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春分)에 불암산 불암사(佛巖寺)를 찾았다. 봄기운이 완연해서 불암사 경내의 수목(樹木)들에는 새싹이 돋고 있었다. 이제 머지않아 새싹은 자라서 꽃을 피울 것이다. 신록(新綠)이 돋아서 녹음(綠陰)이 우거지고, 단풍이 들어서 조락(凋落) 끝에 나목(裸木)이 되는 사계의 법칙을 관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해님의 얼굴(日面)이리라. 약속 시간에 맞춰 종무소를 찾으니 두산 일면 대종사가 필자를 반겼다. 일면 스님은 자신의 주석처로 필자를 안내했다. 주석처 앞에서 왼쪽을 올려다보니 기암(奇巖)이 서 있다. 아마
용장곡 석조여래좌상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계단이 보인다. 이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들 것 같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 글을 보고 아쉬움에 잠 못 들 것이다. 눈에 들어오는 계단을 오르면 바로 1000년을 넘게 삼릉계곡을 지키고 계신 관세음보살님이 서 계시기 때문이다. 일명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입상이다. 무엇보다 조선 500년 숭유억불의 풍파를 이겨내고 당당하게 서 계신 늠름한 향기가 풍기는 보살상이다.조선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던 주자학을 근본으로 해 1392년 건국된 국가다. 조선에서 불교는 탄압받고 파괴되는 모습을
SF는 영어로 Science Fiction, 그러니까 과학에 대한 허구적 이야기를 지어내는 장르이고, 관습적으로는 ‘공상과학’이라고 번역하곤 한다. 그런데 사실 SF장르 안에 ‘공상’과 ‘과학’에 고르게 방점을 둔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개봉 전부터 전 세계 흥행을 노린 〈듄: 파트2〉 같은 작품은 원작인 소설이나, 그 소설의 설정을 가져다가 만든 컴퓨터 게임이나 1984년에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연출했던 〈듄〉(이 영화를 당시에는 ‘사구’, 그러니까 ‘모래 언덕’이라고 소개됐던 작품)이나, 최근작까지 아무리 살펴봐도 설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면 간만큼 땅을 다 차지할 수 있는 마을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안간힘으로 더 멀리 내달렸지만, 아무도 제때 돌아오지 못했다. 한때 어두운 새벽에 별을 보며 출근했다가 캄캄한 저녁에 별을 보며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집은 오직 씻고 잠을 자는 공간이었으며, 오래 고민하고 산 좋은 오디오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했고 좋은 자전거가 있어도 마음껏 달려보지 못했다. 산이 좋아 산 가까이 이사를 했음에도 등산 한번 하지 못했다. 뭔가 거꾸로 사는 느낌, 내 삶에 내가 주인이 아니라 객이 된 느낌이 들었
대학생 지도법사를 하면서 꿈꾸는 일들이 많아졌다. 대학생들에겐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스펀지처럼 받아들이고, 생각보다 더 기발한 아이디어와 진중한 사유 체계가 이들에게선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를 대하는 태도가 스님인 나로 하여금 스님의 상을 벗게 만든다.2024년을 시작하며 대학생 법우들과 해외봉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종단에서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불교문화행사 국고보조금 지원사업 공모가 있어 도전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주변에 10년 넘게 스리랑카 해외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는 스님이 계셔서 조언을
아침마다 온라인 줌(ZOOM)으로 함께 을 공부 중인 민희(가명)님은 사건이 있던 그날 밤부터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아팠는데, 다음날 마침 온라인으로 하는 100일간의 108배와 공부 안내를 보고는 ‘나를 위한 공부구나’ 싶어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인생은 타이밍이다! 법문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에선 울컥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아픈 상처가 떠오를 땐 한동안 울먹이던 그녀가 그날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저는 형제가 저 혼자뿐이에요. 자라면서 형제 없이 모든 걸 혼자 결정해오다 보니까
이름값을 한다는 것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 하나씩 더 가지고 있습니다. 입문자를 위한 기초교육을 마치면 스님에게서 법명을 받거나 오래 전에 스님에게 법명을 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대체로 이름이란 내가 “이 이름으로 해주세요”라고 콕 집어서 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 마음인 경우가 많지요. 태어나면서 부모에게서 받은 이름도 그렇고 절에서 받은 이름도 그렇습니다. 또 법명은 하나만 지니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불자들은 여러 스님에게서 법명을 받아서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쓰기도 합니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과 같이 한자리에, 항상 한자리를 하면서도 또 한자리를 한 것 같습니다. 우주의 섭리와 더불어 우리 생활이 같이 돌아가면서도 너 나가 있듯이, 너 나가 있으면서도 한자리 하고, 한자리를 하면서도 한자리가 아니고 한자리가 아니면서도 한자리를 할 수 있는 깊은 뜻, 그 깊은 뜻에 의해서 우리는 움죽거리고 있는 것입니다.항상 여러분한테 말씀해 드리는 것은 말로 그냥 떨어지게 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이 법이 돼서 여러분한테 이익이 가고 여러분 생활에 지침이 될 수 있는 그러한 문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책을 보고 어떠한 이
관절이나 관절주변에 결정(크리스탈)들이 침착하여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질환을 의학용어로 결정유발관절염이라고 한다. 결정유발관절염을 일으키는 흔한 결정은 세가지 정도인데 이중 요산나트륨(Monosodium urate, MSU)에 의한 질환을 통풍이라 한다. 통풍은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기술한 문헌에 나올만큼 오래된 질환이다. 당시에는 주로 부자들이 걸리고 통증이 매우 극심해서 ‘The disease of Kings(왕들의 병), The King of disease(질병의 왕)’라고 불리기도 했다. 통풍은 류마티
이미 떠나신 지 오래지만당신의 가르침은 늘 빛을 내고 세상을 맑게 하며 영원히 저희 곁에서 당신의 위대한 원력으로 보살펴 주십니다.
서울 성북의 강소(强小)사찰 전등사가 아침부터 분주하다. 약 넉 달 만에 열리는 법회에 불자들은 법당과 공양간 등에서 분주하게 손을 보태고 마음을 모았다. 동안거 시작 이후 기도법사스님과 동지, 정초기도 등 예정했던 정진을 빠뜨리지 않았지만 불자들에게 이날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바로 전등사 회주이자 조계종 원로의원 원산 동명 스님을 친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설악산 백담사 무문관(無門關)에서의 정진을 마치고 법상에 오른 동명 스님은 전과 다름없는 천진난만한 미소로 불자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췄다. “사방이 막힌 독방에서 ‘폐
역사 이래로 차를 다루고 마시는 전반적인 행위가 인간의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은 컸다. 이러한 사실은 차의 품성이 검박해 사람의 본성과 서로 닮았다고 인식했던 수행자나 문인들이 자신의 본연지성(本然之性)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정신음료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들은 차를 마시며 느꼈던 즐거움을 드러낸 글을 지어 차 문화의 토층을 단단하고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다른 한편으론 이들이 차를 통해 자연의 원리를 터득하고자 했다. 그뿐 아니라 수행자나 도가, 문인은 차를 마시기 위한 다변화된 준비 과정이나 경험을 이론화해 수많은 기록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