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의 군사는 삼전도 들판에 자리를 잡았다. 조선의 군사들은 성문을 잠그고 군포지(軍?址ㆍ초소)에 올랐다. 궁을 버린 조선의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청의 군사는 산성을 포위했다. 47일 후, 조선의 임금 인조는 새벽바람에 삼전도에 나가 청 태종의 발아래 엎드려 백성을 내주었다. 병자호란. ‘남한산성 둘레길’이다. 사적 57호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최초로 토성이 구축됐다. 오늘날의 성곽 모습은 조선 인조 때 만들어졌다. 청량산(해발 500m)의 험준한 지형을 따라 쌓아올린 성곽의 둘레는 11km에 이른다. 이 가운데 본성은 9km이고, 나머지 2km는 옹성(甕城)이다. 성곽을 따라 걷는 둘레길은 5개의 구간으로 나눠져 있다. 성벽을 따라 걷는 남한산성 둘레길은 구간마다 길의 모양과 주변
사도세자의 릉인 융릉이 위치한 수원 화성에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수원을 조성한 정조의 효심이 깃들여 있다. 화성 성곽을 따라 있는 둘레길에는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정조로부터 수원성 축성의 명을 받은 이는 불교계와도 교우가 깊었던 젊은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었다. 당시 다산의 나이는 31세 였다. 젊은 학자의 젊은 사상은 이상적인 성곽을 만들어냈다. 당시 수원 화성의 조성은 사도세자 묘 이장을 주장한 보경 스님 등 불교계와 신진 사상가들의 힘이 모아졌다. 다산은 정조 18년인 1794년 성을 쌓기 시작해 2년 뒤인 1796년 이를 완성했다. 성곽 둘레는 5.7km로 성인 걸음으로 한 바퀴 도는데 2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옛 멋과 현대미 깃든 도심 속 성곽
‘묘적사 계곡길’. 마을버스에서 내리자 표지판이 보였다. 집배원의 빨간 오토바이가 묘적사 계곡으로 향한다. 보낸 사람의 이름과 그 이름이 부탁한 누군가의 주소를 싣고 오토바이가 길을 오른다. 오토바이가 사라진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 길엔 이름처럼 묘적사가 있었다. 11월 20일 걸었다. 경기도 남양주의 묘적사 계곡길은 둘레길로 명명된 ‘걷기’ 길은 아니다. 약 1km 정도 계곡을 따라 오르면 묘적사가 나오는데, 본격적인 묘적사 계곡은 묘적사부터다. 중앙선 덕소역에서 60번 마을버스를 타면 묘적사 계곡길 입구에서 내릴 수 있다. 종점이다. 묘적사까지는 거의 포장된 길이다. 경사가 있지만 힘들지 않다. 갈색의 잔엽(殘葉)을 달고 햇살 쪽으로 기운 메타세쿼이아들이 길을 안내한다. 그 숲에서 태어난 바람
“가을이 우리를 사랑하는 기다란 잎새 위에 / 보릿단 속 생쥐 위에도 머뭅니다 / 머리 위 마가목 잎이 노랗게 물들고 / 이슬 젖은 산딸기 잎새도 노랗습니다. / 사랑이 이울어 가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 슬픈 우리 영혼은 지금 피곤하고 지쳐 있습니다 / 헤어집시다.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 그대 숙인 이마에 입맞춤과 눈물을 남기며” 북한산 둘레길 2구간 ‘순례길’에 들어서면 작은 안내판에 예이츠의 시 ‘낙엽은 떨어지고’가 쓰여 있다. 그리고 길은 ‘낙엽’뿐이다. 11월 7일 그 길을 걸었다. 북한산 둘레길 2구간 ‘순례길’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 솔밭근린공원에서 시작해서 이준 열사 묘역 입구까지 걷는 2.3km의 길로, 모두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이다. 순례길은
가을꽃과 봄꽃은 분명 달랐다. 봄꽃은 햇살 속에서 보았고, 가을꽃은 바람 속에서 본다. 봄꽃은 이름을 불렀고, 가을꽃은 이름을 찾아야 한다. 봄꽃은 피어났고, 가을꽃은 나타났다. 철새처럼 나타난 가을꽃들이 길을 알리고 있다. 10월 15일 북한산 둘레길 21구간 우이령길을 걸었다. 그 길엔 쉽게 갈 수 없는 절, 석굴암이 있다. 우이령(소귀고개)길은 교현탐방지원센터에서 우이탐방지원센터까지 걷는 길로 총 길이는 6.8km이고 모두 걷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시간 30분이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1번 출구)에서 버스 34번, 704번을 타고 석굴암 입구에서 내리면 길을 시작할 수 있다. 우이령길은 1968년 북한무장공비의 청와대 침투사건으로 인해 민간인의 출입이 전면 금지 되었다가 2
조망 좋고 걷기 편한 옛성길 한 걸음 안에 도심과 숲길 있어 대강백이 손수 낸 각황사 오솔길 “지혜란 물 건널 때 배를 타는 것” 한 해 중 가장 밝았던 저녁이 지나고, 지키며 견뎌야 하는 새로운 계절의 문턱에 선다. 영혼이 육신을 필요로 하듯 자연은 계절에 깃들어 있고, 영원한 육신이 없듯 자연은 새로운 계절에 깃들어 간다. 푸른 잎들이 푸른 과거를 놓고, 흙이 메운 곳엔 가을꽃이 돋아 있다. 폐부 끝까지 파고드는 대기와 망막의 구석구석을 걷어 젖히는 푸른 하늘을 대신할 말을 찾을 수 없다. 가을이다. 한가위 다음날인 10월 1일 북한산 둘레길 7구간인 옛성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각황사를 만났다. 옛성길은 탕춘대성 암문 입구에서 북한산 생태공원 상단까지 걷는 약 2
개울길, 아스팔트길 다양한 길 걸어 내시묘역, 여기소터 등 사연 있는 길 찬비 지나간 자리에 코스모스 피네 태풍이 연이어 지나갔다. 많은 것들이 망가졌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집이 망가졌고, 길이 망가졌다. 집을 잃은 사람들이 길을 잃었다. 태풍은 지나갔다. 크고 작은 상처들이 위로를 기다리는 시간.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차가운 비가 내렸고, 차가운 비가 지나간 자리엔 코스모스가 피었다. 위로는 그런 것이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비가 내리고, 비 내린 자리에 가을꽃이 피는. 우리 삶에 위로란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 그 것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차가워진 길을 걷는 것뿐이었다. 북한산 둘레길 10구간 내시묘역길이다. 그리고 그길 옆에는 흥국사가 있다. 은평구 진관동
오르는 길 곳곳 북한산 바위 기상이 도선사 마애불서 절로 고개 숙여져 산 길은 인적이 드물어 길을 걷기를 주저하게 만들지만 일단 길에 들어서면 바람과 새소리, 녹음이 길을 걷게 해준다. 북한산 둘레길 ‘소나무숲길’과 연결된 도선사 오르는 길이다. 9월 11일, 우이동에서부터 소나무숲길을 거쳐 도선사까지 이어진 길에서는 초가을의 정취가 느껴졌다. 북한산 계곡 사이사이에 가을을 알리는 서늘한 기운이 물을 타고 내려왔다. 소나무 숲길 시작점부터 도선사까지는 4km 남짓, 2시간 가량이 걸린다. 소나무숲길은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500m 떨어진 곳에서 시작한다.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는 오후임에도 원색의 등산복 차림의 승객들이 삼삼오오 북한산을 향해 분주히 움직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청화 스님의 법향 서린 광륜사 한 폭의 황금빛 그림 능원사 고은의 시 한 수 생각나는 도봉사 ? 계절이 변하고 있다. 하늘은 하늘 위에 하늘을 쌓고, 바람은 어느새 옷깃을 파고든다. 들어선 숲길의 그늘 위에서 더운 발자국이 식고, 숲을 채우고 있는 푸른 잎들의 대형은 차가운 하늘에 흐르는 철새의 군무를 닮아가고 있다. 북한산 둘레길 18구간 ‘도봉옛길’이다. 도봉1동 340번지 다락원에서 시작해서 도봉동 무수골까지 걷는 길이다. 다락원은 조선시대 여행하는 관원을 위한 원(院)이었는데 원집이 다락으로 되었던 것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무수(無愁)골은 세종이 다녀가면서 붙인 이름으로, 물 좋고 풍광이 좋아 근심이 없는 곳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거리는 3.1km이며, 보통
‘멋’ 느낄 수 있는 보기 드문 자연경관 옥천암 고려 마애불상 눈길 끌어 북한산 자락엔 많은 사찰들이 곳곳에 있어 몸과 마음을 쉬면서 걷는 즐거움이 있다. 북한산 둘레길 6구간 ‘평창 마을길’을 걸었다. 이중 부촌으로 알려진 평창동에는 특유의 운치를 즐길 수 있는 길이 있다. 흔히 평창동은 ‘부촌’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서울에서 보기 드문 자연경관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산자락에 기댄 저택들을 조금만 벗어나면 등산객들과 카페나 미술관 등을 만날 수 있다. 북한산 자락 경관 좋은 곳에 저택들의 모습은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동네가 실제로 존재함을 보여 준다. 높은 담장,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그러면서도 경관 좋은 집들의 모습은 일반인들이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다. ‘평창마을길’은 사찰과 산,
봉산. 서울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 사이에 위치한 해발 207m의 산이다. 능선을 따라 걷는 약 6.6km의 숲길은 서울시가 지정한 명품숲길 중의 하나다. 고도가 그리 높지 않지만 북한산의 지맥이 흐르는 봉산의 숲길엔 소나무와 잣나무를 비롯한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득하다. 코스는 서울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시작해서 수국사를 거쳐 구산역까지 걷는 방법과 역으로 걷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길의 시작과 끝에 황금사찰이라 불리는 수국사가 있다. 세조가 부모의 마음으로 지은 절 1992년 개금불사해 ‘황금사찰’로 불려 ? ‘그리 높지 않은 산’은 없었다. 바라보는 산과 올라야 하는 산은 달랐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출발했다. 5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변전소가 나온
조금 힘든 길이다. 지난번 회룡사를 가기 위해 걸으려 했던 북한산 둘레길 16구간 보루길을 회룡탐방지원센터 쪽에서 걸으면 종착점인 원도봉입구에서 포대능선 가는 길과 만난다. 포대능선길에는 망월사가 있다. 원도봉입구에서 망월사까지는 약 1.5km다. 빠른 걸음으로 1시간 정도 걸린다. 보루길을 걷고 다시 포대능선 길을 걷는다면 다소 힘든 코스다. 원도봉입구에서부터 망월사까지 걸었다. 보루길과 포대능선길이 만나는 원도봉입구까지는 서울 지하철 1호선 망월사역에서 내려서 신흥대학 방면으로 나온다. 거기서부터 망월사 방면으로 약 500m 정도 걸으면 된다. 보루길과 포대능선길이 만나는 지점엔 원각사가 있다. 거기서 보루길을 다시 걸을 수도 있고 포대능선길을 걸을 수도 있다. 원각사에서부터
무학대사 손수 관음보살 모시고 개국염원하는 이성계 위해 기도 김구 머물던 석굴암엔 총성과 들꽃이 갈림길이다. 두 개의 이정표 사이에 섰다. 누군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아름다운 길을 남겨두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길을 가기로 했다. 아름답게 남은 길은 북한산 둘레길의 16구간 ‘보루길’이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길은 사패능선길이다. 숲 앞에 섰다. 모든 산들이 다자란 아이 같다. 신록을 기다리던 때가 얼마 안 되었는데, 언제 저렇게 숲이 되었을까. 생사(生死)가 산 아래 지붕 밑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보루길’과 ‘사패능선길’이 한 곳에서 시작된다. 의정부시 회룡탐방지원센터에서 200m 지난 곳에서 보루길이 시작된다. 보루길 시작점에서 사패능선길과 갈라진다. 회룡
‘길’도 운명이 있을까. 숲을 가지고 태어난 길이 있고, 하늘을 가지고 태어난 길이 있고, 강물을 가지고 태어난 길이 있고, 도량을 가지고 태어난 길이 있고, 그렇게 길이 놓인 곳엔 길을 따라온 것들이 있다.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길을 적시고 있다. 길은 ‘마실길’이란 이름이 붙은 북한산 둘레길(9구간)이다. 마실길은 진관생태다리에서 방패교육대까지의 길로 전체 거리가 1.5km인 북한산 둘레길 구간 중 가장 짧은 길이다. 왠지 이 짤막한 길이 운명이란 말을 떠오르게 한다. 마실길은 8구간 구름정원길이 끝나는 진관생태다리에서 시작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진관동 하나고등학교(진관사 입구)까지 간다. 하나고등학교에서 약 200m 거리에 사회복지법인 인덕원이 있고 건너편에 진관생태다리가 있다. 마실길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여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 그 생동감 자체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 북한산 둘레길은 번잡한 도심에서 가까운 싱그러운 초록의 호젓함이 남아있는 곳이다. 몸의 감각을 열고 호젓한 둘레길을 걸으며 숨을 가다듬다 보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됨은 물론이다. 북한산 둘레길 3구간은 흰구름길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거리 상으로는 4.1km. 먼 거리는 아니지만 막상 걸어보면 ‘아! 등산하는 분위기인데?’라는 생각이 든다. 둘레길을 오르다보면 서울 아래가 한눈에 들어온다. 흰구름이란 명칭이 이 때문에 붙어있음이랴. 600년 한양 도읍지를 품에 안고 펼쳐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서울의 옛이야기도 돌아볼 수 있다. 흰구름길이 시작되는 이준열사묘역 입구는 수
우리나라 오악(五嶽)의 하나인 북한산은 서울을 품고 있는 산이다. 아니 서울이 안겨 있는 산이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4분의 1인 천 만이 낮과 밤을 허물고 치열하게 살고 있는 서울. 물기 없는 도시에 물을 대고, 인정 없는 도시에 숨을 대고 있었으니, 그것은 녹색의 ‘자연’이고 서울의 ‘녹색’은 북한산이다. 또한 그 수학책 같은 도시 저편에 음악책과 미술책을 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다. 서울의 수원(水原)이자 기원(氣原)인 북한산에 둘레길이 들어섰다. 지난 2011년 6월에 총 21가지 테마를 가진 둘레길이 완성됐다. 그 중 ‘명상길’이란 이름이 붙은 5구간을 걸었다. 5구간은 4구간인 ‘솔샘길’이 끝나는 정릉주차장에서 형제봉까지의 길로 약 2.4km이고 걷는 데 걸리는 시간
소가 누워 쉬는 우면산, 도시인 쉼터돼 보우 스님 불교중흥 꿈꾼 대성사 풍광 으뜸 둘레길 왕이 행차한 남태령까지 이어져 강남의 회색 건물들 사이에 오아시스와 같은 푸른 숲이 펼쳐진다. 우면산(牛眠山)이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선바위역까지 넓게 자리한 우면산은 해발 293m의 낮은 산으로 서초구와 과천시 경계에 있다. 산세가 소가 누워서 쉬고 있는 모양이라 우면(牛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우면산은 서초구 방배동ㆍ서초동ㆍ우면동, 강남구 개포동ㆍ도곡동ㆍ양재동, 과천동 등의 뒷산으로 지역주민들과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4월 18일 찾은 우면산에는 2011년 7월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둘레길 곳곳에는 여름이 오기 전 산세를 복구하기 위한 중장비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걷지 않기 시작했다. 문명의 이기가 걷기를 줄이고 세상과 세상을 좁혔다. 알아야 할 것, 해야 할 것이 많아졌고 걷지 않는 만큼 삶의 속도가 빨라졌다. 그 빠름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졌고, 그로 인해 사색의 시간이 점점 줄고 있다. 주어진 세상의 속도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속도를 잠시 늦춰보는 일도 의미 있지 않을까? 그런의미에서 다시 천천히 걷는 일을 생각해 본다. 잃었던 예전의 속도를 되찾고, 늦춰진 속도로 보아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보기 위해 길을 찾아본다. 이미 제주도의 올레길이 ‘걷기’와 ‘길’을 일으켰다. 절이 담긴 둘레길과 절과 절을 잇는 길을 찾아 ‘걷기’와 ‘길’을 함께 시작한다. 첫 번째로 경남 하동 쌍계사 십리 벚꽃길을 찾았다. 그 길에는 쌍계사와 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