는 격정이나 장부에 쌓인 업식들은 척추뼈에 내장된다. 척추의 업식은 꼬리뼈에 내장된다. 때문에 꼬리뼈 속에는 극한의
“상상하다”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첫째,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보다. 둘째, 외부 자극에 의하지 않고 기억된 생각이나 새로운 심상을 떠올리다. 재생적으로 상상하는 일과 창조적으로 상상하는 일이 있다’이다. 이 뜻을 보면 말의 논리성은 맞지 않지만, 삶의 현상으로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 뜻을 반복하여 읽다 보면 인간은 자신들이 알 수는 없지만 다른 생명체로 살아왔음을 은연중에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문장의 구조를 보면 꼭 내가 아닌 나의 경험에 대해 내가 다시 마
이 거리에 서서 그녀와 짜이를 마시면서 킬킬거렸던 때가?국립 도서관은 거리가 멀었으므로 서점이나 찾아보자고 했다. 그럴듯한 서점이 없었다. 서점이라고 해야 대부분 열악하고 조악한 편이었다. 꼬질꼬질한 공간에 촌스럽게 제본된 책들이 여기저기 널렸다. 입구에서 돌아가는 선풍기는 꼭 숙소의 선풍기를 닮아 있었다. 녹이 슬고 덜덜거리는 것까지. 덕지덕지 묻은 때가 더운 바람을 타고 금방이라도 달라붙을 것 같다. 생각이 그래서인지 갑자기 코가 매웠다. 재채기를 두어 번 하고 나서야 멎었다. 정말 선풍기의 바람 때문일까, 내 의식의 발로일까.
계절의 여왕 5월이 되면, 화단이나 울타리에 장미꽃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붉은 꽃 속의 치명적인 가시를 가진 장미는 소양인의 성품을 닮아 있다. 소양인은 밖으로 화려하게 꾸미기를 잘하는 외향적 성품이지만, 날카롭고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이다.장미의 꽃말에서 빨강은 ‘열렬한 사랑’, 흰색은 ‘순결함’과 ‘청순함’, 노랑은 ‘우정’과 ‘영원한 사랑’이다. 기원은 B.C 3000년경에 중동지역에서 다마스크 장미가 관상용으로 재배되었다고 한다. 로마시대에는 장미를 증류해 향료를 얻어 귀족들의 생활필수품으로 애용해 왔었다. 우리나라에서
내 등(燈)은 내가 지킨다이삼십 년 전만 해도 부처님오신날이면 목욕재계한 신도들이 하루 전날 절에 와서 밤새워 기도하는 문화가 있었다. 당시에는 전기로 등을 밝히던 시절이 아니었고, 등 안에 초를 꽂아 불을 켰으니 화재의 위험 때문에 ‘법당 등’의 개념도 없었다. 따라서 전날 밤부터 대웅전 앞마당에 등을 달았는데, 그들은 법당에서 기도하지 않고 돗자리를 펼쳐놓은 등 아래서 밤을 새웠다. 바람이 불면 두 손으로 불이 꺼지지 않도록 보듬어, 밤새 자신의 소망이 담긴 등을 지키며 기도한 것이다.인근 부석사에서도 철야기도를 하며 부처님오신
현대인들이 가장 괴로움을 느끼는 스트레스와 화에서 벗어나려면 일시적인 효과의 힐링 명상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깨달음 명상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불교의 깨달음 명상 중에서 티벳불교의 최고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인내와 용서의 지혜와 대비되는 한국불교의 대표 선지식 성철스님의 참회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현대인의 스트레스와 화는 만병의 원인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 한다. 아마도 현대인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 스트레스가 아닐까? 캐나다 학자 한스 셀리에는 스트레스를 “정신적, 육체적 균형과 안정을 깨뜨리는 자극에 대하여 자신의
한국불교의 전통 수행법인 화두선은 너무 고준하여 재가 생활인들에게는 별 효험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지금 유행하는 치유 명상을 하면 스트레스와 화를 다스려 일상생활에 바로 도움을 얻는다고들 한다.하지만, 불교의 경전이나 선어록에는 참으로 무궁무진한 생활의 지혜가 담겨있다. 화두선의 교과서라 하는 대혜선사의 〈서장〉에는 송나라 고위 관료들에게 일상생활에서 마음 다스리는 지혜를 무궁무진하게 전하고 있다. 오늘은 현대인의 스트레스나 화를 유발하는 남의 비난이나 핍박에 대처하는 선의 지혜를 알아보자. 현대인의 가장 큰 괴로움
영가를 위한 통과의례천도재에서 영가의 관욕은 통과의례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관욕으로 업과 번뇌를 씻은 뒤, 부처님 앞에 나아가고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욕의 절차는 영가가 생전에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삼업(三業)을 정화하고 새 옷을 갈아입는 의미로 진행된다. 따라서 비밀스럽고 신묘한 성격을 지녀, 병풍을 치거나 가설공간으로 관욕단을 마련하여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관욕의 절차는 병풍 안팎에서 이원적으로 전개된다. 병풍 바깥에서는 법주 스님이 세부 절차에 따라 진언을 염송한다. 업의 정화과정을 몸ㆍ입ㆍ얼굴 등을
“맑스주의와 불교는 동일한 과업을 서로 다른 수준에서 각각 수행하고 있다.”이 인용문은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가 그의 역작 에서 했던 말이다. 한 때 맑스의 서적이 국가의 금서였고, 공산주의 국가와 적대적 관계를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이 말은 매우 낯설게 들릴 수 있다. 혁명과 투쟁을 이야기하는 맑스주의가 어떻게 비폭력을 이야기하는 불교와 동일한 과업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맑스주의가 공산주의의 이론적 토대이기는 하지만, 맑스주의와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 러시아, 중국의 공산주의와는 차이가 있음은 주의해야한다
‘궁극의 깨달음’은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되는가? 불교 미술과 불교 경전은 모두 깨달음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하고 있다. 미술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조형(그림이나 조각)으로, 경전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문자(또는 언어)로 그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불교 그림의 시원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중생들을 위해 그려진, 아잔타(기원전 1세기에서 7세기까지 불교 예술로 장엄된 인도 석굴)의 벽화로 잘 알려져 있다. 직관적 전달력에 있어 미술은 문자를 앞서기도 한다. 깨달음의 세계를 시각적 조형물로 표현하는 것은, 어느 시대이건 어느
필자는 10여 년 전에 금연을 시작했고, 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당시 금연 시도를 하면서 느낀 점은 내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담배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3개월 이상 지속하지는 못했다. 피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면서 참았기 때문에 답답함과 괴로움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상당했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의 하나가 직장 근처 대학병원에서 금연클리닉 상담을 받는 것이었다. 전문의와 상담 후 자연스럽게 금연 보조약을 처방받았다. 해당 약은 흡연을 일정
3 이 분 마르기 전에 돌아오소서난타는 머리를 내저었다.-아직 못 보았습니다.-그렇다면 난타야 그리로 가보자구나.붓다가 왜 향취산에 자신을 데려가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난타는 붓다의 뒤를 따랐다.얼마 후 그는 향취산에 서 있는 자신을 의식했다. 그는 붓다에게 어떻게 저를 이곳으로 데려올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신통력을 의심하는 것 같아 감히 물어보지는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붓다의 경지는 붓다만이 아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도 붓다의 경지를 알 수 없기에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붓다가 붓다의 법신을 이
정암산 법천사에서 조성영주 흑석사 아미타여래좌상은 1458년에 제작된 높이 72cm 목조불상이다. 1949년 흑석사 인근 순흥 초암사에서 한국전쟁 즈음 소백산 소개령에 의해 상호 스님이 불상을 등에 업고 와서 흑석사를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1992년 흑석사에 도둑이 들어 불상을 훔쳐가는 우여곡절 속에 불상 몸속에 봉안한 복장유물을 발견하게 됐다. 불상 조성기와 함께 경전 전적류, 직물류, 오곡, 오향, 오약, 칠보류, 사리가 든 사리용기 등이 쏟아져 나왔다. 불상과 복장유물은 1993년 국보로 일괄 지정됐다. 복장유물들은 안전을 위
〈원문〉부루나가 부처님께 여쭈었다.“만약에 이 미묘한 깨달음의 본래 묘하고 밝음이 여래의 마음과 똑같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데 까닭 없이, 홀연히 산하대지의 모든 유위(有爲)의 모습이 생겼다면 여래는 지금 미묘하고 공한 밝은 깨달음(妙空明覺)을 얻었사오니 산하대지 유위의 습루(習漏)가 언제 다시 생기게 됩니까?”부처님이 부루나에게 말했다.“어떤 마을에 사는 사람이 방향을 착각하여 남쪽을 북쪽이라 한다면 이 착각이 착각을 인하여 있는 것인가. 착각하지 않음을 인하여 있는 것인가?”부루나가 말했다.“이 착각한 사람은 착각을 원인으로
기운이 미세하고 부드럽게 순화되어야 내단전이 감지된다. 내단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호흡도 미세해져야 한다. 숨을 멈춘 것처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호흡이 미세해져야 한다. 툭! 하고 걸리는 느낌이 없으면 기운의 순화가 덜 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다시 주천(周天)을 반복해주어야 한다. 감지될 때까지 반복한다. 이때 툭! 하고 걸리는 느낌은 신장의 선천기와 한 물건이 반응하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신장의 선천기를 신화(腎火)라 한다. 한 물건이 하단전과 명문 사이를 오고 가다 보면 신장이 자극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신장에 내
부처님의 말씀들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사전적 의미로는 해석할 수 없는데,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유추하여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진리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진리는 물질의 현상계에서 나타난 적이 없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면서 가장 오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만약이 부분을 뒤집어볼 수 있다면 모든 경계가 확연하지만, 이 부분에서 조금이라도 막히게 되면 미진함에 계속 갇히게 된다. 이 부분을 듣고 오온에 대한 잔여물이 남아 있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진리를 접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맑고 푸른 5월의 하늘과 함께 새로운 생명의 태동 그리고 푸르름, 꽃들의 합창, 이 모두가 희망이고 우리가 바라는 세상일까? 부처님 오심을 축하하며 밝히는 수많은 등들 그리고 탑들 속에 피어나는 감사함과 고마움 그리고 그 크신 자비광명. 감사하여 내 마음속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나도 부처와 같은 성품을 볼 수 있을까?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중생의 성품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닌 성품이라고 한다. 어떤 책을 보니 “마음을 닦아라”고 한다. 그리고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면 부처가 된다고 한다.번뇌망상에 길들여지지 않고 우리의 지혜가
낙산사 홍련암/ 이애리한계령 단풍같이 고운 사람과낙산사 홍련암 대숲 소리 들으러 간다정암해변 조약돌이 동그마니 따라오며홍련암 바람소리를 듣느라 여념이 없다대숲의 바람을 그대 가슴으로 전해 들으니살랑 사랑 바닷바람 사랑 살랑 산들바람절에서 준비한 팥시루떡을 서로 입에 넣어주며한계령 단풍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애리 시집, 〈동해 소금길〉 시로 여는 세상, 2019이애리 시인에게 “한계령 단풍같이 고운 사람”은 누굴까. 누구이기에 함께 “낙산사 홍련암 대숲 소리를 (함께) 들으러” 갈까. (그이는 참, 복도 많겠다.) 그래, 낙산사 홍련
앙드레 말로는 대표적인 20세기 프랑스 작가로 장 지오노(Jean Giono)를 꼽았고, 헨리 밀러는 “프랑스와도 바꿀 수 없는 작가”라고 장 지오노를 칭송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장 지오노의 말년 작품이다. 이야기는 프랑스에 사는 한 젊은이가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부피에는 혼자 황무지에 살면서 도토리나무를 심었다. 도토리 10만 개를 심었는데, 나무로 자란 것은 1만 그루였다. 그렇게 34년 동안 나무를 심었더니 황무지는 수십만 그루의 떡갈나무 숲으로 바뀌었고 개울이 흐르고 새가 모여드는 생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