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면서도 잘 몰랐던 것들얼마 전 내가 속한 화전매구보존회 어른 몇 분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오랫동안 매구로 단련된 분들이고, 누구보다 남해와 매구를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다. 한 해를 마치면서 보존회는 그간 공연을 하느라 고생한 단원들에게 공연비로 받아 적립된 금액을 수고하신 만큼 배분해 주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한 고마움을 전하고자 한 일이었다.불교주도개혁의 반발불교 ‘요승’ 오해 생겨새로운 혁신 인식 필요나는 행사에 빠진 적이 없어 가장 많은 액수를 수령하게 되었다. 올해가 1년 차라 그런 배려
지난여름 일이 문득 떠오른다. 평소 잘 알던 사람이 남해에 내려왔다. 단순한 여행은 아니었고, 군에서 초청한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남해는 지금 한창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 중에 있는데, 그 일에 대한 조언을 하고자 먼 길을 달려왔던 것이다.그 사람은 여성이다. 나와 같은 대학을 다녔다. 1학년 때부터 알게 되었는데, 다른 대학에 다니는 고등학교 동창이 축제 때 파트너가 필요하다며 여학생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나도 이성에 대해서는 숙맥인데, 소개할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남해서 만난 첫사랑 그녀예전과 다른 사업가 모습실망과
1년은 365일이고, 열두 달로 나눠진다. 지금은 보통 숫자를 나열해 달 이름을 정하지만, 예전에는 11월을 동짓달이라 했고, 12월을 섣달이라 불렀다. 그래서 한데 묶어 동지섣달이라 하면 ‘한 해 가운데 가장 추운 계절’을 가리켰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란 말도 그때가 그만큼 춥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물론 이런 표현에서 달은 음력이 기준이다. 지금은 11월 중순이지만, 음력으로 따지면 10월이다. 음력으로 11월 동짓달이 오려면 아직도 두 주는 더 기다려야 한다.위대한 인간의 숙명 ‘구도’입적시 ‘죽음’의 고향 정해행복
인생도 영화와 같다면…나는 평소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다. ‘시네마 천국’과 같은 어린 시절 영화에 관한 추억이 있지는 않아도 극장은 내게 놀이터와 같은 곳이었다. 초등학교 때야 입장이 되질 않으니(입장료도 없었지만) 마음대로 출입할 수는 없었다. 대신 입구 위에 걸린 대형 광고판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종교의 궁극적 목표 같아탈종교성 옅보이는 영화불교 새 시대 지평 넓혀야지금은 기계로 출력을 하지만, 내 어릴 적에는 소위 말하는 ‘간판장이’들이 직접 붓으로 그린 광고가 걸렸다. 상영 중인 영화와 다음에 개봉할 영화 그림이 사이좋
남해에는 숨겨진 자랑거리가 많다지난 주 남해에서는 넉넉한 가을만큼이나 풍성한 들을 거리와 볼거리 행사가 비단결처럼 펼쳐졌다. 우리나라 사람이 옛날부터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긴다고 중국 사람들도 혀를 내둘렀지만, 남해 분들처럼 흥이 많고 신명 잡히면 엉덩이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다. 국군의 날이었던 1일에는 오랜 만에 남해에서 ‘전국노래자랑’ 녹화가 있었고, 개천절인 3일부터 5일까지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독일맥주축제’가 성황리에 진행되었다.묘하게도 그 사이에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가 이 뜻 깊은 행사에 차
추석 때 읽은 두 편의 단편소설남들은 차례와 성묘, 고향 찾기로 분주했던 추석 연휴 때, 나는 남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찾아뵐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것도 아니고 가야 할 고향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나흘 연휴를 집에만 있자니 좀이 쑤셨다. 남해에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들 고향을 찾아온 친구와 친지들을 만나느라 바빴다. 외지 사람인 나로서는 끼어들기가 어려웠다. 그저 나를 무사히 사바세계에 살게 해주신 조상님들께 마음으로 차례를 올렸다.원효형 인간과 의상형
별들과 함께 하는 신선의 고장, 남해내가 남해에 정착한 지도 벌써 7년이 지났다. 오랜 도시 생활을 털어내고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남해로 오니 달라지는 일이 많았다. 워낙 서울이라는 동네가 내겐 지옥과 다를 바 없어 한적하고 넉넉한 농촌으로 내려오면서 상대적으로 기대감은 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해도 욕망과 이익에 눈이 먼 종자들이 (많지는 않지만) 사는 세상인 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인정 많고 뭔가 나눠주는 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이 더불어 살아가기에, 잘 왔다는 생각을 의심한 적은 없다.불교·우주생성 ‘업’
나는 내 마음의 주인인가?얼마 전에 원고 하나를 끝냈다. 대략 6백 매쯤 되는 분량이었는데, 초고를 마무리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지난 4월달쯤에 말로만 듣던 랜섬웨어 공격을 받아 수십년 동안 정리해뒀던 모든 한글 원고가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당연히 준비하던 수많은 원고들이 증발했다. 백업을 해 놓은 외장하드마저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어 함께 오유(烏有)로 돌아갔다. 파일을 망쳐 돈을 뜯어낸 뒤 복구해주는 해커가 있다는 소문만 들었지 그런 일이 내게 닥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금강석 보다 든든한 파수꾼공자도 행복
7월이 되자 생각지도 않았던 거대한 태풍이 나라 전체를 뒤덮고 있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북태평양 서부에서 발생하는 열대 저기압을 태풍이라 부르는데, 수명은 길어야 1주일에서 열흘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 태풍은 일본의 비열한 정권 괴수의 터진 입에서 발화되어 북상했다. 예고편까지 준비하며 요란을 떠는 이 태풍은 가을도 지나 겨울까지, 아니 더 길고 질기게 불어올 것 같다.일본서 불어온 ‘수출규제’ 태풍조상들의 주체적 극복 지혜 배워야적극적 대응으로 민족의 힘 키우자태풍은 우리나라를 피해 빠져나가거나 세력이 약화되어 지나가기도 한
우리는 강한 존재인가 약한 존재인가도저히 같은 공간에서 숨 쉬며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쌓인 원한을 두고 우리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이란 말을 쓴다. “함께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남을 뼛속 깊이 미워하다 보면 사실 괴로운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저주란 약한 자의 거의 파괴력 없는 무기일 뿐인데, 이것이 집단화되거나 권력자들이 사악하게 이용하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저들이 나보다 행복해 보여서, 나보다 돈이 많거나 출세를 해서, 내게는 없는 것을 가지고 있기에 미워하는 마음이 움튼다. 이런 미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백인백색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은 얼핏 비슷하게 생긴 듯해도 자세히 뜯어보면 저마다의 개성과 생각을 가지고 산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관심사가 무엇인지에 따라 판단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이런 다양함은 삶이든 세상이든 우리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서로 대화를 나누도록 이끈다. 차이란 토론의 씨앗이자 발전의 원동력이며 통섭(統攝)의 발판이다.그런데 이런 순기능도 서로 그 입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나온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그러니 네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우긴다면
남해에도 다인(茶人)이 있다지난주 토요일 오전 나는 읍내에 있는 유배문학관을 찾았다.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 있는 섬 남해는 고려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유배를 와서 고단한 삶을 살던 곳이기도 하다. 유배하면 제주도의 추사 김정희나 강진의 다산 정약용을 떠올리는데, 남해에도 꽤나 이름난 명사들이 많이 유배를 왔다.〈화전별곡〉을 남긴 자암 김구(金絿, 1488~ 1534)와 한글소설가 서포 김만중(金萬重, 1637~ 1692)이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내가 이곳 남해에 정착하게 된 계기도 따지고 보면 유배문학 때문이다. 2012
남해는 시의 고장이다남해에는 유독 시인들이 많다. 지역 신문을 보면 주마다 시 한 편 안 실리는 날이 드물다. 남해의 명소를 자랑하거나 개인의 추억담을 읊은 작품들인데, 남해가 정말 시혼(詩魂)이 가득한 땅임을 일깨워준다. 그런 시를 읽을 때면 나도 한 수 멋들어지게 지어 읊어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런 재능이 없다.작품을 싣는 사람들은 대개 정식 등단한 시인들인데, 딱히 신문을 안 읽더라도 나는 날마다 시나 다름없는 아름다운 언어의 꽃밭을 만나곤 한다. 가만히 남해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에 귀 기울이면 생각지도 못한 산뜻하
부처님 가르침은 어디를 가도 가득하다남다른 비경을 자랑하는 남해에는 유서 깊은 고찰(古刹)이 여러 군데 있다. 우리나라 삼대 관세음보살 성지의 하나로 알려진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인 683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터를 잡았다. 호구산에는 용문사가 있는데, 신라 애장왕 3년인 802년에 세워졌다. 망운산에 자리한 화방사는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역시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화방사는 창건 당시에는 연죽사(煙竹寺)라 불렸다가 고려 중기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이 중창한 뒤에는 영장사(靈藏寺)라 하였다. 그러
걸으며 세상을 보자남해에 살다보니 도시에 살 때와는 생활 형태가 많이 달라졌다. 아름다고 고즈넉한 남해의 자연풍광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고, 어디든 바다가 가까워 파도가 춤을 추는 넓은 해양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즐거움이 생겼다. 다만 교통 사정은 썩 불편하다. 도시와는 달리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운 진주시로 간다거나 옆 동네를 가려면 시외버스나 군내버스를 이용하는데, 배차 간격이 꽤 성글다. 출근시간 무렵이면 15분 간격으로 진주행 버스가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3, 40분 정도 터울이 난다. 군내버스
무엇으로 어머니를 대신할 수 있나?“신은 세상에 고루 존재할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자식의 오욕을 자신의 어떤 고통보다 크게 느끼며, 평생을 걱정과 기대 속에 살아가는 어머니.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어머니가 있어 훌륭하게 성장한 자식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듣는다. 그 숭고한 모성애(母性愛)가 있었기에 어쩌면 인류가 아직까지도 존속하는지 모르겠다.동서고금의 자식 사랑성현에게도 부모가 있어가장 큰 스승은 부모전지전능한 신과 유일하게 대체가능한 존재인
내가 사는 남해군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유기동물을 입양하라는 공고가 자주 눈에 띤다. 누군가 버렸거나 떠도는 동물을 군에서 포획해 보호하면서 애완동물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입양해 기르라는 뜻이다. 매주 거르지도 않고 공고가 나는 것을 보면 동물이 꽤 많이 버려지거나 방랑하는 모양이다.불교는 만물실유불성 근간마음수행의 방편으로도 활용짐승목숨·사람목숨 같아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다 알다시피 이렇게 잡힌 동물들은 일정 기간 입양하는 사람이 없으면 안락사를 시킨다. 얼마 전 어떤 동물보호협회 대표가 기부금을 받아 챙기고는 동물들을 대
잘 가르치는 일만큼 어려운 게 있을까?새해가 밝아 해맞이를 나간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삼월도 중순에 접어들었다. 세월이 유독 나에게만 빨리 흐를 리 없지만, 그래도 삼월이 오는 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따뜻하고 화사한 봄이 미소를 지으며 매화며 벚꽃, 목련이 지천으로 넘치는 철이 왔는데 뭐가 탐탁치 않냐고 물을 것이다. 왜 그런 화신(花信)이 반갑지 않겠는가? 다만 대학에서 강의가 시작되어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니, 그게 나로서는 큰 고역이다.침묵의 지혜 보인 부처님대기설법의 필요성 나와우리네 교육의 지향점살펴보면 남을 가르치
큰 스승이 부재하는 세상큰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내가 사는 남해에서는 정월 대보름이 오면 지신밟기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풍물패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한 해의 안녕과 건강, 풍년과 풍어를 비는 굿마당이 열린다. 작년부터 나는 ‘고현집들이굿놀음보존회’라는 모임에 들어가 풍물을 배우고 있다. 몇 달 동안 상모를 돌리고 상쇠의 꽹과리 소리에 맞춰 소고를 치면서 군무(群舞)를 펼치는 과정을 익혔다. 남해에서는 이런 일들을 ‘매구’라 부르는데, ‘매귀(埋鬼)’라는 한자어가 토박이말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출신·신분 제각각 불제자불교 교
질병만큼 큰 괴로움은 없다언제 사람은 나이가 들어 늙어버렸다고 느끼게 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이들이 성장해서 애인을 집에 데려오거나, 결혼식에 자신이 혼주로 참석하게 되면 세월의 흐름을 실감할 듯하다. 또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의 언덕이나 강가가 문득 떠올라 아련한 그리움에 메마른 미소가 스쳐도 그런 기분이 들 것 같다. 더 이상 맡을 역할이 없어져 퇴직하고, 임기가 차서 은퇴하는 처지가 되어도, 젊은 시절은 가뭇없이 지나버렸고 조락(凋落)의 시간만 내게 남았다고 여겨지겠다. 아내나 남편의 얼굴에 언젠가부터 주름살이 느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