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사찰은 지극히 청정한 곳으로 인식되어왔다. 스님들이나 불자들이 아침, 저녁으로 경내·외를 청소하고, 사찰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물건과 집기들을 제대로 정리 정돈하는 것은 바로 청정함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며, 그러한 노력이 곧 사찰을 청정한 환경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스님들이 법문을 통해서 ‘비우라’고 가르치는 것은 비단 마음을 비우라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 말에는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을 비우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욕심이 많아지면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듯이 사찰의 환경을 비우지 못하면 사찰의 청정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찰은 수행공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사찰환경을 적당한 수준으로 비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사찰이라고 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됐다. 눈 오는 날이 잦아지고, 날씨도 영하권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기상예보로는 올해 겨울은 날씨변동이 심하고 추울 것이라고 한다. 산사의 겨울은 도심의 겨울보다 더 춥다. 그나마 우리 사찰들은 좋은 터에 자리를 잡고 있어 바람이 강하지 않고 양지바른 곳이 많아 덜 추운 편이기는 하다. 풍수적으로 좋은 땅은 여름은 여름대로 시원해서 좋고, 겨울은 겨울대로 따듯해서 좋다. 미기후적으로 볼 때, 온도변화가 적은 탓이리라. 예전의 산사는 자연환경이 좋아 특별히 나무를 심거나 못을 파서 연을 심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산사에서도 볼거리를 제공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조성해서 신도들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스님들의 자비로운 마음 탓에 사찰마당에 나무나 꽃을 심기도 하고, 못을
어제까지만 해도 곱게 물들었던 절 마당의 노란색 은행나무 잎이랑 빨간색 단풍나무 잎, 갈색의 느티나무 잎이 밤새 불었던 강풍에 모두 떨어져버렸다. 스님과 몇몇 불자들이 비질을 해서 떨어진 단풍잎을 치우느라 한동안 고생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도 없어져 버렸다. 봄에 연녹색 잎이 나면서부터 암녹색으로 색을 바꾸던 낙엽활엽수들은 가을이 되면 노란색, 빨간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이러한 낙엽활엽수들의 화려한 변화는 날이 추워지고 찬바람이 불면서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면서 멈추고 만다. 낙엽활엽수들이 잎을 떨어뜨리는 계절이 되면 일 년 내내 변화가 없이 푸른색만 보였던 상록수들이 귀한 몸이 된다. 특히 소나무와 같은 상록침엽수들은 겨울철에도 변함없이 푸른색을 잃지 않아 우리 민족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겨울이 왔다. 이맘때쯤 되면 산사에서는 화재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스님들이 바빠진다. 바람이 불고 건조하기라도 하면 더욱 더 마음을 졸인다. 불자들이 켜놓은 촛불이나 향불은 꺼졌는지, 혹시라도 종무실이나 요사에 켜놓은 난방기가 과열되지는 않았는지 살피기에 분주하다. 사찰에서의 화재는 어느 계절이라고 마음 놓을 수 없지만 불을 많이 사용하는 겨울철이 아무래도 마음을 놓기 어려운 계절이다. 예전과는 달리 소화용 설비나 다양한 방재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 그나마 마음의 짐을 덜기는 했지만, 경내가 대부분 목재건물로 채워진 전통사찰의 경우에는 불이 나면 그것을 끄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사에서는 아직까지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오래된 포스터의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불상은 탑과 더불어 부처님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다.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기원후 1세기경이라고 하는데, 이때부터는 불상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스투파와 더불어 불교를 상징하는 조형물로서 사찰의 중심에 자리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파되었을 시기쯤 되면 인도는 물론 불교가 전파된 모든 나라에서 불상의 제작이 활발해진다. 백제에 불교를 전해준 마라난타는 배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오다 배가 난파되어 영광 법성포로 도래하였다고 하는데, 그때 싣고 왔던 것이라고 전해지는 불상이 아직까지도 법성포에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수도 경주에 남아있는 황룡사터에 가면 금당자리에 아직도 삼존불상을 모셨던 좌대가 남아있다. 신라 최고의 사찰이었던 황룡사의 본존불인 장육존상의 자취이다. 또한 불교의
등을 밝힘으로써 번뇌와 무지에 싸인 어두운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고자 했던 것이 등공양을 있게 한 기본적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불교가 도입된 이후 등공양을 했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정월 보름에 왕이 황룡사로 행차하여 간등(看燈)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있는데, 이것이 곧 연등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정월 보름과 이월 보름에 국왕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이 연등을 밝히고 잔치를 벌일 정도로 국가적인 행사로 열렸는데, 의종 때에는 백선연이 사월초파일에 연등회를 시행하고, 고종 때에는 최이가 연등회를 열어 밤새도록 즐겼으니 이것이 오늘날 사월초파일 연등행사의 전신인 것이다. 조선시대에 한성장안에서 열린 관등놀이는 한성팔경의 하나일 정도로
불자들은 사찰에 오면 산문을 지나면서 마음을 가라앉혀 부처님을 만날 준비를 한다. 법당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다스려 삿된 생각을 없앤 다음에 부처님을 만나야 본인이 원하는 기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찰의 기도공간은 그 사찰의 주불을 모신 법당을 비롯해 관음전, 지장전, 삼성각, 칠성각 등 다양하다. 이렇게 건물의 형식을 갖춘 실내 기도공간도 있지만 야외에 부처님을 모신 야외 기도공간도 적지 않다. 특히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큰 암반에 부처님을 새긴 마애불이 있는 경우에는 오래전부터 특별한 기도공간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법당에 모신 불보살도 조성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엄청난 규모의 마애불을 조성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야외기도공간은 야외에 조성된다는 환경적 특성 때문
역사가 오래된 사찰치고 명당이 아닌 곳에 자리를 정했던 사찰은 많지 않다. 특히 사찰의 입지가 산으로 옮겨가고 스님들이 풍수지리의 원리를 적용하면서부터는 더욱 더 좋은 자리에 사찰이 지어지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물 좋고, 그윽한 곳을 찾아서 절을 지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물이 좋다는 것은 일상생활에 사용할 물이 충분하다는 뜻도 있지만 마실 수 있는 물이 좋다는 뜻이 더 강하다. 예로부터 절이 자리를 잡은 곳에는 약수가 많았는데, 절을 짓고 보니 약수가 나온 것이 아니라 약수가 있는 곳을 찾아 절을 지었던 것이 분명하다. 몇 해 전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보면, 강원도 고산군 설봉리에 있는 석왕사(釋王寺) 약수가 만성소화기질환 및 간염치료에 특효가 있으며, 이 약수에는 유리탄산과 나트륨이온, 칼슘이온이
집을 지으면서 나무를 살리기 위해 집의 위치를 바꾸거나, 아예 집의 천장을 뚫어서 나무를 살려낸 지혜를 살필 수 있는 사찰이 여러 곳 있다. 나무도 생명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에 따라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귀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나무를 아무렇게나 취급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무를 신성한 존재로 생각해서 숭배하기까지 하였다. 한 학자가 실험한 결과를 보면 나무가 사람의 목소리나 생각을 알아차린다고 한다. “이 나무를 베어버릴까?”라고 하면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뭇잎이 시들기도 하고 열매가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래전 도문화재위원으로 있을 때 한 사찰에서 신청한 문화재현상변경을 위한 조사를 나갔는데, 집을
예년에 비해 이번 여름은 홍수나 더위로 인해서 어떤 사찰이 재해를 입었다는 좋지 않은 소식은 없었던 듯하다. 절에 따라서는 흙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개울물이 넘쳐 농작물에 피해를 입기도 하고, 계단돌이 교란되기도 하는 등 조그마한 피해가 있기는 하였으나, 사람이 상하거나 집이 무너지는 것과 같이 뉴스가 될 만한 큰 피해는 없었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피해라도 그것을 무시하지 말고 그것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는 자세는 필요해 보인다. 한 계절이 지나간다는 것은 새로운 다른 계절이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계절을 준비하려면 지나간 계절의 흔적을 지워야 하는데, 이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여름에 있었던 피해의 흔적을 지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조경석쌓기라는 말이 있다. 말인즉슨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사면에 돌을 눕히거나 세우면서 들쑥날쑥 쌓아올리고 돌과 돌 사이의 빈 공간에 낮은 키의 꽃나무나 상록성관목을 심어 치장하는 돌쌓기방법을 이르는 말이다. ? 한국의 조경계에서는 이러한 돌쌓기방법을 일본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일본 어디를 가 봐도 이러한 돌쌓기 방법으로 시공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돌쌓기방법의 시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중국의 경우 못의 호안을 축조할 때 크고 작은 돌과 납작하거나 길쭉한 돌을 조합하는 경우가 있고, 일본의 경우에도 석조(石組)라고 하여 돌을 조합해서 경관적으로 특별한 모습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조경석쌓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장대석이나 사괴석과
이번 동국대학교에서 인준된 석사학위논문 가운데에서 ‘현대도심사찰의 자연성 연구’라는 논문이 눈에 띈다. 한마디로 도심에 지어진 사찰의 자연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분석한 논문이다. 그 논문의 필자는 환경부에서 환경계획지표로 적용하고 있는 생태면적률을 평가도구로 사용하여 서울과 부산도심의 7개 사찰이 어느 정도의 생태면적률을 보이고 있는가를 산정하여 대상사찰의 자연성을 평가해냈다. 생태면적률을 결정하는 인자로는 자연지반녹지, 수공간, 인공지반녹지, 옥상녹화, 벽면녹화, 투수포장 등이 있는데, 이러한 인자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생태면적률이 일정수준 이상이면 자연성이 있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분석결과 연구의 대상으로 선정된 7개 사찰 모두 자연성이 떨어진다는 답이 도출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 현대도심사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