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따라 흐른 절기는 어느새 대설과 동지다. 과거에 비해 눈 내리는 날이 적어졌어도 대설은 더러 폭설을 내려주기도 한다. 지리산에 처음 온 몇 해는 눈을 쓸다가 잠을 못잔 적도 있다. 사찰 진입로가 응달이라 내리 사흘간 쏟아진 눈을 치우지 않으면 겨우내 얼음판을 걸어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번거롭더라도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한번 치우려면 2시간은 족히 걸리니 며칠마다 눈 치우는 일은 성가시게 되었다.눈밭에 묻은 항아리에 동치미가 잘 익고 있다. 산죽을 베어 와서 무가 뜨지 않도록 틈을 채워주고 단도리를 해놓았으니 별탈이 없을
소설은 음력으로 시월이지만 바람이 점차 차가워지는 것을 보니 겨울이 다가왔음을 절감하게 한다. 예부터 소설무렵에는 바람이 세지고 차가워진다고 하였다. 밭에 남아 있는 배추를 모두 뽑아서 김장을 하고 저장음식을 만들어 놓는 시기이기도 하다.무말랭이는 햇살 고운 날 찬바람에 말려야 칼슘성분도 많아지고 맛도 좋아진다. 같은 무말랭이도 써는 방법에 따라 모양을 달리한다. 무는 직근이라서 칼질을 할 때 무가 세워진 방향을 따라 썰어줘야 말린 후에도 돌돌 말아 올라가지 않는다. 무말랭이장아찌를 ‘오그락지’라고도 하는데 말리면서 수분이 사라지고
선방의 일주문마다 걸망 하나씩 메고 걸어 들어가는 운수납자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입동이다. 겨울철 방부는 김장을 해야 해서 일찍 산문에 들어가야 했다. 용상방을 짜기 전에 모두 모여 본방식구들과 더불어 한 철 지낼 겨울준비를 같이 하던 시절이다. 밭에서 옮겨온 배추를 함께 절이고 양념을 만들고 무말랭이도 썰어 널고, 시래기까지 엮어 말리면 동안거가 시작된다.지금이야 배추농사도 흔하고 물질이 많은 시절이지만 과거에는 강원 학인이나 선방 수좌들이나 수중에 돈 한 푼 지닐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살던 시절이었다. 김장김치 양념도 사찰의
도토리묵꼬치·연자들깨찜·월과채차밭에는 꽃이 한창이다. 설화쌍봉수라고 하였던가. 꽃과 열매가 각각 제 일을 하고 있다. 하늘빛은 더욱 높아지고 바람조차 쾌청한 날씨가 계속된다. 일교차가 심한 덕에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만들어지는 가을의 깊숙한 자리에 와있다. 봉정에서 시작된 단풍은 제주 한라까지 보름을 넘기지 않고 온 산중을 붉게 물들인다. 호두를 좋아하는 청설모는 연일 바쁘게 움직인다. 아무래도 올해 호두도 맛을 보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에라, 도토리나 주우러 가야겠다. 주섬주섬 채비를 마치니 고동재 보살님이 앞서 가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는 한로에도 가을걷이가 아직 한창이다. 태풍이 여러 개 지나간 들녘은 생채기가 난 채로 바쁜 일손을 더욱 서두르게 한다. 조석으로 달라지는 공기가 제법 쌀쌀하여 새벽옷깃을 더욱 여미게 한다. 찬이슬이 맺는 한로에는 감국의 향기를 더욱 깊게 하고, 산행에서 만나는 꾀꼬리버섯은 옹기종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찬이슬 덕에 애호박이 들큰한 맛을 들인다. 연밭에서 캐온 햇연근은 그 아삭함에 자칫 생식을 하기 일쑤다. 에서는 “연근을 갈아서 즙을 낸 후 그 물을 마시고 밤새 땀을 내고 자고나면 어깨근육통이 풀린다
점점 차가워지는 기온이 농작물을 거두는 손길을 바쁘게 한다. 수확의 기쁨도 좋지만 느닷없이 내리는 소낙비를 피하려면 널어두었던 작물이 마르기 무섭게 저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은 앞으로 점점 해가 짧아짐을 의미한다.여름내 달궈진 지열 덕에 땅속에서 광물질의 합성에 의해 영양가 많은 토양으로 변해가는 시기다. 더덕이 굵어지고 도라지도 살이 찌는 시기, 또 마는 어떠한가. 더 깊숙이 뿌리를 키우고 있다. 돼지감자는 위로 아래로 기운을 나누느라 이파리가 푸르다 못해 검은빛을 내뿜는다. 울타리콩은 쉬지 않고 번
〈열양세시기〉를 살펴보니 “중추일을 가배라고 칭한 것은 신라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라 가배에서 비롯된 말로 일종의 부녀자들의 길쌈대회를 칭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만물이 성숙하고 중추가절이라고 칭하므로, 민간에서는 제일 중히 여긴다. 이날 아무리 궁벽한 시골의 가난한 집이라도 으레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먹는다. 안주나 과일도 분수에 넘치게 가득 차린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있다. 사찰의 추석차례상도 예외는 아니다. 절 주변에서 자라는 알밤을 주
금수암 지킴이 백구 두 마리는 암수 한 쌍이다. 더운 여름을 힘겹게 나더니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이하면서 기운을 차리고 먹성이 좋아졌다. 천고마비의 계절 처서에 때맞추어 결실이 익어간다. 놓았던 일손을 다시 꾸리니 이곳저곳 예초기 소리가 요란하다.중추가절 성묘를 위한 묘역 단장에 벌써부터 분주한 손길이 많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파리·모기의 성화도 사라져가는 무렵이 된다. 흔하게 하는 말로 모기 턱 떨어진다고 하는데, 모기는 습기만 있으면 태어나는 통에 가을이 다 가도록 사라지지 않기도 한다. 처서에는
가을 문턱이 성큼 다가온 입추는 백중보다 빠른 날짜 탓에 크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올해는 유독 늦더위가 심해서일까….잠시 를 살펴보니 7월 보름을 백중절(百種節)이라고 하고, 8월 보름을 가배일(嘉排日)이라고 한다. 혹자는 말하기를 신라와 고려 때는 불교를 숭상하여 우란분(盂蘭盆) 때 공양하는 옛 풍속을 모방, 7월 15일 중원일에 백종(百種), 즉 온갖 꽃과 과일을 갖추어 공양하고 복을 빌었으므로 백종절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옛사람들은 온 국민이 백종을 소홀히 하지 않고 조상의 천도를 위해 부처님께 공양올리고
앞산 뒷산의 흰 구름이 겹치며 흐른다. 산새소리 맑고 청량하여 무더운 날씨도 잊게 하는 여명의 시간 속에서 꽃비는 이미 그치니 좌선을 풀고 포행에 나선다. 내면에 귀 기울이고 자성과 만나는 이 소중한 시간, 하안거에 더욱 집중하는 시간이 전국 각지 수좌스님들의 용맹심과 함께 한다. 마음이 머무는 정진시간은 출가자 누구에게나 긴장과 조급함을 부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완급을 잘 조절해야 항상 물들지 않는 마음자리를 지킬 수 있다.금수암 텃밭은 27년간 한 번도 제초제나 살충제를 뿌리지 않고 토양을 지켜왔다. 더운 탓에 김을 매기가 쉽지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어릴 적 추억의 놀이다. 눈에 띄지 않던 두꺼비가 유독 장마철에 자주 보인다. 젖은 몸 말리고 돌 틈 구멍을 찾아들어가는 것을 보니 미물이라도 제 할 일은 알아서 하는 것이 대견하다. 모처럼 햇볕 드는 아침이면 너른 바위 위에 뱀이 몸을 말리려 늘어져 있다. 새끼를 가진 두꺼비는 뱀에게 다가가 뒷다리로 똑바로 서서 앞다리와 몸을 연신 움직이고 혀를 내밀어 약을 올린다. 약 오른 뱀은 두꺼비를 잡아먹으면 그 독에 자신이 죽는 줄 알면서도 화가 치밀어 결국 두꺼비를 한입에 삼킨다. 뱀 목구멍
햇살이 반갑지만은 않은 절기가 하지다. 자외선이며 오존농도며 높다고 하니 고마운 햇살이 잠시 꺼려지는 시기다. 아무리 옷을 입어도 섬유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은 체온을 높이고 만다. 잠깐 움직여도 땀이 흐르는 시기다. 수많은 추억을 간직한 단오가 지나고 농부의 일손을 잠시 쉬게 하는 하지다. 큰절에서 지내는 단오제도 못 본지 오래고, 매화산에 소금 묻으러 다니던 날도 단오다. 큰절 대중이 나누어 축구시합을 하고 가야산 중봉산행도 함께 했던 단오가 잊히고 있다. 세월이 흐르니 점차 변화하고 있다. 온고지신의 전통을 그나마 불교가 지켜내
풋보리의 풋풋한 맛을 추억하는 마을 어른들이 보리알을 모아 손으로 비벼 솥에 볶거나 맷돌에 갈아서 죽을 먹던 시절을 이야기한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 오죽하면 보릿고개를 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어렵다고 했을까.사찰의 경제사정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 춘곤기의 탁발 순례는 많은 스님들이 발품을 팔며 온 마을을 두 달 남짓 돌아야 했다. 그렇게 모은 곡식을 소달구지에 싣고 절 입구까지 옮긴 후에야 한숨을 놓았다고 하시는 노스님의 선방외호 시절을 즐겨듣던 그때가 그립다. 먹을 것이 넉넉지는 않았지만 신심과
〈농가월령가〉에서는 “음력 4월 맹하 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라고 이 계절을 표현한다. 여름이 시작됨을 알리는 말이다.사찰마다 채전밭에는 각종 채소들이 물이 오르고 상추는 꽃대를 올린다. 해인사의 전래음식으로 상추불뚝김치와 상추대궁전이 있다. 같은 이름인데 달리 불리는 것이 궁금하던 차에 노스님께 여쭤보니 모두 사투리라고 하셨다. 상추가 키는 작고 마디가 굵어 불뚝불뚝해서 불뚝이라고도 하고, 잎은 별로 없이 키만 키우는 상추는 줄기인 대가 많아 대궁이라고도 불린다고 하셨다. 고춧가루로 고춧물을 만들어 시원하게 먹는 상추물김치인
장 뜨기가 무섭게 벌레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나무는 햇살기운을 더해 빛이 깊어지고 들판의 보리밭은 싹이 여물고 있다. 입하는 보리덕분에 이름도 많다.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기운이라고 해서 맥량이라고도 부르는데, 현대인에게 생소한 명칭이지만 선조들의 농경사회에서는 땅을 의지하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이 삶에서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기에 이처럼 불렸다.곡우차를 만들지 않고 기다렸다가 작설차의 기운이 꽉 차는 시기인 입하에 첫 잎을 딴다. 살청을 하고 차를 만들어 부처님께 헌다하고 비로소 첫 모금을 넘길 때의 시원함이란 그저 찻잎
‘곡우에 비가 넉넉하지 않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는 속담처럼 봄비는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요소다. 봄비는 땅을 윤택하게 하고, 이 땅에서 곡식이 성장한다. 쌀이 제값을 받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의 쌀밥문화는 여전하다. 시간이 아닌 공간 전개식의 식사법에 따라 밥을 소화하기 위해 광합성 작용이 풍부한 나물찬을 먹음으로써 음식이 소화되기 때문이다. 이곳저곳 고사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수줍은 고사리! 나오면서 허리를 굽히는 고사리는 중국 은나라 때 나라가 망하자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는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
4월이 되니 온 세상이 ‘꽃천지’로 변하고 육신의 체온이 절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쾌적해졌다. 환절기가 지나고 그 오랜 기침의 연속인 체질을 원망하는 시간도 벗어나는 시기다. 매화가 가니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전국의 벚꽃지도를 그리기 시작하고, 나무순들이 새로운 잎새를 피우며 향기를 만든다.에는 ‘봄일을 시작하는 인화의 날’이라 하였고, 일을 시작함에 손 없는 날을 택해 조상의 음택을 옮기는 날을 한식에서 찾았다. 긴 추위를 벗어내고 새로운 삶의 준비를 하는 청명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수선화가 빼곡히 고개를 내밀
일기(日氣) 속에 식(食)이 있고 춘하추동의 법식이 있는데 춘분, 봄이로구나. 봄을 기다리는 많은 동식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정녕 네가 봄이로구나. 창을 두드리던 매화도 지고 보리에서 순싹이 나오는 봄이로구나.창고에서 대소쿠리를 꺼내 먼지를 털고 작은 호미 하나 챙겨서 산밭으로 내려가니 노지에 할미꽃이 반긴다. 원추리, 부지깽이, 방아, 곰취까지 땅에서 올라오는 나물은 모두 기운을 모아 함께한다. 이제 나물밥상이 시작된다,피우는 꽃조차 시샘하여 찬바람을 몰아오는 꽃샘추위도 이때쯤이다. 산골의 절에도 채전 일구는 손길이 시작되는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새벽기운을 타고 땅위에 올라온다. 옆 개울가 습기는 밤새 해동피나무에 서식하는 반딧불의 불빛을 키우느라 고단한 밤을 지새웠으리라.경칩은 겨우내 먹던 음식을 순식간에 잊게 하는 쌉싸래한 나물들이 많은 절기다. 머위는 꽃대부터 올리고 엄지손톱만한 이파리를 만들고 있다. 줄기의 신선한 보라색은 선명하고 기름지다. 고추장과 된장의 쓰임새가 좋은 철이다. 또한 산미나리의 향을 그리워하는 경칩이다. 녹는 땅의 온기만큼 자라는 산미나리는 오롯이 혼자인 계절이 딱 지금이다. 언 땅에 남아있는 풀들의 자취도 찾기 어려울 때 쌓인
복수초가 보이는 우수에는 바람이 유난히 잦다. 아무래도 눈이 녹아 비를 만드느라 바람이 돕는 모양이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차밭을 지나치다보면 군데군데 노오란 복수초가 솜털줄기를 밀어올리고 있다. 가장 먼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식물이다. 복수초를 찜기에 찐 다음 말려두었다가 차로 음용해 먹기도 하고 곱게 가루를 내어 다완에 가루를 넣고 차선으로 거품을 내어 말차로 만들기도 한다.출가하여 산중에서 설명절마다 만들던 쌀강정을 10년 넘게 노스님 밑에서 익히다보니 고추장을 이용한 버섯강정을 개발하게 되었다. 생표고버섯을 소금을 뿌려 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