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cm 기적’ 찬탄 열암곡 마애불 날렵한 콧날·눈매… 아름다움 감탄 축성으로 주변 복원 아쉬움 커 호국도량 천룡사, 탑만 덩그러이 국운을 좌우했다는 전설만 남아 완연한 겨울이다. 남도에도 찬바람이 거세다. 경주 남산도 녹음을 벗어내고 그 속살을 내보였다. 옷깃을 절로 여미게 하지만 답사를 하기에는 좋은 환경이다. 울창한 녹음을 벗어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문화재와 주위 풍광의 조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마지막 신라문화원 경주 남산 불적 답사는 ‘신라 호국 신앙을 찾아서’를 주제로 열렸다. 가장 먼저 답사단이 찾은 곳은 가장 최근 유명세를 탔던 ‘열암곡 마애불’이다. 마애불, 왜 차양막으로 가렸나 2007년 발견된 마애불은 문화재청 산하 국
약수곡 제3사지 부재에서 양면불 증거 찾을 수 있어 險路인 용장계 따라 가면 석탑과 불상이 곳곳에 산재 용장사지엔 김시습의 향훈이 설악에서 시작된 단풍이 경주 남산에도 내려왔다. 가을의 한 가운데에 찾은 경주 남산도 울긋불긋 단풍 옷으로 갈아입고 오는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주봉이라고 할 만한 곳을 찾기 어렵다. 모든 봉우리가 저마다의 다른 높낮이와 특색과 이야기를 가진다. 경주 신라문화원 남산 불적답사단이 11월 답사에서는 남산의 봉우리 중 하나인 금오봉에 올랐다. 약수곡에서 용장계까지 남산의 처처가 노상 불교 박물관이듯이 두 골짜기와 계곡에도 수많은 절터와 불상들이 존재한다. 산길 따라 펼쳐진 약수곡 사지들 남산을 오르기 위해 선택한
미륵불이 도래해 설법한다는 낭적산이 ‘낭산’의 지명 유래 경주 오악 중 중앙에 위치해 신라 문화 발전에 중요 지점 왕릉·사지 등 당시 영화 증명 천년 고도 경주에는 오악이 존재한다. 동악 토함산, 서악 선도산을 비롯해 남악 남산, 북악 금강산, 중앙의 낭산이 그것이다. 이들 가운데 낭산이 중앙의 위치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산의 중요성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신라문화원(원장 진병길)의 10월 경주 남산 불적답사는 오악의 중앙에 있는 낭산을 순례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옛 경주의 중심 ‘낭산’ 최민희 신라문화원 부설 연구소장에 따르면 경주의 지형 조건이 문화 형성에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산과 외산으로 나눠지는 경주의 산악지형은 국도 수호의 방
2000년대 초반 발굴 사업 후 남산 석탑 복원 작업도 진행 지암곡·국사곡 석탑 제 모습 사리장치 3층 위로 간 이유는 “‘불설조탑경’ 영향에 따른 것” 현재 경주 남산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석탑은 총 99기이다. 천년의 세월을 온건히 버텨낸 것도 있지만 이중에는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유구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도 적지 않다. 2000년대 초반 경주 남산의 가치가 조명되면서 대대적인 발굴 조사가 이뤄졌고, 이를 통해 석탑의 복원작업들이 진행돼 이제는 제 모습을 찾은 석탑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경주 신라문화원(원장 진병길)의 10월 경주 남산 불적 답사는 이런 복원 석탑을 찾아보는 데에서 시작됐다. 복원돼 다시 세워진 탑들 경주 남산의 순환도로를 따라서 국사
경주 곳곳, 사방불 신앙 ‘눈길’ 천경림서 잘린 이차돈의 목 금강산에 떨어져… 사찰 건립 남산과 더불어 신라 오악들 천년 경주를 수호하고 있네 경주는 산이 둘러쌓인 지형이다. 그러다 보니 산은 신라에 있어서 성소와 같은 곳이다. 권1 기이1 진덕왕조에서는 신령스러운 네 땅이 있어 나라의 큰 일을 의논하는 곳으로 동의 청송산(靑松山)·남의 우지산(于知山)·서의 피전(皮田)·북의 금강산(金剛山)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기록을 검토해 역사학자들은 신라에는 경주평야를 중심으로 동쪽의 토함산(吐含山), 서쪽의 선도산(仙桃山)), 남쪽의 남산(南山), 북쪽의 북악(北岳, 금강산), 중앙의 부악(父岳)의 오악(五岳)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해석한다. 이 같은 오
삼릉부터 기암골을 지나니 수많은 불·보살상 산재해 부조·선각 등 조성법 ‘다채’ 炎天만큼 답사 열기 뜨거워 경주 남산을 오르는 코스는 다양하다. 포석정과 통일전 주차장, 신라의 발상지 나정 등 올라갈 때마다 색다른 유적과 남산의 맨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그 중 답사코스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는 곳은 삼릉계곡이다. 삼릉에서 용장계로 넘어가는 길 구석 구석에는 불국토 남산이 숨겨놓은 부처와 보살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많은 불교 문화재를 만날 수 있는 곳도 삼릉계 부근이다. 이번 경주 남산 불적답사는 삼릉과 기암골에 산재한 불·보살상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뤄졌다. 남산의 계곡소리를 들어보셨나요 답사은 삼릉 옆 삿갓골 여래입상으로 찾는 것부터 시작됐다. 삿갓골 여래입
?남산과 도당산 토성은 연결됐을 가능성 높아 산업 개발 훼손은 아쉬움 능선 주위 석탑·마애불 산재 ‘남산= 불국토’ 새삼 일깨워 능비봉 5층 석탑 하늘 닿을 듯 산은 1년 내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없다. 경주의 대표적인 명산인 남산도 마찬가지다. 봄과 여름의 문턱, 6월의 남산은 알록한 봄 옷을 벗고 푸르른 신록의 옷을 입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산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는 약 70여 곳. 신라문화원 남산불적답사단은 이번 답사의 시작을 경주 산업도로 인근 ‘60 고개’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를 택했다. 경주 토박이들이 지었을 법한 ‘60 고개’는 60살 이상의 어르신도 완만히 오를 수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산·도당산 토성은 원래 하나 원만한 고개와 산
남산 아래 위치한 나정·포석정 천년 신라의 始終을 담아내 포석정, 단순 연회장소 아냐 무수한 유구만 남은 창림사는 혁거세가 머문 금성으로 추정 올해 4월의 날씨는 유난히 변덕스럽다. 만개한 봄꽃을 시샘한 듯 4월의 첫 주말, 강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내렸다. 신라문화원의 경주남산불적답사도 안전을 우려해 남산에 산재한 불상을 돌아보는 것에서 신라의 시작과 끝을 살피는 것으로 코스를 변경했다. 천년 신라의 시작, 나정 사실 경주 남산은 천년 신라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왕이 살았던 서라벌 궁성 월성(月城)에서 보았을 때 남쪽에 있는 경주 남산은 신라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곳이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난 나정이 남산 자락이고, 신라의 종말을 가져온
신라 시조 혁거세의 죽음 설화 인도 ‘리그베다’와 유사점 많아 불교 유입 후 각색 가능성 커 옛 전불칠처 가람인 담엄사 말목 자른 김유신의 천관사 흔적만 남아 무상함 일깨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새벽 첫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이. 새벽 기차는 묘한 매력을 가진다. 동이 터 오르는 여명의 여적을 보며 스스로 ‘깨어있음’을 느끼는 것은 새벽 기차에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새벽 기차를 타고 도착한 경주. ‘봄은 남쪽에서 온다’고 했던가. 3월 초입 경주는 꽃샘추위의 여파가 남아 있었지만, 봄의 길목에 있는 것은 명확했다. 경주의 주산(主山) 남산도 봄기운이 만연했다. 이번 경주 불적 답사의 주제는 신라의 전설이다. 남산의 아스라한 봄 내음을 따라 신
남산 불상 감상 위해선 태양광 위치·시간 중요 웅장한 탑골 마애조상군은 사방사불정토신앙을 표현 자애로운 부처님 미소에 세속의 근심을 내려놓다 경주 남산에는 약 120여 구의 불상이 계곡 곳곳에 산재돼 있다. 일부는 사찰에 봉안돼 있기도 하고, 어떤 불상은 노천에서 경주를 굽어본다. 신라인들은 왜 경주의 주산(主山)인 남산에 수많은 불상들을 세운 것일까? 경주 신라문화원(원장 진병길)의 2월 남산 불적 답사의 주제는 ‘신라인들의 불상 조성 사상을 찾아서’. 말 그대로 신라인들이 왜 불상을 조성했는지를 되새기는 것이다. 하지만 답사의 해설 맡은 최민희 신라문화원 부설 연구소장은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아는 것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경주 남산은 신라 불교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노천 박물관이다. 산 곳곳에 147개의 절터와 120여 구의 불상, 99기의 석탑과 22기의 석등이 천년 신라의 시간을 간직한 채 산재돼 있다. 본지와 신라문화원은 공동으로 경주 남산의 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불적 답사를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총 12회에 걸쳐 진행한다. 남산의 탑파 신앙, 설화, 불상 등 테마별로 진행되는 불적 답사를 지면에 소개한다. 7세기이전 목탑, 기단에 사리 봉안 석탑 대부분 7세기경 조성 추정 원측의 ‘불설조탑공덕경’ 영향 칠불암 사방불은 본래 단층석탑 매서운 동장군의 기세가 물러설 줄 몰랐다. 경주 남산에도 그간의 서설(絮雪)이 하얗게 내려앉아 얼었다. 눈이 흔하지 않은 경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