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인간의 이익과 번영과 행복을 위해 길을 떠나라. 둘이 가지 말고 홀로 가라. 처음도 아름답고 중간도 아름답고 마지막도 아름다우며 말과 내용을 갖춘 가르침을 설하라.”2500여 년 전, 부처님이 60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전도선언’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부처님 가르침’은 그렇게 시작됐다. 부처님의 결심과 60명의 제자들에서 시작된 불사였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부루나와 아난이 있어 오늘의 우리는 그 가르침으로 살고 있다. 시대마다 이름을 달리한 수많은 제자들이 있어 부처님의 ‘전도선언’은 유구한 역사와 함
“미술로 감동과 영감을 주는 사회를 만드는 데 미술관이 앞장서겠습니다”지난 2월 25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재임명된 윤범모 관장의 ‘새로운 3년 비전’이다. 국립미술관의 관장으로서 이 시대에 제시할 수 있는 비전으로 이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이 사회가 미술의 힘으로 감동과 영감을 받아 지속되는 사회가 된다면, 즉 문화의 가치가 사회의 원동력이 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훨씬 긍정적인 사회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평소 “한국미술의 역사 절반이 불교미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불교미술과 불교를 모르면 우리 문화의 전반을 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휴대전화 너머로 익숙한 노래 가사가 통화 연결음악으로 흘러나온다. 통화 연결음악으로도 통화의 주인공인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바로 조계종 원로의원 법타 스님이다. 법타 스님은 통일운동의 불모지였던 불교계에 ‘통일운동’의 불길을 당긴 불교계 1세대 통일운동가이다.평생을 수행자로서 통일운동에 매진해온 법타 스님이 이번에는 북한학 전문 연구자로 이름을 알렸다. 스님은 동국대 북한학과에서 ‘북한 조선불교도연맹 연구’로 올해 상반기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간 북한 종교 전반에 관련해 조선불
동국대 제 40대 이사장 법산 스님이 2월 17일 이사 임기 만료로 퇴임했다. 법산 스님의 삶 속에서 ‘동국’이라는 단어는 가장 큰 지분을 갖는다. 15세에 남해 화방사서 출가한 스님은 마산대학(현 영남대) 재학 당시 서경수 동국대 교수와의 인연으로 동국대에 입학해 수학했다. 이후 6년 간의 대만 유학 생활을 마친 스님은 1986년 동국대 선학과 조교수에 부임한 이래 2010년 정년퇴임까지 25년간 동국대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정년퇴임 후에도 학교법인 동국대 이사로 선임돼 학교 발전에 기여했고, 지난해 6월 27일 제40대
영화 속 고고학자 보고 꿈을 키워꿈 실현 위해 동대 고미술과 진학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불화 그려첫 개인전서 현대적 불화 선보여문인화·서예·전각 불화에 녹여아크릴 등 재료도 과감히 시도해일찍부터 해외에 우리 불화 알려수월관음도에 선재 대신 쥐 그려세화와 불화의 새로운 접목 시도 법을 찾아 나선 선재는 28번째로 만난 관세음보살로부터 보살의 대비행문 설법을 듣는다. 선재는 간절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바라보고 관세음보살은 따뜻한 시선으로 선재를 굽어본다. 보살과 선재 사이로 달빛의 물이 흐르고, 버들가지와 정병을 들고 있는 보살의
불교와 만나다수배 학생시절 법륜 스님 만나해인사 수련대회서 불교 입문불교교재 편집 도우며 본격 공부 부처님의 말씀은 궁극적으로 중생의 삶 속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실천의 문제가 요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불법의 실천이 전체의 삶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은 수없이 많다. 출가하여 사문의 길을 걷는 길부터 여러 분야에서 불법을 전하고 실천하는 일까지 수없이 많은 길이 있다. 그 속에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부
〈화엄경〉의 본래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이다. ‘대방광’은 진리, ‘화엄’은 보살이 여러 가지 꽃으로 부처님의 연화장 세계를 장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우리에게 〈화엄경〉은 선재동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선재동자는 53명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깨달음을 구한다. 그는 구도의 공덕으로 아미타불의 국토에 왕생해 입법계의 뜻을 이뤘다. 선재동자는 가장 모범적인 구도자이면서 이상적인 인간상이기도 하다. 그의 구법 원력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대행선 연구로 인생 2막8월 대행선연구원
20여 년 전 유명했던 TV광고의 한 대목.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좋다.” 지금 없어진 증권회사 광고지만, 당시 세간에서는 제법 유명세를 떨쳤다.왜 유명했을까. 일반적으로 한국사회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생각해 반대 입장을 이야기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경직됐던 당시 파격에 가까운 행동이었기 때문이다.기실 집단은 ‘애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 이의를 제가하는 사람이 없으면 반대 의견이 없다고 생각해 다수가 침
불교로 바뀐 삶모친, 태몽으로 약사여래 친견청소년기 사찰 불교학생회 활동사춘기 죽음에 대한 공포로 방황〈법구경〉으로 죽음 공포 벗어나〈법구경〉 등 본격 불교공부“부처님 당시의 초기 불교를 이끈 것은 ‘빠리사’였다. 빠리사는 왕족과 무사, 지식인, 상인, 사문, 거사 등 시민들로 구성된 수행공동체다. 빠리사는 부처님도 함께 무릎을 맞대고 둘러(pari) 앉아(sa) 대화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며 함께 개척해가는 자유평등의 공동체다. 부처님은 빠리사와 함께 법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논의했으며, 빠리사는 각종 불사
불교가 시작된 곳은 현재의 인도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펼치신 가르침이 동진(東進)해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까지 전해졌다. 수많은 시간과 지역을 거쳐 불교가 전해지기까지는 경전이라는 매개체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런 불교 경전의 전파는 여러 루트가 있었겠지만, ‘역경(譯經)’이 함께 해서 이뤄질 수 있었다.불교 역사를 살펴보면 뛰어난 역경사(譯經師)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구마라집은 경전 35종 294권을 번역했고, 인도에서 유학했던 현장은 74부 1,335권의 경전을 한역(漢譯)했다.한국불교에서도 삼
역사학도, 불교에 빠지다역사학자 꿈꾸며 사학과 입학불교에 반해 불교학생회 활동박물관 근무하며 불교미술 매료석굴암 불상 연구로 박사 학위‘최초’ 수식의 불교미술사학자 반고사 찾던 중 先史암각화 발견반구대 암각화 최초 발굴자 유명최초 해외발굴인 발해사원지 발굴주도해 금동불·막새기와 찾아내실크로드·간다라 발굴 등도 진행조선시대 고승 서산대사(1520~1604)는 ‘답설(踏雪)’이라는 게송에서 이렇게 말했다.‘눈을 밟으며 길을 갈 때에는(踏雪野中去)/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마라(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今日我行蹟)/ 후세들에게
누군가 그랬다. 야구는 인생과 같다고. 홈런 같은 한방도 있지만, 대부분 차근차근 출루해 1, 2, 3루를 돌아 홈 플레이트를 밟아야 점수가 난다. 이기기 위해서는 계속 점수를 내야 한다. 9회 말까지 매 회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인생 역시 완생(完生)을 위해 하루하루 미생(未生)의 삶을 산다. 그 미생의 삶 안에서 우리는 매일 이기고 지는 게임을 반복한다.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그 스코어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완생의 삶이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전설의 포수 요기 베라의 말처럼 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