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評唱 2]仰山有如此?人手段. 所以 一日指雪獅子問云 “還有過得此色者?” 且道 他意在什?處. 莫是明一色邊事?. 且得沒交涉. ?不明一色邊事 又明箇什?. 所以道 “鷺?立雪非同色 明月蘆花不似他” 巴陵鑒和? 僧問 “如何是提婆宗” 鑒云 “銀椀裏盛雪”앙산에게는 이와 같이 사람을 위하는 솜씨가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설사자(雪獅子)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색을 뛰어넘는 것이 있는가?” 라고 물었던 것이다.자, 말해보라! 저 뜻이 어디에 있는가? 이는 일색변사(一色邊事, 절대평등=공)를 밝힌 것이 아닌가? (만약 이렇게 안다면) 전혀 관계가 없다
붓다의 가르침을 신앙하는 이들을 가리켜 흔히 ‘불자’라고 한다. 처음 불교를 접했을 때 불자는 불교인을 가리키기 때문에 당연히 부처 불(佛)에 놈 자(者) 자를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붓다의 자식이라는 의미로 아들 자(子) 자를 쓴다는 걸 알고서 조금 의아했다. 왜 불교인이 아니라 붓다의 아들이라고 했을까?초기경전인 〈디가 니까야〉 제3품 27번의 이름은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이다. 여기에는 바라문 출신으로 붓다의 제자가 된 사문들의 아픔이 소개되어 있다. 어떻게 최고의 계급인 바라문이 크샤트리아 출신의 붓다를 스승으로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요통만성적 피로·긴장이 주요 원인플랭크운동으로 복근 강화해야 허리가 아파본 사람은 안다. 허리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허리는 20대 중반부터 노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젊을 때부터 관리를 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연세 있는 분이라도 그 나름대로 허리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허리가 아픈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척추 사이에 있는 추간판, 이른 바 ‘디스크’에만 신경을 쓴다. 그러나 허리를 이루는 구조물에는 뼈와 추간판은 물론 인대와 근육 및 근막이 있다
빠옥 총림 첫째 날인 2012년 1월 22일. 드디어 종착지 몰라민에 도착했다. 몰라민은 미얀마 남쪽 몬주에 있고, 몬주는 미얀마 역사에서 불교의 출발과 함께한다는 중요성이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택시 운전수라고 왔는데 알고 보니 택시가 아니라 오토바이이다. 오토바이 앞에 나의 큰 가방을 발로 밀어붙이고 뒤에는 나를 태운 채 신나게 달렸다.1000여 명 상주하며 수행정진아찐나 스님이 선원장 맡으면서세계적 수행 도량으로 발전해“道人 1명이 만 중생구제” 실감무거운 가방이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지만 약 15~20여 분만에 무사히 총림에
원찰을 금지한 조선세종은 즉위 2년 7월 10일 어머니 원경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산릉 옆에 절을 세우고자 하였다. 이를 상왕에게 묻자 11일 병조 참의 윤회를 세종에게 보내어 다음과 같이 전했다.세조의 장자 의경세자 원찰 예종 원찰 ‘정인사’로 명명1900년 고종 ‘수국사’도 중창“조선에 이르러 개경사 연경사가 있어 대비의 능에도 사찰을 지을 수 있으나 나는 절을 짓지 않고 법석도 역시 개설하지 아니하여, 이로부터 법을 세우려 한다.”난감해진 세종은 윤회를 상왕에게 보내 불교의 폐단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능소를 모신 후 빈 골짜기가
부처님오신날의 가피가 온 누리에 가득한 5월의 산사에서 몇몇 불자들이 정담을 나누었다.학생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절에 다니기 시작해 지금은 불자모임을 이끌고 있는 신행생활 40년의 ㄱ씨.아침마다 어머니 독경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늘 부처님이 곁에 있다고 생각하며 저절로 불자가 된 40대의 ㄴ씨.마흔에 남편을 사별하고 부처님을 의지하며 3남1녀를 키운 어머니의 지극한 전법으로 지난해부터 절에 다니기 시작한 ㄷ씨.불교는 종교 이전에 철학이라며 불교 사상에 심취해 늘 질문을 달고 다니는 ㄹ씨.한국사찰의 아름다움에 빠져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며칠 전부터 원래 목표였던 몰라민의 빠옥 선원을 위해 마하시를 떠날 준비를 하였다. 먼저 마하시 선원에서 출간된 법문자료가 어떠한 것인지를 파악하여 가능한 모두 구입하였다. 또한 선원의 발전을 위해 보시를 하였다. 물론 보시는 자율이지 의무사항은 아니다. 오래 머물며 마하시의 시설과 제공되는 음식을 누린 것이다.보통 이곳에서 보시는 대중공양이다. 대중들이 같이할 수 있는 공양비용을 내면 공양청에서 알아서 특별한 공양을 준비해 준다. 많은 미얀마 보시자들이 공양을 올리고 공양청 입구에서 합장하며 대중을 맞이하고 있음을 보아 왔다. 그
‘나만의 인연사전 만들기’는 저자 겸 편집자가 ‘나 자신’이다. 나를 중심으로 한 인연의 정의를 내리는 일이다. 그는 나에게 무엇인가. 스스로 질문하고 받아 적는 일이다. 사전(事典)이라고는 하지만 단 한 장짜리 사전이어도 무슨 문제겠는가. 글로 적은 후 당장 소멸시킬 원고다. 그런 의미에서 부담 없이, 솔직하게, 나오는 대로 편찬하는 나만의 사전이다. 〈관점 디자인〉의 저자 박용후는 세상 모든 일에 대해 자신만의 정의를 가지라고 한다. 나 아니면 발견할 수 없는 ‘관점과 정의’를 통해 차별화된 ‘나’를 탄생시키기.인연사전을 적다보
사성제는 우주의 진리가 불교 교리로 체계화 되는 과정을 밝히는 개념이다. 삶과 더불어 수행정진 속에서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사성제다.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부처다’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시작해 보자. 그렇다면 내가 부처될 수 있다는 것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생활이 따라야 한다.부처가 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끊임없이 생각하고 되새길 것이바로 고·집·멸·도 ‘사성제’이다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는가? 여기서 부처님이 가르치신 실천방법이 고·집·멸·도 사성제이다. 생활 속에서 어떻게 불교
새벽 한기에 몸을 뒤척이며 일어났다. 37번에서 7km가량 떨어진 휴게소에서 노숙한 하룻밤. 두 사람이 정원인 휴게소에 세 사람의 순례자가 묵었다. 사람들이 걷는 속도가 고만고만하고, 또 묵는 포인트들이 뻔하다 보니 노숙 순례자들은 자주 마주치게 된다. 어젯밤 같이 묵은 순례자들도 모두 길에서 봤던지 같은 곳에서 하룻밤 같이 묵었던 이들이었다.보름 지나니 신체 밸런스 좋아져걸음도 많이 개선… 변화들 확인자살 시도자들 순례 후 새사람 돼사찰에도 영험담 많은 ‘치유의 길’38번 콘고후쿠지(金剛福寺)는 여기서 부지런히 걸어서 이틀 길.
부처님 법대로 살았던 스승넓은 품으로 대중 허물 포용경산 스님은 나의 은사 스님이다. 스님은 함경도에서 출가해 처음에는 철저하게 수행에만 정진하는 선승이었으나 비구와 대처간의 문제가 정리되면서 종단 일을 맡게 됐다. 경산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으며, 동국대 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나는 교도소 출소자 중 한 사람을 출가시킨 적이 있다. 법명은 자순이다. 그런데 그 스님은 출가할 때의 초발심을 잊고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행패를 일삼았다. 산중에서 자순 스님과 같은 폭력을 휘두르는 스님을 제지하기란 쉽지가 않은
목어와 나비와 나5월은 어떻게 가고있나담장마다 붉은 장미는 피고새나 사람이나 하루는 짧고동쪽은 동쪽대로 서쪽은 서쪽대로만나야 할 것들잊어야 할 것들숲의 나무였던 木魚와잠이 삶이었던 나비와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기억할 수 없는 시절이 5월은 또 그렇게 가고 있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형체없는 ‘마음’ 깨달음” ‘심여화사(心如畵師)’는 ‘우리의 마음이란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다’는 뜻이다. 〈화엄경〉에 나오는 ‘불교 사자성어’로서 변화무쌍한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우리의 마음은 수시로 변한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을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변한다.’고 풍자한다. 어느 심리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의 마음은 미세하게는 하루에 만 번 정도 움직인다고 한다.한 끼 식사를 하면서도 우리는 ‘무슨 반찬부터 먹을까?’하고 생각한다. 실제
[古則과 着語]?, 仰山指雪獅子云 “還有過此色者?” (?) 雲門云 “當時便與推倒” (不奈船何 打破?斗)앙산(仰山, 807~883)이 설사자(雪獅子)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색을 뛰어넘는 것이 있는가?” [할(?, 눈이 멀었다)!]운문(雲門, 864~949)이 말했다.“당시에 바로 밀어서 넘어뜨렸어야 했다.” [(구멍 나 물새는) 배는 어찌하지 못하고, 두레박만 깨고 있다.][拈古와 着語]雪竇拈云 “只解推倒 不能扶起”(將錯就錯)설두가 염(拈)해서 말했다.“(운문은) 다만 밀어서 넘어뜨릴 줄만 알았지, 부축해서 일으켜 세울 줄은 몰랐다
“책임과 권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권위가 없는 책임이란 있을 수 없으며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위도 있을 수 없다.”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말이다. 권위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준엄한 뜻이 담겨있다. 예를 들어 의사는 병자에 대해 치료라는 책임을 다함으로써 권위를 갖게 된다. 특히 의사는 생명이라는 절대 가치를 다룬다는 점에서 더욱 더 그렇다. 의사들에게 존경과 권위의 상징인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이유도 그 책임의 무게 때문이다.책임은 본래 어떤
장 뜨기가 무섭게 벌레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나무는 햇살기운을 더해 빛이 깊어지고 들판의 보리밭은 싹이 여물고 있다. 입하는 보리덕분에 이름도 많다.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기운이라고 해서 맥량이라고도 부르는데, 현대인에게 생소한 명칭이지만 선조들의 농경사회에서는 땅을 의지하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이 삶에서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기에 이처럼 불렸다.곡우차를 만들지 않고 기다렸다가 작설차의 기운이 꽉 차는 시기인 입하에 첫 잎을 딴다. 살청을 하고 차를 만들어 부처님께 헌다하고 비로소 첫 모금을 넘길 때의 시원함이란 그저 찻잎
‘입전수수’ 십우도 열 번째 화제수행의 궁극은 중생 교화 ‘입전수수(入廛垂手)’는 ‘번잡한 시장(市場) 속으로 들어가서 손을 내밀다’는 뜻이다.중국 선불교에서 ‘깨달음을 이룬 이후에는 그 깨달음의 세계에 안주하지 말고 중생을 제도하는 데 힘써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용어로서, 더 쉽게 풀이하면 ‘중생이 사는 도심 속으로 들어가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다.‘전(廛)’은 시장을 가리킨다.‘입전수수(入廛垂手)’는 ‘십우도(十牛圖)’의 마지막 열 번째 그림의 제목, 즉 화제(츐題)이다.‘십우도(十牛圖)’란 선불교에서 수행과정, 오도과정을
[評唱 2]永嘉?至曹溪 見六祖坐次 持錫?繩牀三? 振錫一下 卓然而立 六祖云 “夫沙門具三千威儀 八萬細行 大德從何方來 生大我慢” 永嘉也好便道 “生死事大 無常迅速” 六祖本要?箇?釣永嘉 却倒被永嘉釣將去. 兩家只管打葛藤 一對一問 千古萬古 悉皆如此. 末後六祖道 “如是如是” 永嘉便行. 祖云 “少留一宿” 故號?一宿覺. 名玄覺 號?覺.영가(永嘉)가 조계에 이르러 육조(六祖)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석장(錫)을 들고 승상(繩牀)을 세 번 돌고 석장을 한 번 떨치고 바로 우뚝 섰다.6조가 말했다.“무릇 사문은 삼천 가지 위의와 팔만 가지 세행을
학창시절 선배가 후배의 기강을 잡을 목적으로 종종 하는 말이 있었다. 선배는 하느님이나 부처님과 동기동창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말을 반복해서 따라 하도록 시키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선배의 말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들 일상에서도 복종의 논리적 근거를 교주에서 찾고 있으니, 종교의 영향력이 크긴 크다는 생각이다.중국불교에도 이와 유사한 형태가 나타나는데, 바로 북조(北朝)시대에 유행한 왕즉불(王卽佛), 왕이 곧 붓다라는 신앙이다. 이는 왕이 곧 붓다이기 때문에 백성들은 임금의 명령
거북목, 일자목 등 척추 변형 예방혈행 개선으로 고혈압, 중풍 등 예방 김포시 풍무동에 가면 중앙승가대학과 함께 ‘장릉(章陵)’이 있다. 일산에서 가까워 가끔 걷기 위해 가곤 한다. 휴일을 맞아 아들을 데리고 장릉 능원의 둘레 길을 두 바퀴 돌았다. 내게 주어진 걷기의 하루 목표를 달성했다. 오늘은 걷기의 중요성과 효능, 걸을 때 주의할 점 등에 대해 풀어볼까 한다. 한여름이 오기 전 이 아름다운 오월부터 한 달간은 정말 걷기 좋을 시기다.‘왜 걸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나는 정신과 신체, 두 가지 면으로 나눠 설명합니다. 걷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