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다의 알아차림직관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인식이다. 있는 그대로 아는 힘으로 모든 존재를 추론할 수 있다. 추론하는 것은 사유 분석하여 통찰하는 것을 말한다. 직관을 통하지 않고 추론하는 것은 그 대상을 오류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 반대로 직관을 통해 바르게 알았다면 그 앎을 토대로 대상을 사유 분석했을 때 그만큼 오류를 줄이고 왜곡에서 벗어나는 통찰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행다의 알아차림은 차명상의 바탕이 된다. 상상과 이야기 속에서 일어나는 명상의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힘에 바탕을 둘 때 집중과 사유
경상북도 서북부에 위치한 문경시는 1995년 문경군과 점촌시가 통합한 지역이다. 문경읍 조령산 부근을 문경새재라고 부르는데, 예로부터 서울과 영남을 이어주던 고갯길로, ‘새재’ 혹은 ‘조령(鳥嶺)’이라고 불렀다. 조령산은 높이 1,017m로, ‘새도 날아서 넘어가기 힘들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김룡사는 일제강점기 31교구 본사로, 문경·예천·상주·영천 등에 위치한 많은 말사(末寺)를 거느렸다. 특히, 문경을 대표하는 사찰은 대승사·보덕암·운암사·봉암사·혜국사 등이다.의상 대사 창건한 문경 운암사한국전쟁 당
이용현(李容鉉)은 조선 후기의 인물로, 추사·초의와 교유했다. 그의 호는 반계(磐溪)다. 그의 행적은 일부분만 알려졌는데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니 〈순조실록〉15권, 1832년(순조 12년) 2월 29일 기사에 “전 선전관(宣傳官) 이용현(李容鉉), 의병장 송지렴(宋之廉) 등과 함께 윤제를 이끌고 동북쪽으로 들어갔는데, 회(灰) 2천여 석을 운반해 한쪽 편에다 쌓아 화살과 탄환을 막고, 겸하여 성을 넘을 사닥다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굴토군(堀土軍) 11명에게는 몸을 막을 수레를 만들어 주어 일시에 아울러 거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조주(趙州) 선사께서 하루는 임제사(臨濟寺)를 방문해 발을 씻는 차에 임제 선사 께서 다가와 물으시길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서 오신 뜻 입니까?”라고 하시니, “마침노승이 발을 씻고 있는 중이니라”고 답하였다. 이에 임제 선사께서 가만히 조주 스님께 다가가서 귀를 기우리고 들으시는척 하니, 조주 선사께서 “알면 바로 알 것이지 되세김질 해서 무엇 하려는고”하시니, 임제 선사께서 팔을 흔들며 돌아가셨다. 제일구(第一句)에서 깨치면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라고 했고, 제이구(第二句)서 터득하면 인천(人天)의 스승이라 하였다. 듣고 바로
실제로 경영과 교육면에서 선지식의 가르침을 토대로 연역법과 귀납법을 비교해 봅니다.〈귀납법〉 단계 1: 탁월한 능력의 CEO가 되기 위하여서는 하버드대학 같은 일류대학에 진학하여 열심히 공부하여야 한다. 단계 2: 하버드대학 같은 일류대학에서 함께 공부하였지만 자신의 잠재의식의 힘을 믿고 이를 활용한 학생은 단순히 노력한 학생보다 더 뛰어난 능력의 CEO가 되었다. 단계 3: 뛰어난 CEO가 되기 위하여서는 일류대학 진학과 병행하여 잠재의식의 활용법을 공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연역법〉 단계 1: 우리는 마음속에 신처럼 무한한
부처님은 삼지삼청을 하시면서 자신의 결점을 알지 못하고 떠난 그들을 부처님은 잡지 않았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부처님께 그럴 수 있었을까? 40여년간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으면서도 부처님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뿌리치며 떠난 사부대중 5천명을 진짜 부처님은 버리셨을까? 아니다. 삼세의 부처님들이 설법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 모두 다 함께 성불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부처님이 제자를 포기하실 리가 있겠는가, 훗날 모두 돌아와 수기를 받았다고 한다.“사리불아. 네가 미래 세상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겁을 지나면서 여러 천 만억
만행길에서 법 묻다가 깨달아운수행각은 여행아닌 ‘보임’ 선종 사원에는 1년에 두 번 해제(解制)가 있다. ‘재계(齋戒)를 풀다.’ 즉 3개월 금족의 규제를 풀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시간이기도 하다. 해제를 하면 납자들은 너도나도 걸망을 지고 정처 없는 여정(旅程)에 오른다. 수행의 여정, 공(空)의 여정이고 무집착의 여정이다. 그것을 ‘만행(萬行)’ ‘행각(行脚)’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 한다. 인도에서는 ‘유행(遊行)’이라고 한다. 선승들의 오도기연(悟道機緣)을 보면 적지 않은 선승들이 만행하면서 법을 묻다가 깨달았다. 따
저무는 시간태양은 스러지고흘러가던 시간은잠시 각자의 것뒤돌아본다지나온 시간은 그립고지금 이 자리는 눈물겹다저무는 시간가슴은 스러지고물 위의 법당으로시간은 다시 흘러간다
와사풍은 중풍과 달라여러 풍병 중 가장 가벼워입 비뚤어지고 눈 안 감겨치료에 4~5주 소요 지난 1999년부터 2000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허준〉을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무려 63.7%의 시청률로서 국내 사극 드라마 사상 최고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원작은 〈소설 동의보감〉이다. 그 중에서 허준 선생이 선조로부터 인정받은 사건이 바로 와사풍에 걸린 왕의 처남(공빈 김씨의 동생)을 완쾌시킨 것이다.어의였던 양예수가 먼저 진찰을 했는데, “얼마간 치료하면 나을 수 있겠는가?”라는 왕의 질문에 “이레면 차도를 볼 것입니다”고 답했
色·香·味 흐름과 일미명상의 수단인 생각(알아차림, 사유, 상상)과 감정, 언어는 그대로 차명상에서도 적용된다. 그렇다면 차명상의 특성은 무엇일까? 법(다르마)을 바르게 아는 지혜와 자비를 위해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상상, 사마타와 위빠사나, 자비가 한 덩어리가 되게 하는 조건으로 차의 색·향·미가 있다. 차의 색향미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자연을 상호의존으로, 인과의존으로 이야기한다. 이와 같이 차의 이야기가 차명상의 특성이 된다. 차의 색향미 이야기 흐름을 통하여 다르마를 드러내고 지혜가 생기도록 명상하는 것이 차명상이다
지난밤 묵은 죠만지(城뼖寺)는 일본 조동종 역사상 9번째로 세워진 사찰이며 시코쿠 역사에서도 중요한 사찰이다. 일본 조동종에서 태조(太祖)로 존경받는 케이잔 선사(瑩山禪師, 1268~1325)가 생애 최초로 개산한 선사(禪寺)이자 시코쿠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인데, 전국시대에 병화로 소실되어 약 350년간 그 터만 남아 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중요성과 지역 주민들의 신심에 힘입어 다시금 절이 세워진 것이 약 20여 년 전. 지금은 고요한 옛 모습을 다시 되찾았다.처음 죠만지를 찾았을 때는 2012년 여름이었다. 88개
자비희사(慈悲喜捨)는 여래의 복장(腹藏)이고, 체(體)이고 모습입니다. 자비희사는 관세음보살입니다.아미타불의 보처 관세음보살은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고 온세상을 구제하는 자비의 화신입니다.이웃과 하나되는 ‘4무량심’“처처에 행복의 꽃 피우는 관세음보살로 삽시다”마치 어머니가 외아들을 사랑하듯 모든 존재들에게 한량없는 4무량심을 행합니다. 아픈 이에게는 약이되고, 가난한 이에게는 재물을 얻게하고, 어두운 밤에는 등불이 됩니다.대자대비를 서원으로 하는 관세음보살은 대상에 따라 온갖 모습으로 응현하여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선·교·율 중 敎 우선북방은 조동중 남방은 임제종원나라는 중국내 소수 민족인 몽고족이 세운 나라다. 원나라의 통치자들은 대부분이 티베트 불교 즉 라마교를 신봉했다. 때문에 많은 종교 가운데 라마교의 지위가 가장 높았다. 반면에 중국불교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하지만 중국불교는 인구비례로 볼 때 여전히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컸다. 원나라 초에 북방에서 중국불교인 선종(조동종)과 도교가 격렬한 논쟁이 발생한 적이 있는데, 이 논쟁은 한족불교도들과 도교의 신자들 간에 ‘노자화호(老子化胡)’를 중심에 놓고 발생한 논쟁이다. 선종 측
초삼 스님‘왜 푸른 산에 사느냐 묻거든 그저 웃지요.’하는 옛 시가 생각난다. 오래전 유명한 스님도 열반하셨고, 얼마 전 많은 여자들을 설레게 했던 유명한 모 배우도 갔다.“연기(演技)하며 살다 / 연기(煙氣)되어 보니 / 연기(緣起)로 남는다”“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 강물이 흐르며 내는 소리 / 도망간 입맛을 찾아야겠다”다들 간다는데 안가는 놈은 누구냐. 소공거사이 글을 쓰기 전에 거사님이 살았던 전향원(향기밭을 가는 집)에 다녀왔다. 겨울이 오고 있는지 화단의 나무는 이미 마당 가득 낙엽으로 쌓인 게 세속을 벗어난 이야기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 제주에서 만난 한 재소자가 떠오른다. 유지동 씨다. 나는 유 씨가 정말 밉지 않았다. 유 씨는 딸 운동화 값을 마련하던 중 사고로 사람을 죽였다. 유 씨와의 인연은 다른 재소자 일로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시작됐다. 나는 양승부 변호사에게 유 씨의 사연을 들었다. 양 변호사는 당시 유 씨의 무료변론을 맡고 있었다.딸 운동화 값 구하려다 살인사연 알려져 각계 성금 답지구명운동… 1년 6개월 뒤 출소1988년 부처님오신날 특별사면전북 무주가 고향인 유 씨는 197
색(色)이란 유형(有形)을 말하고, 공(空)이란 무형(無形)을 말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서로 통하고 있는가? 그러나 알고 보면 바위가 허공(虛空)이고 허공이 바위이다.예를 들어 바위를 자꾸 나누어 가다보면 분자(分子)들이 모여서 생긴 것이고, 분자는 또 원자(原子)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원자도 소립자(素粒子)들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결국 소립자 뭉치인 것이다. 그러면 소립자는 어떤 것인가 하면, 이것은 원자핵 속에 앉아서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말하고 있다. 스스로 충돌해서 입자(
조선시대 교육의 교과서는 성인군자의 말씀인 ‘사서삼경’이었다. 군자의 법식을 이해하고 마음을 닮게 하여 보통 사람을 군자처럼 지혜롭게 만드는 교육방식, 말하자면 인성교육과 지혜교육의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하지만 이러한 교육으로 배출한 조선의 인재들은 아상을 닦아 밝아지는 수행을 병행하지 않았기에 정치에서 사색당쟁이 있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상공업을 천시하는 사농공상의 풍토로 인해 국력이 쇠퇴하고 결국 침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은 되었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였습니다.그러나 조
〈법화경〉이 설해진 장소는 누구나 영축산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법화경〉은 2곳에서 3회의 설법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서품부터 제10품까지 영축산의 영산회상에서, 두 번째는 11품부터 22품까지 영축산 하늘로 자리를 옮긴 허공회상에서, 세 번째는 23품부터 28품까지 다시 영산회상에서 이루어졌다. 천태지의(538~597)는 〈법화경〉 7권 28품을 1부터 14품을 석가모니불의 자취인 적문(迹門)과 15부터 28품까지를 본래불의 모습인 본문(本門)으로 분류하기도 했다.이 경은 인간에게 가정 다정하게 설법하신 경이라 처음엔 강
새벽녘 더위와 습기에 눈을 뜬다. 시계를 보니 5시 30분쯤 되었다. 그냥 더 잘까 하다가 어차피 6시에 눈 뜨고 준비할 걸 생각하니 그냥 일어나기로 한다. 조용히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장정 아홉이 다닥다닥 누워 잠을 자는 게 생각보다 장관이다.침낭을 말아 정리하려니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다른 순례자가 눈을 떴다. 그도 시계를 보더니 곧 일어나선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아침 6시, 오늘도 걷기 시작이다.밤중의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는 조용한 아침 길은 각별하다. 귀에 들리는 것은 지팡이가 길을 때리는 경쾌한 소리와 자박이는 발걸음 소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9~1893)이 대흥사로 초의를 찾아간 것이 1835년경이다. 이 무렵 초의의 명성은 경향에 퍼졌는데, 이는 1831년 봄 홍현주의 별서 청량산방에서 열린 시회에서 그의 글재주를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진도 쌍계사를 내왕했던 소치도 익히 초의의 명성을 들었을 터다. 그러므로 그림에 대한 열망으로 불탔던 소치가 초의를 찾아 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초의는 대흥사를 방문해 자신을 찾아온 소치를 위해 한산전에 거처를 마련해 주고 불화(佛畵)를 가르쳤으니 그가 초의에게 그림을 배웠던 정황은 추사가 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