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부암에서 지은 오도송 방부 거절한 금당에서 읊어 시봉도 알지 못한 29세 오도송 말년에 쪽지 한 장에 적어줘 황하서류곤륜정(黃河西流崑崙頂) 일월무광대지침(日月無光大地沈) 거연일소회수립(遽然一笑回首立) 청산의구백운중(靑山依舊白雲中) 황하수 서쪽으로 거슬러 흘러 곤륜산 정상으로 오르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져 내린다.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 오도(悟道). 가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순간. 스스로의 증명이 전부인 세계. 스무 살 때, 에 무릎을 치고 ‘생사(生死)’에 뛰어든 ‘성철’이란 이름이 스물아홉에 스스로를 증명한 28자의 문자. 오도송이다. 스님은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이 오도송을 읽었다. 9월 22일 성철 큰스
1939년 운부암 하안거 지내며 오도 팔공산 넘어 동화사서 오도송 읊어 경허·만공 등 선지식 선기 어린 곳 평생도반 향곡 스님 만나 절차탁마 8월 25일 ‘성철 스님 수행도량 순례단’ 300여 명은 여섯 번째 순례로 영천 은해사 운부암을 찾았다. 운부암은 팔공산 자락이 마치 구름처럼 감싸고 있는 암자다. 이 선기 넘치는 작은 암자에서 29살의 성철 스님은 오도했다.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성철 큰스님 수행도량 순례단’을 맞이한 영천의 하늘은 맑았다. 전날까지 폭우가 내린 팔공산 계곡에는 부처님의 법음 소리를 담은 옥수가 쏟아졌다. 구름 한 점 없이 개인 하늘에서는 뜨거운 햇살이 쏟아졌지만 스님의 원력을 되짚는 순례단의 열기는 그보다 더 뜨거웠다. 긴 시간을 달려 온 300여 명의 순례단이 은해사
백련문화재단과 불교인재원이 주최하는 ‘성철 스님 수행도량 순례단’이 7월 21일 다섯 번째 순례로 경남 양산 통도사를 찾았다. 통도사는 자장율사가 643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와 가사(袈裟), 그리고 대장경 400여 함(函)을 봉안하고 창건함으로써 초창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사찰로 부각됐다. 불사리와 가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통도사 일주문 영축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라고 쓴 현판 좌우에는 불지종가 국지대찰(佛之宗家 國之大刹)이라는 주련이 걸려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해서 ‘불지종가’, 나라의 으뜸가는 절이므로 ‘국지대찰’이라고 한다. 성철 스님은 1937년 3월 부산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받은 뒤 그해와 이듬해 동안거를 통도사 백련
? 무비 스님 ‘생신을…’ 법문 중생 눈높이에 맞게 설법 불성 일깨운 가르침 ‘강조’?? 용성스님과 일화도 흥미로워 ? 한여름 찜통더위가 내려 쬐는 6월 23일의 여름날, 백련문화재단과 불교인재원이 주최하는 ‘성철큰스님 탄생 100주년 기념 순례단’이 부산 범어사를 향했다. 새벽 6시 30분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5시간을 달려 범어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20대 성철 스님의 자취를 만날 수 있었다. 범어사는 화엄종(華嚴宗) 10찰 중 하나이며 일제강점기에는 31교구 본산의 하나였다. 에는 678년(문무왕 18)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에 의하면 금빛 나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정산(金井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 출가시(出家詩)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 열반송(涅槃頌) 출가와 열반이 함께한 곳. 5월 26일 ‘성철 스님 수행도량 순례단’이 세 번째 순례로 경남 합천 해인사(海印寺)를 찾았다. 성철 스님이 출가 수행 생활을 시작하고 회향한 해인사는 스님에게 가장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대원사서 동
3월 30일 첫 순례를 시작했던 ‘성철 스님 수행도량 순례단’ 3백 여명이 두 번 째 순례길에 나섰다. 산청 대원사다. 스님의 생가인 겁외사에서 100리 길이다. 스무 살 청년이던 성철 스님은 이곳에서 처음 불교와 만났다. 4월 28일, 각지에서 출발한 ‘성철 큰스님 수행도량 순례단’의 참가자들이 산청 집결지에 모두 모였다. 버스에서 내린 순례단은 대원사까지 약 2km의 숲길을 걸었다. 신록이 우거진 4월의 태양은 제법 따사로웠다. 순례자들의 발걸음도 이에 질세라 자못 뜨거웠다. 마치 스님을 친견하러 가는 사람들처럼 순례단 뒷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도량에 들어선 순례단은 이곳 저곳을 둘러보느라 분주했다.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584)때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다.
한국불교 1600년 연보(年譜)속에서 최근에 주목받은 대목은 단연 ‘성철’일 것이다. 그가 남긴 생각이 출재가를 가리지 않고 한국 현대불교사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깨달음’에 대한 그의 믿음과 신념은 한국불교를 뜨겁게 데웠고, 그 열기는 한국불교를 지탱시키고 숨 쉬게 한 원동력이 됐다. 이런 큰 족적을 남긴 성철 스님이 적멸에 든 지 벌써 20년이 흘렀고. 올해는 탄생 100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이제 그가 걸어간 발자취는 의심할 수 없는 길이 됐고,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은 그의 향훈을 따라 순례를 시작했다. 2월 23일 현판식을 갖고 출범한 ‘성철 스님 탄생 100주년 기념 수행도량 순례단(단장 엄상호)’이 바로 그 첫 시발점이다. 불교인재원과 백련불교문화재단이 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