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기고한 적도 없고 산속에 살고 있는 보잘 것 없는 중에게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故 김주일 국장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합니다. 지금은 앞서서 몸의 고통에서 벗어났으니 산속에 살고 있는 중보다도 낫습니다. 몸을 버렸다는 비보를 들었을 때, 지난 1월 4박 5일간 라오스 출장을 함께하면서 부처님의 가피를 한국을 넘어 불교국가의 어려운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들을 함께하자며 인팽사원에서 기도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김주일 국장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깊이 이야기하지 못한 아쉬움이 먼저 일어났지만, 세상의 일
-무슨 말이야? 윤회관을 인정한다는 말이야 부정한다는 말이야?심 작가였다. 그가 정말 헷갈린다는 듯이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어금니를 씹으며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윤회를 인정하든 부정하든 분명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늬? 난타의 업장이 만들어낸 무늬? 그 무늬가 오늘의 이석원을 만들었다?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다음 말을 씹어 뱉었다.-뒤쪽 선반 위를 봐. 거기 바랑이 있을 테니.돌아서서 올려다보자 선반이 머리 위에 있었다. 약병 나부랭이와 헝겊들…. 거기 바랑 하나가
용은 물 에너지, 봉황은 바람 에너지미국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등의 저서에서 “신은 에너지의 의인화다”라는 명제로 신화에 접근하고 해석했다. “신이란 삶과 우주 만유에 작용하는 근원적 에너지나 가치체계를 의인화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이 명제는 한국산사 장엄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용, 봉황 등의 상상 속 서수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에 보면 환웅은 우사(雨師), 운사(雲師), 풍백(風伯)을 포함해 3000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고 홍익인간의
〈원문〉“아난아, 변화하는 이치가 머물지 아니하고 움쩍움쩍 은밀히 옮겨지며 손톱이 자라고 머리털이 길어지며 기운이 없어지고 얼굴이 주름져 밤낮으로 늙어 가지만 일찍이 깨닫지 못하느니라.아난아, 행음(行陰)이 네가 아니라면 어떻게 몸이 달라지며, 만약 반드시 너라고 할 것 같으면 어째서 깨닫지 못하는가? 너의 행음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으니 이름하여 그윽하고 은밀한 네 번째 망상이니라. 또 너의 알차고 밝고 고요하여 동요치 않는 곳을 항상한 것이라 할진대 몸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나오지 못할 것이며, 만약 진실로 알차고 참
한물건과 쿤달리니 사이에서 작용하는 인력을 느껴본다.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면서 한물건을 중극으로 끌어올린다. 숨을 내쉬면서, 중극에서 황정과 명문을 함께 내려다본다. 좁게 형성된 삼각형의 내부 면을 지켜보면서 척추뼈의 감각과 척수 공간을 함께 느껴본다.숨을 들이쉬면서 명문의 쿤달리니를 영대로 끌어올린다. 중극의 한물건과 영대의 쿤달리니 사이에서 작용하는 인력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중극과 영대 사이에서 형성되어 있는 간극을 주시한다. 삼각형의 내부 공간과 간극의 형질을 비교해 본다. 똑같이 느껴지면 그 상태에 머물
팔만사천법문이 하나로 돌아가는 안내서인데, 그 참뜻을 알지 못해 오온을 가지고 수없는 행위의 반복으로 거듭나고자 하겠지만, 그 행위가 오히려 본질을 방해하는 줄을 어찌 가늠하겠는가. 가만히 앉아 허공을 보고, 흐르는 물로 목마름을 해소하는 일이 따분한 것 같지만, 다시 구해야 하는 것 없으니, 중생이라는 마음으로 부처를 향하려는 마음 또한 부질없는 헛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서둘러 돌아갈 곳을 잊고 보니, 때에 맞게 주어지는 것 이외에 따로 찾아야 할 것 없고, 내가 세상을 정복하는 것도 아니니, 세상이 나를 굴복시키는 것도
계묘년(癸卯年)의 끝 12월이다. 시간의 빠름과 세월의 흐름이 바람 같다고나 할까? 아님 구름 같다고나 할까? 올 한 해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글로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시간 그리고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진정한 주인 이었을까?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내 인생을 내가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수처작주 입처개진”,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지금 있는 그곳이 진리의 자리라는 뜻이다.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원묘지에는 생몰 연대도 없고, 묘비명(墓碑銘)도 없는 다소 야성적인 무덤 하나가 있다. 검은색 화강암 묘지석에는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라는 이름만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내가 어디에 묻혀도 후세인들이 나를 발견할 것이다”라고 장담한 철학가 쇼펜하우어(1788~1860)는 과연 그가 예언한 대로 흙 속에 묻힌 후에야 비로소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는 묘비명 보다는 자신의 저작들 속에서 기억되기를 바랐다. 독일의 근대 철학가 중에서 사후에 쇼펜하우어만큼 관심과 명성을 얻
지난해 12월에 쓴 연재 제목은 ‘AI 시대의 명상’이었다. 당시 원고에서 세상의 기술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명상의 국가경쟁력은 기술과 접목해야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명상 콘텐츠 측면에서 최대 강국이기 때문에 기술만 접목하면 전 세계 K-Meditation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1년이 지난 2023년 12월 명상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 대비 산업적 측면에서 명상 경쟁력이 더 약화된 듯하다. 특히 챗GPT로 촉발된 AI 솔
그동안 우리는 부처님이 깨친 중도와 한국 화두선 명상의 가치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누구든지 부처님이 깨달은 중도를 공부하여 정견을 세우고, 화두선이든 호흡명상이든 지속적으로 꾸준히 생활화해 나가면 마음이 밝아지고 고요해져 나날이 좋은날이 될 수 있다. 세상에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치유 명상과 깨달음 명상세계적인 명상 붐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명상 수련법이 나오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참선 명상에 대한 정견을 세워야 한다. 참선 명상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눠진다.첫째, 나의 스트레스 해소와 심신의 건강을 위한
-어느 날 한 사문이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부처님은 있다고 했는데 왜 없다고 했을까? 그 소리야.심 작가를 놀리듯이 알겠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그가 말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알겠는가?-무엇을?심 작가가 되받았다.-이와 같다. 부처님은 영혼이 없다고 했고 나는 있다고 한다. 어쩔 테냐?나는 눈을 감았다. 무슨 말인가?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저 언덕으로 갈 수가 없다는 말인가? 그래서 어쩔 테냐? 그 문제를 풀어야 내 본래면목을 볼 수 있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내 심중을 읽은 듯이 입
〈원문〉부처님이 아난에게 고하셨다.“알차고 진실하고 미묘하고 밝은 본래의 깨달음(本覺)은 원만하고 청정하여 죽고 태어나는 생사나 티끌의 때(塵垢)나 나아가 허공 따위를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지만 모두 망상으로 인하여 생겨난 것들이니라. 이는 원래 본래의 깨달음이 허망하게 기세간(器世間)을 발생하게 한 것이니 연야달다가 거울 속의 머리를 오인하여 광기(狂氣)가 발동한 것과 같아서 망(妄)은 원래 원인이 없거늘 망상 속에서 인연이라 하고 자연이라 하거니 저 허공의 성품도 실로 환(幻)으로 생긴 것이므로 인연이다 자연이다 하는 것은 망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