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위용의 三門 ‘눈길’ 초조대장경 521종 보관돼 ‘철학의 길’ 한번 걸어보길 교토의 난젠지(南禪寺)는 수많은 교토 선종 사찰 중 으뜸으로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20m는 족히 될 듯한 거대한 산몬(三門)을 비롯해 국보로 지정된 방장(方丈), 카레이산스이 정원 등 유독 볼거리가 많은 사찰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원은 막강한 권력을 지닌 다이묘(大名)이자 뛰어난 다인(茶人)이었던 고보리 엔슈(小堀遠州)가 심미안을 한껏 발휘해 만들어 더욱 유명하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보광 스님의 저서 에는 난젠지 개창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불교에 대한 독실한 신심을 가진 가메야마(龜山) 천황은 교토 동쪽에 있던 자신의 별궁을 사원으로 만들겠다고 발원했다.
日 진언종 본산 곤고부지서 구카이 스님 발자취 느껴 20만기 무덤있는 오쿠노인 전나무 숲길 걸으며 ‘힐링’ 고야산은 과거 7000개 이상의 사원이 존재했다.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원이었고 불교도의 성지였다. 현재 고야산에는 진언종 총본산인 곤고부지(金剛峯寺)를 비롯해 117개의 사찰이 상존한다. 곤고부지는 진언종의 시조인 홍법대사 구카이 스님이 포교 활동의 거점으로 삼은 사찰이다. 그런 이유로 곤고부지는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곤고부지라는 명칭은 구카이 스님이 불경에 나오는 ‘금강봉루각일절유가유기경(金剛峯?閣一切瑜伽瑜祇經)’라는 대목에서 따온 것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곤고부지는 원래는 고야산(高野山) 전체를 일컫는 명칭이기도 했다. 하지만 1869년
구카이의 진언종 개창 성지 日서 가장 종교색 짙은 곳 시코쿠 순례 前後 찾아와 안녕과 원만 회향 기원해 일본 나라와 교토에는 불교 뿐만 아니라 신도, 토착 종교, 도교 등에 걸친 영험한 성지가 곳곳에 존재한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기이산지의 영지와 참배길(紀伊山地の靈場と參詣道)’이다. 요시노/오미네·구마노산잔·고야산 3곳의 영지(靈地)와 나라와 교토에서 이어지는 참배길을 말하는 이 유산은 일본 종교와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아직도 전국에서 많은 참배객과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3곳의 영지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요시노/오미네(吉野/大峯)’는 기이산의 북쪽 끝에 있으며, 슈겐도(修驗道)의 본산으로 관련 사원과
쇼토쿠 태자 7대 도량 중 하나 종파 구애 않는 日불교 총본산 區가 곧 사찰… 교육·복지 총력 “‘와(和)’을 귀하게 여겨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하라. 사람들은 각자 자기 생각이 있지만 현명한 자는 적다. 이에 임금을 따르지 않고 이웃과 다툰다. 만약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화합하여 의좋게 지내고, 시시비비를 가려 합의한다면 도리는 저절로 통하리라. 그렇게 되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 쇼토쿠 태자가 제정한 17조 헌법 중 일부이다. 쇼토쿠 태자는 불교를 통해 일본의 초기 국가 체제를 완성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 그의 17조 헌법에는 삼보를 공경할 것을 명하고 선악의 도리로 불교를 채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쇼토쿠 태자는 17조 헌법을 통해 일본 사회를
16m 청동대불 위용에 감탄 경내의 삼월당은 숨겨진 보물 행기 스님 삶은 불자의 귀감 도다이지, 일명 동대사(東大寺)는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사찰이다. 나라를 찾으면 꼭 들리는 관광 코스이기도 하거니와 실제 이곳 저곳에 볼 거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도다이지를 보고 “이곳을 들리지 않으면 나라에 다녀왔다 할 수 없다. 마치 불국사를 보지 않고 경주를 다녀왔다고 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6.2m의 세계 최대 청동대불과 수많은 전각뿐만 아니라 도다이지에서는 천 마리의 사슴이 거닐고 있다. 도다이지를 찾는 순례객을 처음 맞아주는 것은 바로 사슴이다. 사슴들은 경내를 유유히 걸으면서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먹고 때로는 먹이를 줄 것을 종용한다. 표
韓 사천왕사와 비슷한 쌍탑 구조 원형 간직한 동탑, 현재 보수 중 국보 약사 삼존상 장엄함 눈길 요즘 한국 대중문화는 아이돌이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본 역시 일찍이 아이돌 문화가 자리 잡은 곳이다. 대형 아이돌 걸그룹의 효시 ‘모닝구무스메’로 시작해 ‘AKB48’까지 그 수와 층위도 다양하다. 총 48명의 소녀들로 구성된 ‘AKB48’은 현재 일본 국민 걸그룹으로 그 인기는 한국의 ‘소녀시대’와 비할만 하다.? 여기서 한 가지 상상을 해보자. 당대 최고의 아이돌들이 사찰의 법당 신축 법회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처님께 헌정하는 콘서트를 개최한다면? 실제 이런 일이 일본 나라 야쿠시지(藥師寺)에서는 있었다. 나라 천도 1300주년을 맞았던 2010년 야
쇼토쿠 태자가 발원 건립한 일본 현존 最古 목조 건축물 장엄한 백제관음엔 탄성만이 일본어로 ‘백제’는 ‘쿠다라(くだら)’라고 읽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특유의 한문 음훈이 ‘백제’라는 단어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음훈을 붙이는지 제대로 설명하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 다만 추청만을 해볼 뿐이다.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한 동국대 선학과 교수 보광 스님은 사견으로 “나라를 ‘나량(奈良)’이라고 쓰지만 이들은 ‘나라’로 발음한다”면서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백제가 ‘큰 나라’였을테니 이 말이 변용돼 ‘쿠다라’라고 읽고 있는 것으로 추청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관서 지방의 나라는 710년에서 784년까지 일본의 수도였고, 백제로부터 불교를 최초로 전파
임제종 본산 1위 사찰 공고히 무소 소세키 스님이 조성한 지천회유식 조원지 정원 눈길 1464년 오닌(應仁)의 난은 쇼군의 후계자를 둘러싸고 슈고 다이묘들의 대립이 얽히면서 11년간이나 지속된 내란이다. 무로마치 시대 가장 강력한 쇼군이었던 요시미츠가 죽은 후, 슈고 다이묘의 힘은 쇼군의 힘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쇼군과 다이묘의 대립, 오닌의 난은 하극상의 전국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 11년의 전란으로 천년 고도(古都) 교토는 황폐해졌으며, 막부의 건물은 물론 텐류지(天龍寺) 등과 같은 사찰들은 잿더미가 됐다. 그로부터 450년이 지난 현재, 텐류지 일원은 완연한 관광지이다. 아라시야마(嵐山)의 대나무 숲, 도롯코 열차를 이용하기 위해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15개 돌과 모래, 이끼 등으로 삼라만상 표현…日 정원의 진수 ? 모래 위 하얀 자갈이 물결무늬를 짓는다. 그 위에는 돌이 무리를 지어 함께 또는 따로 배치돼 있다. 그 앞에서 있는 사람들은 말이 없다. 오로지 돌과 자갈, 이끼 그리고 벽담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풍광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비어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 채워진 듯 하다. 오로지 이 공간에는 돌과 자갈과 모래가 만들어내는 자연 풍광과 내가 있을 뿐이다. 자연을 압축해 조형한 일본의 정원. 이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색에 잠기게 된다. 어떤 이들은 압축된 자연에서 선의 묘미를 찾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정원 양식에 대한 탐구를 한 번쯤은 하게 만든다. 실제 일본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장군의 별장을 선종 사찰로 미시마 유키오 소설 더욱 유명세… 日 탐미주의 절정 “내일이야말로 금각이 불타리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형태가 사라지리라. 그 순간 꼭대기의 봉황은 불사조처럼 되살아 날아가리라. 그리고 형태에 속박돼 있던 금각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닻에서 벗어나 도처에 모습을 나타내어, 호수 위에도, 어두운 바다의 조수 위에도, 희미한 빛을 흩뿌리며 자유로이 떠돌아다니겠지.” (미시마 유키오 中)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 ~ 1970)는 20세기 일본 문단의 최고 문제아였다. 자기 소멸에 이르는 극단적 유미주의부터 동성애자, 극우주의자, 전공투 학생들과의 맞장 토론, 공개적인 할복까지 그는 전 생애 거쳐 항상 문제의 중심에서
한국산 적송으로 만들어진 일본 국보 ‘미륵반가사유상’ 철학자 야스퍼스도 극찬한 한일 불교 교류의 정점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일본을 방문해 교토의 고찰인 광륭사(廣隆寺)에 들르게 된다. 그곳에서 야스퍼스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사유에 대한 표현이 담긴 예술품을 목도한다. 그리고는 이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이것은 지상의 모든 시간적인 것, 속박을 넘어 달관한 인간 존재의 가장 정화된, 가장 원만한, 가장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불상은 우리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영원한 평화와 이상을 실로 아낌없이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벽안의 서양 철학자마저도 절창을 하게 만
장수 등 기원하는 세 물줄기 이 물을 마시러 참배객 몰려 본당 등 전각, 빼어난 건축미 일본의 교토는 794년 간무천왕이 수도로 정한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3년 도쿄로 수도를 옮기기 까지 약 천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그래서 일본의 교토지역 사람들은 다른 도시 사람보다 자부심과 긍지가 엄청나다. 실제 교토 토박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최소 삼대(三代)가 교토에서 거주했어야 할 정도다. 그만큼 교토에는 고찰이 많고, 그 중에는 미적,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도 적지 않다. 교토의 청수사(淸水寺)가 바로 그런 곳이다. 청수사는 서기 780년경 엔친대사(延鎭上人)가 꿈속에서 맑은 물을 찾아가라는 현몽을 꾸고 이를 찾아 헤매이다
33개 기둥 세워진 사찰 본당 1001체의 천수관음보살 조성 한량없는 자비심 일깨우는 듯 1001. 바로 일본 교토의 유명 고찰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에 모셔진 목조 관세음보살상의 개수다. 교토국립박물관 건너편에는 ‘산주산겐도’는 말 그대로 본당 건물의 정면 기둥이 33개로 이뤄진 것에서 유래됐다. 본당의 길이만 118m에 달하는 이 사찰의 본래 이름은 ‘렌게오인(蓮華王院)’이지만 33개의 기둥으로 이뤄진 본당 건물이 유명해 ‘산주산겐도’로 부르고 있다. 1164년에 고시라가와(後白河) 법황이 1001체의 관음상을 안치하기 위해 세운 것이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13세기 중엽에 재건된 것이다. 무엇보다 ‘산주산겐도’의 가장 압권은 본당 안의 1001체의 천수천안 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