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면목(本來面目)’은 선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선어(禪語)이다. 글자 그대로는 ‘본 모습’, ‘본 얼굴’ 정도지만, 그 심의(深意)는 ‘너는 누구냐?’, ‘너의 본성’ 또는 ’너의 정체성은 무엇이냐’고 묻는 말과도 같다.본래면목은 ‘본래 가지고 태어난 모습’, ‘전혀 꾸미지 않은 모습’, ‘순진무구한 모습’, 혹은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지 않은 모습’ 등을 말한다. 그런데 그 의미를 우리말로 정확히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철학적으로는 ‘본래적 자기’, ‘진정한 자기’, ‘진실한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
천 년 전 일이다. 어떤 수행승이 조주선사에게 질문했다.“선사, 만법(모든 존재)은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 것입니까(萬法歸一, 一歸何處)?” (이 수행승은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이것이 만법귀일의 발단이다. 이 날카로운 수행승의 질문에 조주선사는 엉뚱하게도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베옷 한 벌을 만들어 입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라고 대답했다. 만법귀일, 일귀하처도 어려운데, 조주선사의 답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솔직히 말해 해석은 커녕 추측도 불가능하다. 정답 없는 정답.‘
불교에서는 인간의 고통을 크게 여덟 가지로 구분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원증회고(怨憎會苦)’이다. ‘원증회고’는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꼴 보기 싫은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데서 오는 심적(心的)인 고통을 말한다.만나기 싫으면 안 만나면 될 것 같지만, 인간사회는 ‘독불장군’이라는 말과 같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부모, 형제, 가족, 선후배 등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간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존심이 상해도 배짱이 뒤틀려도 참아야 한다. 간혹 TV를 보면 인적 없는 산
‘일기일회(一期一會)’는 ‘일생에 단 한 번 밖에 없는 기회’ 또는 ‘일생에 단 한 번 밖에 없는 만남’이라는 뜻이다. 주로 다도(茶道)에서 즐겨 사용하고 있는 문구로 ‘이번 만남은 내 생애 단 한 번 밖에 없는 소중한 시간, 소중한 일이므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는 뜻이다.일기일회는 법정 스님이 수필집 제목으로 쓰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사자성어다. 법정 스님은 수필 〈일기일회〉에서 “한 번 지나가 버린 것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때그때마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이 일기일회일 뿐이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중생(인간)은 매우 똑똑하고 현명하다. 혹자는 어리석다고 하지만 선과 악, 의(義)와 불의가 있음을 발견한 것도 중생이고, 진리와 번뇌, 극락과 지옥, 부처와 중생의 세계가 있음을 발견한 것도 중생이다. 그래서 대승기신론에서는 우리 인간(중생)의 마음속에는 선악이 공존하고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는 바탕인 진여문(진여, 진리로 가는 길)과 중생으로 전전하게 되는 생멸문이 공존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 길로 갈 것인지는 당사자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보편적인 중생은 악(惡)과 무지(無知), 탐욕과 어리석음에 싸여 있다고
조고각하, ‘자기 발(다리) 아래를 잘 살펴보라’는 뜻이다. 사찰에 가면 대웅전이나 법당, 선방이나 대중방(큰방) 섬돌 앞에 ‘조고각하’라는 글씨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글자를 풀이하면 ‘조고(照顧)’는 ‘돌아보다’, ‘살펴보다’는 뜻이고, ‘각하(脚下)’는 ‘발 밑’ 또는 ‘다리 아래’를 뜻한다. 즉 ‘자기 발(다리) 밑’이나 ‘발아래를 살펴보라’는 뜻이다.‘조고각하(照顧脚下)’는 선종(禪宗, 선불교)에서 사용하는 언어이다. 물론 선원의 현관이나 법당, 큰방 등 신발을 벗어놓는 섬돌 앞에 쓰여 있으므로, 한자를 안다면 물을
오매일여(寤寐一如). ‘자나 깨나 한결 같다(寤寐一如)’는 뜻이다. 일반적인 뜻은 그렇지만, 선에서는 ‘화두를 참구하고 있는 상태가 깨어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한결같아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오매일여(寤寐一如)는 근래 우리나라 선원에서 새롭게 대두된 말이다. ‘무’, ‘이뭣고’ 등 화두를 들어서(참구하여) 화두삼매의 경지가 된 상태, 삼매가 된 상태를 말한다. 오(寤)는 깨어 있을 때를 가리키고, 매(寐)는 잠들어 있을 때를 가리킨다. 그리고 일여(一如)는 ‘오로지’, ‘한결 같다’는 뜻으로 삼매(三昧)를 가리킨다
가을이다. 마른 잎이 떨어지고 낙엽이 구르기 시작하면 왠지 쓸쓸해지고 허무해진다. ‘인생무상’, ‘가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낙엽 소리를 들으면 심장에 구멍이 뚫린다. 그리고 마음에 병이 든다. 신약이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이 병은 아직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다. ‘허무(虛無) 병’, ‘가을 병’이다.‘제행무상’은 불교의 진리를 잘 나타내고 있는 말이다. 세 가지 진리인 삼법인의 하나로 모든 존재와 현상은 영원한 것은 없다. 일정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시시각각으로 변천해 가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멸(死
일사일지(一事一智)는 ‘한 가지 일을 통해서 한 가지 지혜를 얻는다’는 뜻이다. 일사일지(一事一智)는 ‘간시궐(乾屎右, 마른 똥막대기)’이라는 화두로 유명한 운문선사의 말씀이다. 그의 법문집인 〈운문광록(雲門廣錄)〉에 나오는 ‘인일사 장일지(因一事 長一智)’에서 줄인 말인데, 운문선사 외에도 많은 선승들이 즐겨 사용했다. 또 〈명심보감〉 등 일반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사자성어다.〈명심보감〉 성심편에는 “불경일사(不經一事)면 부장일지(不長一智)”라고 하여, ‘한 가지 일을 겪지 않으면 하나의 지혜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실
‘파사현정(破邪顯正)’은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도리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삿된 가르침, 잘못된 가르침을 타파하고 바른 가르침, 정법을 높이 선양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불교를 비난하는 이교도들의 행동 또는 불교 내에서도 정도가 아닌 사도(邪道)를 설하는 이들을 비판함과 동시에 붓다가 설한 정법의 진리를 확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邪)’는 ‘바르지 못한 것’ ‘정도가 아닌 것’ ‘사도(邪道)’ ‘사견(四見)’을 가리킨다.파사현정은 조선시대 숭유억불시대 때 극에 달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고승이라고 할 수 있는 함허(涵
적습성성(積習成性)이란 습관적인 행동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본성이 된다는 뜻이다. 에 있는 사자성어로,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오래되면 그 습관은 곧 그 사람의 본성, 성품이 되어 버린다(積習成性)’는 말이다.‘세 살 버릇 여든까지’,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과 같이 인간은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 친구 관계 등 교육과 생활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착한 사람이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사회적 범죄를 일삼는 악인이 선인이 될 수도 있다. 역사적 사실과는 좀 차이가 있지만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탁마상성(琢磨相成)’은 ‘서로 탁마해서 불도를 이루게 한다(琢磨相成)’는 뜻으로 새벽 종송에 있는 말이다.사찰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한다. 예불은 부처님께 드리는 문안 인사라고 할 수 있다. 예불을 올리기 전에 꿈나라 속의 대중을 깨우는 등 여러 가지 의미에서 도량석과 새벽 종송(鍾頌)을 한다. 도량석은 목탁을 치며 천수경 등 염불을 외우면서 도량을 순회하는 것을 말한다.그리고 새벽 종송은 ‘새벽 종(鐘)’으로 도량석이 끝난 다음에 하는 법식인데, 종을 치면서 귀감이 되는 명구를 염불하듯이 외우는 것을 말한다. 저녁 예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