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부모와 자식 관계를 천륜이라고 하여 하늘이 내린 것이라 하였다. 이에 비해 불교에서는 ‘보은’의 개념으로 합리적인 관계로 인식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계실 때 비구들에게 “진보나 주옥, 산호를 부모의 몸에 달아드린다 해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부처님은 부모가 살생을 좋아하면 자식된 자는 간해서 그치게 하며, 악한 마음이 있으면 간해서 선을 염하게 하며, 어리석고 지력이 둔해 불법을 모르면 진리를 일러주며, 선악을 모르면 차례로 유순히 일러줄 것을 당부했다. 이는 단순한 봉양뿐만 아니라 진리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 효임을 밝힌 것이다. 이는 자식과 친척에 까지 확장돼 서로 경애할 뿐만 아니라 가르침과 계율을 지키는 것을 권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시
신행공유 가족간 결속 구심점 역할 마음수행공부 공동체 결성에 효과적 이웃종교 가정사목 성공 모델로 꼽혀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18세기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강성했던 로마의 쇠망 이유 중 첫 번째로 가정 붕괴를 꼽았다. 쾌락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하며 가정 규범을 무시하면서 모든 것이 연속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는 가정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이 가정이 붕괴되고 있다. 이혼율 OECD 국가 중 1위, 자살률 OECD 국가 중 1위, 아동학대 건수 13000여 건, 끊임없이 늘어나고 기생하는 향락 문화, 쾌락주의, 극도의 개인주의 등의 만연은 우리 사회의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나라 가정들은 서구화된 삶의 모습과 외환위기 같은 시대적 변화
전법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 ‘언론’ 해방 이후 매체 다변화 흐름 2000년대 인터넷 매체 폭발증가 “불교언론의 몫은 ‘힐링 매체’” 신문 방송 인터넷언론 등 매스 미디어의 급격한 발전으로 세계는 그야말로 한가족인 시대를 맞았다. 인간은 한시도 이러한 매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특히 스마트 미디어의 발달로 매순간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불교언론은 오래 전부터 변화를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불교 언론의 태동 사실 현대의 포교에 있어 불교의 가르침을 신문과 잡지, 라디오, TV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부처님께서 1250명의 제자들을 대상으로 설법한 경전의 표현보다 수백
어학 실력 있는 포교 인력 양성 ‘囊中之錐’ 법문의 수행자도 필요 종단이 운영하는 사찰 건립해야 일관성 있는 포교·수행 지원 가능 국내 외국인 대상 전법도 시급해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노력은 1960년대부터 선각자 스님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있어왔고, 세계 각국의 한국 사찰 건립으로 이어져왔다. 많은 노력이 있어왔지만 한국불교 세계화의 현주소는 밝지는 않다. 이에 대해 이종권 미주불교신문 편집장(조계종 국제포교사)는 “미주지역을 중심으로 봤을 경우 한국불교가 세계화를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고, 그 노력들이 효율적으로 진행됐는지를 성찰해야 한다”면서 “작금의 현실을 비춰볼 때 아직까지는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서구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아무
숭산 스님 등 해외포교 선구자 다수 세계 26개국에 韓 사찰 설립·운영 전통산사 등 세계유산 등재 추진 많은 노력에도 개신교 공세에 고전 한국불교 알리기와 재외 한인 포교 ‘두 마리 토끼’ 잡아야 세계화 완성 在獨 한인 포교, 세계화의 모범 사례 불교의 세계화는 ‘한국불교를 세계에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과제다. 세계화(Globalization)으로 대변되는 21세기의 화두는 한국불교에 당장 직면해 있다. 당장 한국세계선교협의회의 선교사 파송 보고에 따르면 이들이 파견한 선교사는 169개국 2만 3331명에 달한다.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세계화 시대에서 세계 속의 주력 종교로 남지 못한다면 도태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도심 불교 및 템플스테이가 폭 넓게 발전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명암도 반드시 있다. 도심의 대형 사찰을 제외하고는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사찰 활성화가 저조한 상황이며, 신도시 포교는 기독교에 잠식돼 거의 손을 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는 “신도시 지역에 거점사찰을 건립하는 것이 가장 일차적이고 효과적인 포교방법이다. 그러나 거점 사찰 건립에는 많은 돈이 투입 돼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소요된다”며 “이런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교문화원 등과 같은 소규모 시설을 바탕으로 지역조직을 활성화 시켜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종단 차원에서 포교발전방향을 수립해 모든 사찰이 도심 포교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열린선원장 법현 스님은 “대형 사찰의 신도
도심포교 문화·복지 불사 한글의례·템플스테이 등 성과 찬불가로 누구나 부처님 예찬 SNS 시대 맞은 포교론 대두도 요즘 시대는 급속한 발전을 거듭해 미래에 대한 예측이 어려울 정도가 됐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부처님 말씀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시시각각 고정됨 없이 변화하고 있다. 불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보·통신·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변화의 압력을 받아왔다. 불교에 ‘현대화’라는 개념이 도입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교의 현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불교의 ‘현대화’를 ‘불교를 어떻게 시대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로 정의 내린다 했을 때 불교는 활발하고 폭 넓은 발전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산중불교에 머물렀던 불교가 도심으로 내려와 대형 도심사찰들이
행불선원장 월호 스님은 한국사회의 불자들은 다수의 기복신앙인과 극소수의 참선수행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진단했다. 월호 스님은 “불교 사찰은 대부분 산중에 머물다보니 정기적인 교육보다는 일시적인 기도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며 “따라서 계율이 무엇인지 계율을 지키는 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월호 스님은 수행이 자비나눔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소수의 참선수행인 또한 현실을 떠난 수행에 집중하다보니 독경과 봉사활동에는 소홀해지기 쉽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웃종교에 비해 수행과 봉사활동을 적게 하는 불교계 현상에 대해서 배광식 국제포교사회 명예회장은 “한국불교라는 돌밭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천덕꾸러기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다.
염불·절·참선 등 정진하는 수행공동체 10년 새 급증 사회복지·자원봉사분야도 성장 ‘저변화’부족… 대책 마련해야 불교의 생활화는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니다. 부처님 법대로 일상생활 가운데 불법을 실천하고 사회가 가르침의 실천 도량이 되게 하는 것이다. 즉 가르침이 곧 생활도리이고 생활도리가 곧 가르침이 되게 하는 것이다. 불교의 생활화를 이렇게 정의 내린다면 우리는 지속적인 수행과 신행활동을 통해 나를 비우고 이웃과 나눔으로써 동체대비를 실현해야 한다. 하지만 불자들의 수행·나눔활동은 저조한 편이라 볼 수 있다. 한국불교의 수행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불자는 적고, 대부분 기복신앙에 머물고 있는 수준이다. 봉사도 일부 열성 신도 층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최근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에서 발표
부처님 법을 일상 속 실천하고 시대 맞게 대중들에게 전하며 세계 속 韓불교 우수성 알리기 ‘量’ 성장 이뤘지만 ‘質’은 미흡 불교 인구 정체… 30~40대 감소 지계·경학 않고 만족도 ‘최하’수준 ‘3化’ 다시 점검해 변화 이끌어야 한국불교가 현대적 형태의 종단을 형성하고 수행과 포교, 나눔 등의 사업을 추진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정화운동과 불교 내 분규와 개혁 등 적지 않은 질곡이 있었지만 반세기의 시간동안 불교는 꾸준한 발전을 이뤘다. 한국불교의 발전 양상을 분류하면 ‘불교의 생활화, 현대화, 세계화’로 나눌 수 있다. 일상 생활 속에서 부처님 법을 실천하려 했고, 전근대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뜻 있는 출·재가자들은 노력했다. 숭산 스님과 같은 선
한국불교의 전통은 ‘회통’ 인접학문과 합일점 찾아야 자기만족의 현실 타파하고 종단·학교서 장기적 지원 필요 불교 근본은 삶에 대한 천착 시대 언어로 불교를 말해야 진정한 ‘불교 인문학’ 완성돼 인문학 열풍은 한국 사회 저변에 퍼져 있다. 2000년 초반 인문학의 위기라는 비판과 우려가 무색해질 정도다. 이제는 각종 매체를 통해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고 불교계 상황도 비슷하다. 사실 불교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았었다. 새로운 시대의 인문학에서도 불교의 가능성과 입지는 분명하다. 이에 대해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는 “인문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성찰하는 학문이고 불교는 삶의 본질을 알아가는 데 있다”면서 “두
1994년 10월 15일 1호를 시작으로 독자분들의 관심과 애정속에 현대불교신문이 창간 2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으로치면 이제 성년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앞으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나고자 현대불교와 인연이 깊은 분들을 오랫만에 만났습니다. 따가운 질책부터 잘한다는 칭찬까지. 부끄럽지만 신문에 대한 주마가편으로 삼고자 그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신행문화에 변화 일으켜 10년간 논설위원하며 불교계 문제점 꼬집어 창간호부터 약 10년 동안 논설위원이었던 법산 스님. 그동안 참 재미있게 글을 썼다며 지난 시간을 더듬는다. 초대 논설위원에는 고은 시인도 함께였다. 서너명의 논설위원들이 종종 모임을 가지면서 의견도 교류하고 친목도 다졌다. 한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