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해발 804m 높이의 화강암 암벽으로 예로부터 백운대, 만경대와 함께 삼각산이라 불려왔다. 인수봉을 부아악(負兒岳)이라고도 불렀는데 큰 바위 옆에 또 다른 바위가 덧붙어 마치 아기를 업은 어머니와 같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인수봉이라는 이름은 논어의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지자락수 인자락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 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백운대·만경대와 ‘삼각산’으로 불려 ‘인수봉’ 논어의 ‘지지락수…’에서 비롯 仙人 품은 인수봉 인(仁) 완성하여 지고지선(至高至善) 펼칠 성인 기다려 선인(仙人)을 품은 인수봉은 인(仁)을 완성하여 지고지선(至高至善)을 세상에 펼칠 성인을 돕기 위해 깊은 수련에 들어갔다. 인수봉이 처음 시작한 수련은
형제봉 능선에 있는 두 개의 봉우리로 큰 봉우리의 높이는 해발 463m, 작은 봉우리는 해발 641m로 기록되어 있다. 보현봉의 지맥으로 성북구 정릉동과 종로구 평창동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일부 등산 안내서에 이름의 유래와 시원을 알 수 없다고 풀이했는데 이는 오류이다. 〈숙종실록〉 49권, 〈정조실록〉 47권에도 형제봉이라는 이름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름의 유래에는 온조, 비류 형제가 나라 터를 잡기 위해 올랐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학자들도 부정하는 견해이며, 양명학의 학풍과 도가적 술법을 계승한 정길준 형제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형제봉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단순히 산의 모양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마주한 두 봉우리가 형제처럼 우애롭게 보인다하여 그렇게 불렀을 것이며 이러한 이름은 전국에
수태 스님 지은 ‘승가사’에서 유래 승가사는 승가 스님 친견한 곳 비봉능선의 사모바위와 문수봉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높이는 해발 567m이다. 이름은 산 아래쪽에 있는 절, 승가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지〉‘사실’편에 “문수봉에서 한 가지가 서쪽으로 뻗어나가 칠성봉이 되고 …〈중략〉 또 다른 한 가지는 서쪽으로 달려가면서 승가봉, 향림사 후봉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동국여지비고〉의 〈삼각산기〉에도 이와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신라 경덕왕 때 수태 스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에 전념했다. 그러나 삼십년이 지나도 자신한테 그런 힘이 생기지 않자 낙담하여 고향인 삼각산 아래 구기리로 왔다. 출가한 지 40년, 고향집에는
칼바위능선의 봉우리로 성북구 정릉동에 속해 있다. 〈북한지〉에 “동문 밖 청수동 위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에서 ‘동문’은 지금의 대동문을, ‘청수동’은 현 정릉부근의 청수장 일대 계곡을 말하는 것이다. 대동문 밖이라 하였으므로 석가봉은 속칭 칼바위능선의 정상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 보국문 자리를 예로부터 석가고개라 불러왔는데 북한산성 축성 후 봉우리들의 이름을 새로 지으면서 석가고개에서 가장 가까운 현 칼바위능선 정상에 붙인 이름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실록 9년 기록에도 이름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다. 석가봉은 부처님이 계시는 봉우리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칼바위능선 아래 작은 초막을 짓고 사는 불망 스님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스님이 고구려에서 왔다고 해서 고구려 스님이
향로봉은 북한산의 족두리봉과 비봉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북한산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봉우리 모양이 향로처럼 생겨서 향로봉이라 불린다고도 하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고려시대에 융성했던 절, 향림사의 뒷봉우리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구파발 방면에서 보면 사람 옆모습을 닮았다 하여 인두봉이라고도 하고,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하여 삼지봉이라고도 한다. 안녕? 난 향로봉 소나무. 500년을 살았어. 500년을 살았다고 하니까 내가 무척이나 클 것 같지만, 미안, 난 그렇게 크지 않아. 다른 소나무들과 비슷하지. 왜냐구? 그게 바로 나의 장수비결이야. 너무 크지 않는 것. 그래야 마구 베어가는 사람들한테서 나를 지킬 수 있지. 이런 지혜는 할아버지한테 배웠어. 아버지는 200살밖에 못 사셨어.
원효, 불법 널리 펴기 위해 전국의 상서로운 기운 갖은 곳 찾아 민중불교·불국토 서원 세우며 정진한 곳 원효봉은 해발 505m의 봉우리로 경기도 고양시에 속한다. 원효대사가 수행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북한산 국립공원 주차장에서 또는 북한산 아래서 원효봉을 이루는 산을 올려다보면, 부처님이 앉아계신 모습이 보인다. 그 위로 원효봉의 봉우리는 닫집처럼 지붕을 이루었고, 아래쪽으로 치마바위는 좌대를 형성하였다. 치마바위는 원래 원효암 여산신(女山神)의 치마였는데, 이것으로 자리를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하여 연화좌(蓮華座)를 이루었다고 한다. 연화좌는 연꽃모양의 대좌로 연화대라고도 불리며, 불·보살의 앉는 자리를 가리킨다. 걸음을 멈추고 길 가에 앉아 쉬고 있던 원효 스님은 고개를 들어 먼 산을
원효가 당에 있는 의상 위해 마련 의상 삼매 들어 당에서 건너와 의상봉은 해발 502m로 고양시 덕양구에 속한다. 의상대사가 머물렀던 곳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성능대사의 〈북한지〉에는 의상봉이라는 이름이 별도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용출봉 서쪽에 있다는 미륵봉이 의상봉임을 나타내고 있어, 미륵봉과 의상봉이라는 이름이 혼용된 것으로 보인다. 의상봉 아래에 있는 국녕사에서 의상대사가 참선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국녕사는 북한산성 축성 후 총 86칸에 이르는 큰 규모의 승영사찰로 창건되었는데 사찰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사명당 유정이 수도를 하던 터로 추정된다. 창건 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991년 화재로 모두 불에 탄 것을 능인선원에서 중창하였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의상봉과 원효봉
탄연 스님 창건 문수암에서 유래 동자 따라간 동굴서 문수보살 친견 동굴 옆에 지은 문수암 3대 문수성지 문수봉은 의상봉에서 시작하는 의상봉능선의 마지막 봉우리로 높이는 727미터이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속한다. 봉우리 북쪽 자락의 청수동암문에서 의상봉능선, 산성주능선, 그리고 비봉능선이 만난다. 봉우리 위에 있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 등에 걸터앉아 기도하면 지혜로운 자녀가 태어난다는 전설이 전한다. 문수봉은 고려 시대에 탄연(坦然) 스님이 창건한 문수암(문수사)에서 명칭이 유래한다. 탄연 스님의 속성은 손(孫), 호는 묵암(默庵), 시호는 대감국사(大鑑國師)이다. 스님은 고려 문종 24년(1070)에 밀양에서 태어나, 19세에 개성 광명사의 혜소(慧炤) 스님에게 사사하여 그의 법을
문수봉·비봉과 함께 남쪽 주봉 조망 뛰어나 사대문 안 한 눈에 도선국사 창건 ‘보현사’에서 유래 중종때 보현보살께 기우제 지내던 곳 보현봉은 북한산 대남문 밖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높이는 714m이다.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에 속한다. 보현봉은 문수봉, 비봉과 함께 북한산 남쪽의 주봉을 형성한다. 보현봉은 북한산 봉우리 중에서도 조망이 뛰어나서 북악산과 인왕산 너머 서울 사대문 안 중심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세조도 이곳에 올라 천문 관측을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보현봉이 기가 센 곳이라는 소문이 나서 종교인과 무속인의 왕래가 잦자,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산림 보호를 위하여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보현봉은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보현사(지금의 일선사)에서 명칭
원효와 의상의 보살핌으로 살아난 새 은혜 갚으며 시봉하다 성불해 시자봉은 염초봉과 백운대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시자가 사모를 쓰고 백운대를 향하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원효봉 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 시자봉은 경기도 고양시에 속하고 해발 712m의 가파른 암봉이다. ‘시자’라는 이름에 착안하여 근처의 원효봉, 의상봉과 연관지어 이야기를 만들었다. 원효와 의상의 은혜를 입은 새가 두 분을 시봉하다가 원을 이루고 봉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저는 시자봉 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냐구요? 궁금하시다면 제 소개를 좀 올릴게요.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래봬도 저는 성불한 것 같아요. 부처님처럼 크게 깨우친 성불 말고, 제가 간절히 바라던 원대로 이루어진 것도 성불이
‘만경’은 만상을 비추는 ‘해인’의 뜻 거울이 되어 산 아래 세상 보여줘 해발 800m. 봉우리들이 보는 방향에 따라 만 가지 풍경으로 보이기 때문에 만경대라 부르며, 국망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만경은 불교에서 만상(萬象)을 비추는 해인(海印)의 의미로 쓰인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새로운 왕조를 건설할 도읍지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성계의 부탁을 받은 무학대사는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진 계룡산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막상 가서 지세와 산세를 살펴보니 새로운 왕조의 도읍지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무학대사는 다시 발길을 돌려 한강유역으로 올라 왔다. 그리고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아침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니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과연
우리나라 오악(五嶽) 중 하나인 북한산은 서울을 지키는 진산으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1년에 1000만의 사람들이 찾고 있는 북한산엔 총 42개의 봉우리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이중엔 불교에서 비롯된 이름이 반 이다. 오랜세월 불교와 인연을 맺어온 북한산은 수도 서울의 진산으로 도성을 수호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 불교적 이름을 지닌 봉우리를 ‘스토리텔링’이라는 방식으로 소개해, 북한산이 지니고 있는 불교적 의미를 조명해 본다. 백운대는 서울시 도봉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있는 북한산 최고봉으로 높이는 836m에 이른다. 맑은 날에는 인천 앞바다와, 강화도의 마니산, 개성의 송악산까지 볼 수 있으며 백운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조선창업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성계는 공손하게 예를 갖춘 후 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