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율사 탑 조성으로 국가 통일과 안녕 염원 ? 한반도의 불교사를 통틀어 가장 큰 탑은 무엇인가? 그 탑은 두말 할 필요 없이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소재했던 황룡사 9층목탑이다. 신라왕실의 권위와 호국을 상징하는 세 가지 보물은 진흥왕 때 만들어졌다는 장육존상(丈六尊像), 진평왕이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천사옥대(天賜玉帶), 그리고 선덕여왕 때에 만들어진 황룡사 9층목탑이다. 이 세 가지는 통일신라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보물들일뿐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지금까지 흔적이나마 전해지고 있는 유일한 보물이 황룡사지에 있는 구층목탑의 유적이다. 기록에 의하면 2만5천평에 달하는 습지를 메워서 탑을 지었다고 하니, 그 크기가 얼마나 웅장했을지 상상을 초월
영정은 참선 모습 인상적 出世해 중생제도해 주길 속가 시절 서울서 통역일을 하면서 여가를 이용해서 부산구경을 하러 몇 번 다닌 적이 있었다. 경주를 지나 언양쪽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데 양산 통도사가 있는 곳에 이상한 기운이 하늘에 까지 높이 걸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왜 그런 이상한 기운이 있는가를 궁금해 하면서 통도사에 가서 지금 성보박물관 있는 곳을 지나 반월교를 보면서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거쳐 걸었다. 낡고 오랜 웅장하고 아름다운 절을 이리 저리 보고 걸으며 금강계단을 참배한 적이 있다. 다른 절들은 모두 큰 법당에 부처님과 협시보살들을 모시는데,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단은 있으되 좌대도 없고, 불상도 없다. 그 이유는 뒤에 위치한 금강계단에 자장 율사(慈藏律師
?10년 전 티베트에서 첫 만남 집 기부할 정도의 신심 돋보여 재가불자 역할 잊지 말아야 ? 처음 리차드 기어의 사진을 본 곳은 중부 유럽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의 크렘즈라는 교육도시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프리티 우먼’이라는 영화가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치고 있을 당시라 리차드 기어 거사와 줄리아 로버츠가 함께 찍은 포스터가 여기 저기 붙어 있었다. 그리고 출가해서 승가대학에 재학 중일 때 달라이 라마의 대법회에 참석해서 티벳불교를 한 번 보려고 인도의 보드가야에 갔을 때이다. 그 곳 식당에 저녁공양을 하러 갔는데, 내가 앉은 자리에 리차드 기어 거사가 다가와 앉았다. 기어 거사에게 한국에 와 본 적이 있는가를 묻고, 티베트 승려들과 같은 짙은 갈색의 양복을 입었길래 양
세상에서 가장 일찍 피는 꽃 청매선사의 십무익송 보며 수행자의 자세 돌아보게 돼 ? ? 북방의 추운 세상에 살던 매화는 남방으로 내려와도 여전히 그 가풍을 잊지 않고 추운 겨울 눈이 수북히 쌓여 만물이 기가 죽어 고요할 때도 얼음을 뚫고 꽃봉오리를 피워내 온 세상에 단 한 가지의 꽃만으로도 봄이 왔음을 알리면서 새로운 세상의 첫 날을 만들어낸다. 화조화에서는 동백과 매화를 함께 그려 놓은 그림들이 상당히 많다. 대개 그런 그림들이 뜻하는 바는 사랑과 만남이다. 부부나 연인, 또는 친구를 상징하는 두 마리 이상의 참새를 그려 놓고, 동백꽃이 만발한 가지와 백매(白梅)와 홍매(紅梅)가 만발한 가지를 겹쳐서 그린다. 그 의미를 살펴보면 겨울이 오기 전에 가장 늦게 끝까지 피어있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사는 존재 내 기분이 꽃의 웃음 만들어 굴원은 고대 중국 전국시대 당시에 초나라의 시인이다. 동정호의 원류인 멱라(汨羅)에 돌을 안고 뛰어들어 자결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를 기념해서 단오절이 생겼다는 일화가 있는 것을 보면, 한국과 중국에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임이 분명하다. 굴원은 난초를 주체로 시를 쓴 최초의 시인이라고 한다. 그가 쓴 최고의 명문인 ‘이소’를 보면, 굴원이 사군자 중에 여름을 상징하는 식물인 난초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알 수 있다. “여기자란지구원혜(余旣滋蘭之九?兮)-나는 이미 구원의 밭에 난초를 키우고 / 우수혜지백무(又樹蕙之百畝)-또 백무의 밭에 혜초도 심었다”라고 한 부분을 읽어보자. 백무라 하면 만평 정도의 밭이고, 9원일 경
?경전에 원숭이 일화 자주 등장 난다 존자에게 깨달음 주기도 초기 경전인 담마빠다(법구경)나 수타니파타(경집)의 일화들을 보면 원숭이와 관련된 수많은 일화들이 나온다. 서유기에 보면 원숭이에 불과한 손오공은 마침내 공(空)을 깨치고,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결국 투전승불이라는 부처님이 되어 지금도 참회하는 이들의 절을 받는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원숭이들을 크게 존중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인도의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에 나오는 힌두교의 신인 하누만도 원숭이고, 중국에서는 원숭이는 신의 사자(使者) 라고 해서 존중받는 존재이다. 또한 보노보 원숭이나 침팬지 등은 유전자 게놈이 인간과 겨우 1.3% 밖에 차이가 안 난다. 그러니 둘은 먼 옛날로 돌아가면 한 조상에서 떨어져 나왔음을 인
궁궐 법문 초청에서 사미에게 노래시켜 진리의 의미 일깨워 만공(滿空) 월면(月面)스님께서는 서산 천장사에서 경허 스님의 친형이었던 태허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하여, 계사였던 경허스님을 시봉하며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다. 1937년 마곡사 주지를 지낼 때 조선총독부 회의실에서 조선 31본산 주지회의가 열렸는데 당시 생사여탈권을 지닌 미나미 총독이 조선불교를 일본불교화하려고 하자 그 자리에서 호통을 칠만큼 대담했던 스님이셨다. 스님에 대한 일화는 경허 스님 못지 않을 만큼 많은데, 덕숭총림 3대 방장을 지내신 원담 진성 스님과 관련된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원담 스님의 사미 때의 법명이 진성인데, 만공스님께서는 유달리 진성 스님을 귀여워 하셨다고 한다. 1930년대 말, 만공 스님이
? 사하라 사막 조종사와의 만남 보현행원 찾는 구법행의 하나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오행산에서 풀어주어 제자를 만들어 서역으로 떠나는데, 가는 길에 여섯 명의 강도를 만난다. 강도들을 본 손오공은 그들을 모두 때려죽인다. 손오공의 살생을 본 삼장은 엄히 꾸짖는데, 손오공은 버럭 화를 내고 떠나 버린다. 이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석가세존이 만드신 세 개의 머리테를 건네는데, 그것이 바로 긴고아와 금고아 등이다. 그리고 긴고주와 금고주를 외우면, 그 테는 머리를 파고들어 눈이 튀어나오고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겪는다. 그리하여 옥황상제도 어찌 못하는 신통력을 지닌 손오공은 순한 양처럼 삼장법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두 개의 머리테는 서역길에서 만난 흑풍산 흑풍괴와
평상복 차림의 이하응 모습 염주는 복잡한 심정 보여줘 ? 인사동의 끝자락에 위치한 안국역에 가면 사적 제 257호로 지정된 운현궁(雲峴宮)이 있다. 바로 이 곳이 원래는 흥선대원군의 사저였는데, 지금은 그 일부가 덕성여대의 교사(校舍)로 쓰이고 있다. 조선 26대 왕인 고종이 12세까지 자라던 장소이고, 명성황후가 세자빈이 된 후 거처하던 곳이다. 소설가 금동(琴童)김동인(金東仁)이 1933년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그의 대표작인 소설이 바로 이 궁의 이름을 땄다. 〈운현궁의 봄〉이라는 이 소설에서 흥선군 이하응의 일대기를 흥미진진한 사건을 번갈아 연결하면서 재미있게 윤색해서 쓴 것을 어린 시절 읽은 적이 있다. 이 곳에서 흥선군은 서원을 철폐하고, 경복궁을 중건하고, 세제를 개혁
미황사 창건은 소와 연관 안양암 금륜전 흰소 ‘눈길’ 〈미황사사적비〉에 의하면 검은 소가 경전을 싣고 가다 멈춘 곳에 미황사(美黃寺)를 세웠다는 기록이 나온다. 창건주인 의조화상(義照和尙)의 꿈속에 금인(金人)이 나타나 “나는 우전국(優塡國, 인도)의 왕인데, 경상(經像)을 모시며 여러 나라를 다니다 이 곳에서 일만불(一萬佛)을 보았기에 이 곳에 경을 모시려 한다”고 말한다.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장운(張雲)·장선(張善) 두 사미와 더불어 배 안을 살피니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 비로자나·문수보살 및 40성중(聖衆), 16나한과 탱화 등이 있고 또 금환(金環)과 흑석(黑石)이 각 한 개씩 있었다. 향도들이 경을 해안에 내려놓고 봉안할 장소를 의논할 때 흑석이 저
응송스님 승가 다회 전통 계승 한국 차맥 원류 복원 일등 공신 ? 며칠 전에 인터넷의 상위검색어로 갑자기 녹차가 떴다. 중국의 한 의대에서 녹차속의 화학물질이 사람의 기억력과 공간지각능력을 향상시킨다는 발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이미 몇 백년전에 우리 스님들은 다 알고 계셨던 사실들이다. 초의스님의 동다송에 이미 그런 사실이 적혀있어서, 초의-범해 각안스님으로 이어지는 삼대(三代)째 응송(應松)노스님께서 다화(茶畵)에 다유구덕(茶有九德)이라 화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단 두 줄의 선으로 목판으로 된 소박한 찻상을 그리고, 그 위에 찻잔 하나 다관 하나를 그리셨다. 단정한 글씨로 차가 지닌 아홉 가지 덕을 쓰셨는데, 효당 최범술 님의 글은 많이 보았어도 응송노스님
순복음 교회 목사 침입 산신 눈에 푸른색 낙서 한국 기독교 폐해 보여줘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의 규모를 자랑하는 순복음교회 교단의 목사님 한 분이 동화사를 방문하셔서, 산신각에서 낙서를 하고 조사전의 다기에 오줌을 싸는 행사를 거행하셨다. 전세계적으로 기독교 목회자의 평소 행실이 그러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일이었다. 1816년 9월 영국의 해안 탐사선 알레스트호와 리라호가 충남 서천 마량진에 상륙, 조선인 첨사 조대복에게 영어성경을 전달한 이후로, 선교사인 칼 귀츨라프(Karl Gutzlaffㆍ1803~1851)가 조선에 기독교 전도를 위해 최초로 들어왔다. 그 이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 한국 기독교는 이제 한국 사회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인구로 사회각층에 지도적
다섯 청학 날아 오른 전설은 5천만 우리 민족 상징해 ‘흥미’ 대승불교에서 가장 사랑받는 존재는 누구일까? 그분은 관세음보살님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동양삼국인 한중일을 비롯해서 상좌부 불교까지 관세음보살은 그 존재와 지위를 명확히 하고 있다. 티베트불교에서 관세음보살님이 흘린 눈물서 태어난 백색과 녹색의 다라관음(多羅觀音)들조차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녹색 타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백색 타라는 자비로 중생을 돌보고, 장수와 치유, 평정함을 얻게 해 준다. 그리고 한국 일본 중국 중 가장 먼저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사찰을 지은 곳이 바로 낙산사다. 낙산사의 대승불교 속에서 위상은 중국의 관음성지인 절강성 영파 보제사
찌그러진 사리함 뚜껑 ‘눈길’ 마구니 질투 막기 위한 방편 공중사리탑 청동함의 비밀 2011년 11월에 양양 낙산사에서 발견된 공중사리탑 내의 사리장엄구가 보물 1723호로 일괄 지정됐다. 당시에 거센 해풍과 낙산사의 화재로 인해 탑신이 약간 기울어지면서 수리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2006년 4월 28일 기울어진 탑신을 제거하고 공중사리탑(空中舍利塔)을 보수하던 중, 탑신석 상면 중앙의 원형사리공(직경 23cm, 깊이 17cm)내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공중사리탑이란 명칭을 지닌 유일한 문화재가 ‘공중사리탑’이다. 그 연유는 조선 중기에 홍련암 법당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공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자세히 들어보니 부처님의 사리 한 과를 내리니 소중히 보관하라는
한국 차 불교 흥망성쇠와 연관 천년 전 찻잔서 차문화 읽어내 ? 차(茶)의 기원은 몇가지 이설(異說)이 있긴 하지만 기원전 고대 중국의 삼황(三皇)중 한 분인 신농(神農)씨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불을 지피고, 농사를 시작한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왕이다. 어느 날 그가 나무 아래서 물을 끓여 마셨는데, 나뭇잎 서너 개가 주전자에 떨어져 우러난 물을 마셨는데 그 차맛에 감탄하여 계속 마셨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는 신농씨가 수백가지 풀을 먹다 독에 중독되어 정신을 잃고 어느 나무 밑에 쓰러져 있었다. 그 때 바람을 타고 푸른 잎사귀 하나가 신농의 입으로 떨어졌는데, 이 잎을 먹자 정신이 맑아지고 모든 독이 해독되었다. 그 잎이 바로 찻잎인 것이다. 또 다른 전설은 보리달마(
정토 안양 수마제 등 다양한 이름 극락 지칭하며 행복한 삶 기원해 기생 진향도 아미타불에 마음 담아 사바세계 고해(苦海)속에서 기약 없는 고통을 겪고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 중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극락이 아닐까 한다. 극락세계는 먼 곳이 아니라고 한다. 마음이 극락도 만들고 지옥도 만들기에 마음이 평화로우면 극락이고 마음에 탐욕과 분노가 있으면 지옥이라 한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중은 아미타불께서 힘들여 지으신 실제극락이 있다고 믿기에 밤낮으로 아미타불을 염송하고 산다. 극락세계는 고통이 없을 뿐 만 아니라 즐거움만 있는 곳이고 고통과 즐거움이 겹쳐 인간에게 생각하도록 만들지 않고 수행이 가능한 곳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극락세계에서 열심히 수행하면서 지내면 사
? 동방 지국천왕의 지물(持物) 한국 향비파 당비파 전해져 포교 위해 연주자 양성 필요 ? 지금도 안타까운 것은 전국의 유명 사찰들에서 아직도 사천왕상의 위치와 이름을 혼동한 채로 그대로 놔두고 있는 것이다. 가끔 성지순례를 가보면 위치는 제대로이지만 사천왕상의 이름을 모두 다 바꿔놓고 전부 틀린 사찰들이 꽤 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불국토의 동쪽을 지키는 동방 지국천왕의 지물인 비파(琵琶)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항상 사천왕각을 지날 때마다 지국천왕이 지니고 있는 비파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채 바라보기만 한 적이 많다.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에 의하면 지국천왕은 비파를 든 것으로 되어있다.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에는 왼손에 팔을 내려 칼을 잡고, 오른 손엔 보주(寶珠)를
6.25 당시 폭격으로 소실 자비 미소 사진으로만 남아 ?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낙산사는 엄연히 2003년에 보물로 지정된 제 1362호 건칠관세음보살좌상이 있는데, 무슨 목조관음상이냐 하는 의문을 갖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1950년에 조선시대에 지어진 낙산사 원통보전이 불타기 전에 사진에 나오는 이 목조불상이 원통보전에 좌정하고 계셨다. 지난 백년간 낙산사 원통보전은 두 번 불타고 두 번 새로 지어졌다. 사찰과 같은 목조건물에 불이 나면 남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지붕을 이는 기와이다. 수막새, 막새기와, 와당 같은 기와들이 불탄 자리에 남는다. 둘째는 주춧돌이다. 화강암 같은 강한 석질의 돌들이 불을 쉽게 이겨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
석주 스님의 ‘오유지족’ 배고픔 면할 수 있다면 행복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해 법정스님 무소유 되새겨야 ? 한국 불교 현대사를 온 신심(身心)을 다해 살아가신 조계종의 큰 어르신이었던 석주(昔珠)스님께서 가장 많이 쓰신 글이 바로 오유지족이다. 그대로 직역하자면, ‘나는 오직 만족함을 안다’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신도들이 글을 받으러 오면 부자가 되는 글이라 하셨다한다. 석주 스님은 조계종의 총무원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시고, 역경원을 설치하여 한국불교사 사상 최초로 대장경을 한글로 완역하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신 분이다. 그뿐 아니라 포교를 위해서는 항상 글을 써주시고 전시회를 통해 모금한 돈은 전액 불사에 쓰셨다. 스님은 종교 법정 공휴일이 오로지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만 존재
지철 스님의 도상圖像을 통해 본 상징과 은유 ? ?역사 깊은 지역 전통 사찰 40억원 금괴 사건 ‘화제’ 민족의 보물 손상 우려 ? 1921년에 찍힌 동화사 대웅전 사진을 보면 지금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동국진체(東國眞體)로 쓰여진 대웅전 정면 현판은 그대로였지만, 주련은 지금의 주련이 아니었다. 지금의 주련은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유아진견), 一切無有如佛者(일체무유여불자)’라는 장엄염불의 한 편이다. 그러나 예전 주련은 흰 바탕에 대자로 쓰여진, ‘마하대법왕(摩訶大法王) 거룩하고 위대하신 법왕이여!, 무단역무장(無短亦無長) 짧지도 또한 길지도 않으며, 본래비조백(本來非?白)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않지만, 수처현청황(隨處現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