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하나한밤중에 물구나무를 서본 적이 있나요?두 팔을 땅에 대고 거꾸로 몸을 세우는 물구나무, 구도자의 자세로 불릴 만큼 쉽지 않은 자세입니다.벽에다 다리를 기댄 후 차츰 발을 떼는 훈련을 하면서 꼿꼿하게 서보는 방법이 있는데 요즘은 동네마다 있는 생활체육 공원에 물구나무를 서게 하는 운동기구가 있어 쉽게 해볼 수 있습니다. 팔을 땅에 바로 붙이지는 못하지만 다리를 하늘을 향해 똑바로 세우고 얼굴을 땅바닥 가까이로 대는 이 자세는 의외로 몸과 뇌에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위하수 증세로 가끔 위통을 겪다가 의사의 조언에 따라 물구나무
그 계절이 또 왔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어도 마음이 움츠러드는 세밑. 달력의 마지막 장을 들추고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간 시간을 아쉬워하며 한 해를 매듭짓고 또 새로운 해를 맞아야 한다. 그날이 그날인데 그어놓은 금을 넘으면서 나이라는 숫자는 늘어가고 눈 밑의 잔주름도 몇 개는 늘겠지. 책상 위 다이어리나 수첩 한 귀퉁이, 아니라면 마음 한 구석에 새겨놓았을 2019년 정초의 계획은 몇 개나 완성되었을까. 이제 새로운 다짐으로 그 자리를 메워야 하는 건지 마음이 허허롭다.세월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질량과 부피의
60대 후반의 옥연씨, 최근 자꾸만 허무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따져보니 활기차게 살아 있을 날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슨 일이든 무의미하고 재미가 나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해왔다.- 그런 생각을 하신 지 얼마나 되었나요?- 올해 초, 아니 지난 해 초겨울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새벽이 눈이 떠지면 오늘 하루는 어떤 일이 있을까 기대도 하고 준비도 하고 했었는데 그 무렵부터 뭘 열심히 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얼마 안 남은 인생 같고.- 그 무렵 특별한 변화라고 할 만한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지
재래시장 쪽으로 산책 나간다는 삼식씨에게 지폐 한 장을 쥐어주며,- 포항초 있음 한 단 하고 숙주 한 봉 사 오슈. 남는 건 팁이오.아, 그 시장의 미나리 좋더라. 그것도 보이면 한 봉지 (사려면 돈 모자라겠네, 하려는데)- 야!! 이걸로 그거 다 사라고?- (갑작 얄미워져서) 모자라면 자기 돈 보태시든가.- 용돈이라고 쥐꼬리 만큼인데, 걸핏하면 장보러 가는 심부름 시키면서 삥까지 뜯는구먼. 빵 셔틀 시키는 일진이냐?- 그거 다 당신 입으로 들어가는 거요. 세 끼 챙겨주는 일진 봤소?하루 세끼 반찬 챙기는 게 다 누구 때문인데. 게
무더위 끝에 그나마 남은 기운을 쏙 빼고 정신을 사납게 뒤흔들고 간 광풍은 태풍 링링 탓만은 아니었다. 여름 내내 식탁의 화제를 달구고 모임을 소란하게 한 정치인의 자질에 대한 시시비비는 9월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장관 지명을 두고 적합하니 못하니 천 만 국민이 한 마디씩 말씨름을 벌이느라 친구끼리 돌아서고 가족이 대립했다. 한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사안의 무게로 보면 비교가 안 될 일인데도 몇 년 전 촛불집회와는 또 다른 반목과 갈등의 격랑이 모두를 지치게 했다.공감 얻으려면 경청부터 해야선한 호기심 상대호의 일으켜분별 떠
8월, 제주 한달살이를 하고 왔다.무더운 서울의 여름을 떠나고 싶던 차에 아홉 살 손녀에게 마당이 있는 시골집 생활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딸아이의 부탁이 있었다. 마침 지인이 한달살이를 위해 지은 제주 애월 납읍리의 시골집을 얻을 수 있었다.제주에 여러 번 머물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긴 기간 현 주민처럼 살아보긴 처음이었다. 여러 정보를 탐색하고 경험한 이의 도움말도 얻어 나름 준비를 많이 해간 셈이었는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제주 시골의 환경에 그대로 젖어들기만 하면 되었다.인생 성찰하는 자기만의 시간남은 생에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사내아이를 곧잘 이겨먹는 지은은 인기가 많아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는 동네 대장이었다. 그런 지은이 자신의 존재에 처음으로 불안을 느끼는 순간이 왔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전학생 미경이가 세련된 서울말씨와 옷차림으로 동네 아이들의 관심을 단박에 가져가버렸다.외모지상주의 사회서 현상무리한 다이어트로 고통받아본질·목표를 다시 생각해야“그 아이가 입은 원피스가 양품점에서 동이 났어요, 모두 그 아이를 따라하고 싶어 하는 거죠.”남자아이 뿐 아니라 여자 아이도 날씬하고 스타일이 좋은 친구를 동경하고 더
한국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기욤뮈소의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예순 살의 남자가 시간여행으로 서른 살의 자신을 만나서 평생 후회하는 과거의 한 순간을 바꾸는 이야기이다.시간과 사랑에 대한 이 소설은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하나의 선택이 초래하는 결과인생은 복잡한 인과의 실타래현재 머물며 계속 온힘 다하자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면서,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후회와 아쉬움을 느끼면서 살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은 더없이 무력
마흔 넘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 상담심리학 박사 과정에 있으면서 비정규직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52세의 난희 씨. 대기업 중간관리자인 남편은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월급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려 아내가 필요한 만큼 생활비와 학비를 대준다. 돈 걱정이 없는 그녀는 해외여행을 자주 하고 대형 승용차를 끌고 다닌다. 외동인 딸아이는 일찍 호주로 유학 보내 대학 재학 중으로 1년에 2-3개월은 호주에 머물다 온다. 경제수준으로 따지자면 상위 몇 %에 속하는 호강하는 팔자, 라고 할 수 있다.남편의 벌이에 의존한 여성자존감 회복의 기회 필요검
예순 살의 고개를 넘으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60갑자 한 바퀴가 그냥 먹는 세월이 아니다.일단 노년으로 진입하는 나이다. ‘요즘 예순은 아직 청춘이지’라고 해봤자 구차할 뿐. 사람에 따라 늙었다는 감정을 갖게 되는 시점이 다 다르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그래봤자 어쨌든 젊지 않다. 50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하철이 터널을 지나갈 때 창에 비치는 쇠락한 프로필을 보고 헉! 한다든지 술 마신 뒷날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정도라면, 60대가 되면 신체와 정신에서 전 방위로 노화가 본격 오고 있다는 느낌을 아니 사실을 알게 된다.몸의
모성만큼 뜨겁고 복잡하고 오색찬란한 사랑이 있을까.‘내 뱃속에서 나와서 내 손으로 키운 나의 일부’가 자식이니, ‘내 생명보다 소중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 라고 여긴다. 절대의 사랑은 상대에게는 한편으로 협박이고 구속이다. 원치 않아도 사랑이라서 받아들여야 한다니 얼마나 끔찍한 폭력인가.자식이 행복한 삶을 만들어나가기를 바라는 사랑과,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집착은 가깝게 붙어 있다.“다 지 잘되라고 그러는 거지”잘된다는 건 무엇이며 누거 그걸 판단하는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윽박지르고 원하지 않는 길을
부처님오신날의 가피가 온 누리에 가득한 5월의 산사에서 몇몇 불자들이 정담을 나누었다.학생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절에 다니기 시작해 지금은 불자모임을 이끌고 있는 신행생활 40년의 ㄱ씨.아침마다 어머니 독경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늘 부처님이 곁에 있다고 생각하며 저절로 불자가 된 40대의 ㄴ씨.마흔에 남편을 사별하고 부처님을 의지하며 3남1녀를 키운 어머니의 지극한 전법으로 지난해부터 절에 다니기 시작한 ㄷ씨.불교는 종교 이전에 철학이라며 불교 사상에 심취해 늘 질문을 달고 다니는 ㄹ씨.한국사찰의 아름다움에 빠져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