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4월 9일 거조사(居祖寺)에는 꽃비가 내렸다. 부는 바람에 꽃잎들이 난분분 흩날리다가 마당에 내려앉았고, 마당에 쌓인 꽃잎들이 다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뒹굴었다. 거조사 마당에는 꽃잎으로 수놓은 만다라 문양(文樣)이 만들어졌다. 693년(효소왕 2) 원참조사가 창건한 거조사는 불조님(祖)이 주석하시는(居) 가람(寺)이어서 팔공산의 초목들도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리라. 필자는 국보 14호로 지정된 정면 7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柱心包式)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영산전(靈山殿)에 들어가 부
운문사 가는 길전국 어디든 1일 생활권역에 들어섰다는 요즘, 하지만 그런 시대의 흐름과 속도전 같은 것이야 그저 무심히 흘려보내는 곳이 있다. 운문사로 향하는 여정이 그렇다. 울산터미널에서 운문사가 있는 청도행 버스는 하루 서너 번. 기다리던 시외버스에 몸을 실으면 외곽도로를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일순 자세를 낮춘다. 굽이굽이 휘어진 위태로운 산길의 태세에 따라 버스도 사람도 하심(下心)으로 달려가는 길.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버스는 가쁜 숨을 내쉬고, 종점인 운문사 정류장의 도착을 알리는 것이다. 연간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나
다사(茶事)에 사용되는 도구를 다구(茶具)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다사’란 찻잎을 따고(采茶) 차를 만드는 것(製茶)에서부터 차를 보관(藏茶)하고, 차를 내어 마시는 행다(行茶)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차와 관련된 전반적인 일들을 뜻한다. 따라서 다구는 제다(製茶)와 탕법(湯法), 차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인식 등 시대별 다사의 흐름에 따라 그 범위와 종류가 달랐다. 가장 먼저 다사를 집대성해 차에 대한 모든 기준을 세운 당대의 육우(陸羽)는 〈다경(茶經)〉에서 다구와 다기(茶器)를 각각의 조목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육우가 정의한 ‘다
원시적인 길태초에 발이 있었다. 발이 있으니까, 지구에는 길이 생겼다.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은 걸어 다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에는 위험한 마차와 자동차가 사람을 위협했다. 위기를 느낀 사람들은 다시 마차와 자동차 없는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그렇게 생긴 둘레길, 산책길은 태초에 동물이 만든 길, ‘트레일(trail)’이라고 불린다. 길도 돌고 돌아 트레일에서 시작하여 다시 트레일로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다.약 300만년 전 유인원은 나무에서 내려와 어설픈 직립보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다른 동물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걸었다.
2021년 여름은 몹시 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전 겨울에는 기록적인 한파로 부산의 많은 지역의 수도관이 터져버렸는데, 뒤이은 여름은 견디기 힘든 더위가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 해에 나는 부산 영도 해련사에서 탑을 쌓으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5층의 석탑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날씨만이 불사는 더디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탑이 한층 한층 높아질 때, 고민과 걱정은 그림자처럼 따라서 길어지는 나날들이었다.탑은 아름다웠다. 돌은 귀한 경주석을 어렵게 구했다. 모양은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본떠 만들었는데, 소실된 상륜부를 재
초등학생 딸이 하루는 저녁을 먹으며 친구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 “PTG 오겠다”는 말을 했다. 자부심도 잠시, ‘PTSD’를 말하려다 틀린 모습이라 스스로도 민망한지 다시 고쳐 여러 번을 반복해 발음하려 노력하는데 점점 혀가 꼬여 엉망이 되는 모습이다. 유식하게 말해보려다 망신을 당했으니 부끄럽기도 했을 것이고 당황한 마음을 추스르기도 힘들었을 터. 동생의 얼굴이 빨갛게 변한 모습을 보고 있던 첫째 딸이 한쪽 입술을 올리고 쳐다보며 비웃듯 말했다.“PTSD!”“정확하게 모르면 사용을 하지 말라”는 핀잔도 덧붙이는 첫째였다. 둘째
혜소 국사의 남다른 도력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극락마을을 지나면 칠현산 기슭에 자리한 칠장사(七長寺)가 있다. 칠장사는 선덕여왕 5년(636) 자장 스님(590?~658?)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지만, 불분명하다. 본격적인 역사는 고려 초 혜소 국사(972~1054)가 머물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폐사와 중창을 거듭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 나한전, 사천왕문, 혜소국사비, 철당간(철로 된 깃대), 봉업사지석불입상 등 지정문화재가 있다.칠장사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궁예가 1
마음을 쉬면 마음이 편해지고 마음이 편안하면 여유가 생기고여유가 생기면 자신을 돌아본다이것이 수행의 시작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서울을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과 들에는 햇살과 바람을 먹은 생명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피어나는 생명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도착한 전남 나주. 사실 이런저런 일로 여러 번 나주를 ‘스치듯’ 오가기는 했지만 길게 머물러 본 적은 드물다. 나주에 가면 꼭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심향사(尋香寺)다. 나주를 대표하는 사찰로 나주의 역사와 함께해 온 여러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두 번째는 심향사 주변의 학교들이다. 나주지역 고등학교 불교학생회의 ‘전설’을 너
지금도 선명한 장면이 있다. 별 생각 없이 틀어놓은 뉴스에 비친 바다. 방송 카메라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배가 기울고 있다고 했다.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단체로 타고 있다고. ‘저런, 큰일이네, 아이들 참 무섭겠다. 부모들 걱정이 얼마나 클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다들 알게 된 상황이니 곧 구조가 되려니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이어졌고, 수학여행 제대로 하긴 글렀으니 좀 억울하려니 정도로 생각했었다. 꼬박꼬박 세금 낸 보람도 느꼈다.아니었다. 오보란다. 어선들이 달려가고, 헬기가 떠있는 장면을
하루키 씨, 제목 좀 빌릴게요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고 그 제목을 흉내 내고 싶어서 제목을 이렇게 달아보았습니다. 이제 막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거든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에세이는 참 솔직하고 담담하게 독자들을 상대로 말을 건네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과장하지 않고 억지 부리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느낌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전세계 모든 독자들이 그의 이 책을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천수경〉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습니다. 〈천수경〉! 내가 이 경
우뚝 서 계신 관세음보살님을 뵙고 기원 올린 여러분은 즐거움과 환희에 찬 풍요로움이 가득 차오를 것이다. 그 이름을 들은 사람이나 그 이름을 봉독한 사람은 관세음보살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이제 행복한 마음으로 조금만 남산의 불국정토 품으로 들어서면 선각육존불이 여러분을 맞이해 준다. 선각육존불이면 여섯 분의 부처님이 계신가 싶지만 두 분의 부처님과 네 분의 보살님이 계신 선으로 새겨진 불상이다.기본 상식 하나. 경주 남산은 계곡을 끼고 불국정토가 조성돼 있다. 아니, 전국의 모든 산사는 계곡을 끼고 있다. 이유는 계곡의 물 때문
화들짝 놀란 벚꽃이 와르르 깨어나 4월의 빛을 거리에 흩뿌린다. 오종종한 개나리꽃이 반짝반짝 노란별이 되어 담장 밑을 밝힌다. 중량감을 어찌할 수 없는 목련꽃은 주먹만한 하얀 등불을 처마 위 높이 걸어둔다. 젊은이들은 무거운 코트를 벗어던지고 밝고 경쾌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봄, 봄, 봄이 넘쳐흐르고 있다. ‘사시장춘(四時長春)’이라는 말이 그냥 생겨났을 리 없다. 봄같이 좋은 때가 어디 있으랴. 겨울을 뚫고 꽃들이 활짝 피어난 자연의 봄, 싱싱한 젊음이 들끓는 인생의 봄, 이보다 좋은 봄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봄
어떻게 관하는 것인지요질문 유튜브에서 큰스님 영상 법문을 보고 마음공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근데 일체를 관하라 하시는데 어떤 일체를 어떻게 관해야 하는 것인지요. 답변 일체라는 것은 자기가 이 세상에 나와서 지금 찰나찰나 화해 가면서 돌아가고 있으니 일체지요. 자기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있고,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우주가 있듯이 말입니다. 모든 것은 일체 같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둘이 아닌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일체, 일체’ 하죠. 그러니 지금 ‘일체 모두 놓고 관하라’ 이러는 것입니다. 내가 나더러 해 달라고 하는 것
〈상윳다니까야〉 절반경은 널리 인용되는 친구에 대한 짧은 경전이다. 아마도 경전이 설해진 날은 지금처럼 봄꽃이 완연하게 흐드러진 멋진 날이 아니었을까. 아난 스님이 즐겁고 활기찬 목소리로 부처님께 말씀드렸을 것이다.“스승님! 좋은 친구만 사귀어도 깨달음의 절반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아이고 우리 아난 스님! 내 생각에는 좋은 친구만 사귀어도 깨달음의 절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왜요? 스승님 곁에 저 같은 좋은 친구가 있으니까 이렇게 좋은 봄날에 꽃구경도 모셔다드리고 커피도 사다드리고 그런 거 아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아침 6시에 온라인 줌을 통해 도반들을 만났다. 코로나19 시기 시작된 온라인 윤독법회가 어느덧 4년째를 맞고 있다. 1부 30분간은 108배를 모시고, 2부 30분간은 한탑 스님의 〈금강경법문〉 책자를 함께 윤독하며 법담을 나눈다. SNS에서 다양한 인연을 맺고, 그분들의 고민을 들어드리면서 부처님의 지혜법문을 공유해야겠다는 원력이 더욱 다져졌다. 종교가 없거나 막연하게 불교에 호의를 가진 분들과 108배를 통해 공부의 연을 맺고, 자연스럽게 금강경 공부로 인례를 했다.어느 날 〈금강경법문〉 공부를 마친 후에
알레르기 비염이란?알레르기 비염은 일반인 중 약 16%가 있는 질환으로 아주 흔한 만성 질환 중 하나입니다. 코막힘, 콧물, 재채기, 코간지러움증이 주증상으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흔한 질환 중 하나입니다. 소아에서부터 발병하는 경우가 흔하며 심한 경우에는 눈부심, 과도한 눈물, 두통 등의 증상이 같이 생기기도 합니다. 잘 치료하지 않는 경우에는 만성부비동염(축농증), 천식 등 동반질환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알레르기 비염 환자에게 증상을 일으키는 유발 물질을 알레르기 항원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집먼지 진드기, 꽃가루, 동물의
한 표! 한 표!투표해요!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가 노란 꽃을 무겁게 달고 있다. 경기도 양주 연화사는 초입에서 일주문까지 깔끔하게 잘 가꿔져 있어 마치 화원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양주 연화사 극락보전 앞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다보탑이 있다.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고 있는 다보탑 위의 네 마리 사자상에는 널리 전법을 펴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있다.양주 불국산 연화사는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송암 혜승 대종사가 회주로 주석하고 있는 도량이다. 주석처에서 친견한 혜승 스님에게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올 겨울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을 여쭸다. “아직 코로나 후
이름난 유명한 산이라도 나무가 없으면 산이 아니요,나무 하나 하나가 모여 산을 이루니 어찌 작은 일이 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