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조사 창건 ‘화엄종찰’의 터전 다져 의상 도선 각성 등 시대별 고승이 중창 전각마다 주련 해석한 동판 부착 이해도와 24개 기둥이 받친 보제루 ‘용도와 미학’ 조화 화엄(華嚴). 동국역경원에서 펴낸 (운허 역)에는 “을 가리키는 경우와, 이 경에 의하여 세운 화엄종을 가리키는 경우와, 또 그 교의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화엄’이라는 말 자체는 아름다운 꽃으로 치장된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로 이해되지만, 이라는 경전과 그 경전이 담고 있는 사상과 그 가르침을 근간으로 형성된 종파로서의 ‘화엄종’ 등의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불교신자들에게 화엄이라는 말은 의 줄임말 정도로 이해되거나 매우 아름답게 치장된 모습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 동백숲 빼어난 백련사는 원묘요세의 백련결사 터 50년간 산문출입 삼가고 날마다 ‘아미타불’ 1만번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 백련사 지척에 있어 연못의 석가산 남아 옛 주인의 정취 일러줘 동백 숲에 꽃 없어도 절이 있어 아름답다 동백 숲의 짙푸른 잎들이 비에 젖고 있었다. 지혜장은 무심한 빗줄기너머 동백 숲을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다. 우산을 든 부부는 어느새 요사채 앞마당에 도착했고 비에 젖은 배롱나무가 가지를 흔들며 두 사람을 반겨주었다. 동백 숲에 꽃은 없어도 이렇게 절이 있어 아름다움은 더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진리의 아름다움은 부증불감(不增不減)이니까. 백련사 만경루. 그 앞에서 구강포 쪽을 바라보니 경치가 일품이었다. 커다란 느티나무와 축대 모서리에
소가 쓰러진 곳에 절을 세우다 해남 땅끝마을 앞바다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멀리서 배 한척이 다가 오는데 천상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졌다. 가만 보니 배는 돌로 만들어진 것인데 포구로 왔다가는 사람들이 다가가면 다시 바다 쪽으로 멀어지길 반복했다. 기이하게 여긴 사람들은 의조(義照) 화상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화상은 장운(張雲)과 장선(張善)이라는 두 사미승과 마을 사람 100명을 선발했다.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올렸더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 배 안에는 금으로 만든 사람(金人)이 노를 잡고 서 있었다. 80권, 7권, 비로자나불 등 40성중, 16나한상, 탱화 등이 금 상자 안에 들어 있었고 검은 돌도 있었다. 검은 돌을 깨뜨렸더니 안에서 검은 소가 나와 저절로 커졌다. 그날
?자연 그대로의 가치, 절대고요의 공간 “하는 것이 없는 절이라. 이름이 좀 독특하다.” 무위사 경내로 들어가는 문은 막돌로 만든 계단 위에 있다. 입을 벌린 쩍 벌린 용이 ‘월출산무위사’라는 현판의 좌우 기둥에서 부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의주를 물지 않은 입으로 “안녕 하슈?” 하고 인사라도 건네는 듯. 문 안에는 사천왕이 모셔져 있는데 울퉁불퉁한 생김새는 여느 절과 다름이 없었다. 각 천왕들의 발아래에 사람과 귀신같은 것들이 밟혀 있었다. 서방광목천왕 발아래 있는 놈은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왕방울 눈을 위로 뜨고 씨익 웃는 모습이다. 나팔수씨의 눈에는 왠지 귀엽게 보였다. “녀석들, 별로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니네. 천왕들과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천왕들도 알고 보면 무서운 존재가 아니지.
외호문에서 만나는 천년의 바람 길가에 한 발 비켜 선 일주문이 이채로웠다. 현판을 걸지 않은 그 문에서 한 참 들어 온 곳에 주차장이 있고 ‘가지산(迦智山) 보림사(寶林寺)’ 라는 두 줄 쓰기 세로 현판이 걸린 외호문(外護門)이 있다. 그리 크지 않지만 외 5포의 웅장한 포집인 외호문은 단정한 모습으로 절의 찬란한 역사를 말해 주는 듯 했다. 문 안쪽 외호문이라는 현판 위에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이라는 글자에 나팔수씨의 눈이 고정됐다. “연혁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 온 가람이라 했고 이 문에는 선종대가람이라고 했으니 보림사와 선종의 관계는 특별한가봐?” “여보님,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보림사는 구산선문의 원조도량이야. 좀 어려운 얘기니까, 천천히 얘기하도록 해.” “모
“여보님. 이번 주말에 절집기행 갈까요?” “절집? 그런 말도 있어?”“그럼요. 네이버에서 검색 해 봐요. 국어사전에 ‘절을 집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명사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절집이란 말이 들어간 책 제목도 여러 권 있더라고요.” “그래도 그렇지. 절이면 절이고 집이면 집이지, 절집은 좀 속된 표현 아닐까?” “속되다기보다는 좀 더 정감 있는 표현 같아요. 절, 사찰, 사원 같은 말엔 왠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느낌이 묻어 있잖아요.”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어차피 언어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니까. 그래, 이번 주말엔 어디로 갈 건데?” 지혜장은 주말 절집 기행의 목적지를 금산사로 정하고 책과 인터넷을 뒤지며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남편 나팔수씨는 언제나 그렇듯 “마눌님이 알아서
“어느 쪽이 먼저야?” 안개가 걷히고 찬란한 해살이 모악산 능선 너머에서 쏟아져 내리는 금산사 경내.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도 한 명 없는 텅 빈 마당에서 나팔수씨가 대적광전과 미륵전(국보 제62호) 중에 어느 곳을 먼저 참배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지혜장은 이미 미륵전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그래도 금산사의 상징이고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상징인 미륵전이 먼저지.” 나팔수씨는 햇살이 발에 밟힌다는 느낌을 받으며 아내의 뒤를 따랐다. 아내 지혜장은 절에 도착하면 이유 없이 안내문을 읽는다. 절의 안내문을 읽어서 그 절의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 절집기행의 첫 순서인 셈이다. 그리고 안내문 옆의 약도를 보면서 동선(動線)을 구상한다. 경내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 겹치지 않게 돌아봄으로써 시간을 아끼자는 것이다. 동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단군기원 사천 삼백 칠년 선운사 동구에서 미당 서정주 지어 씀 “보살님, 올해가 단기로 몇 년이지?”“글쎄요. 내가 알기로 올해는 서기 2011년, 단기 4344년, 불기 2555년인데.” 새벽 댓바람에 차를 달려 온 선운사. 부부도 동백꽃을 보고 싶어서 왔다. 미당처럼. 그러나 아직 일러 동백은 피지 않았다. 미당의 시처럼. 그렇지만 미당의 시에 등장하는 막걸리 집 여자는 없었다. 매표소 앞에서 검표하는 아저씨가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 도솔교에서 시작한 휠체어 길은 극락교 앞에서 끝이 났다. 도솔교에서 극락교까지
선운사 앞을 흐르는 계곡은 안쪽으로 갈수록 더 맑고 정감이 가는 물길이다. 우리나라 3대 지장도량 가운데 하나인 도솔암. 워낙 유명한 기도도량이지만 사진으로만 보았던 마애불상을 꼭 친견하고 싶었던 나팔수씨. 맑은 계곡을 감상하며 아내와 함께 봄기운이 솟아오르는 산길을 걷는 것도 행복했다. “여보님. 생각보다 계곡길이 편안하죠?” “그러게. 가파른 산길이 나올까 걱정되지만 아직은 좋은데?”“걱정 안하셔도 돼. 계속 이렇게 좋은 길이니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걸이. 두 다리로 산길을 걷는 것도 따지고 보면 흔한 일이 아니다. 반시간 정도 걸었을까? 길 오른쪽 커다란 암벽에 입을 쩍 벌린 동굴 하나가 보였다. 신라의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도솔 왕비와 중애 공주를 데리고 와서 수행을 했다는 동굴이
마음과 말씀은 둘이 아니다 새벽 5시. 부부는 해남 대흥사 일주문 옆에 도착했다. 최근에 새로 세운 듯 산뜻한 일주문 앞쪽에는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라는 현판이 걸렸고 뒤쪽에는 ‘선림교해만화도량(禪林敎海滿華道場)’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언제 들으니까 이 절 이름이 대둔사(大芚寺)라고 했던 것 같은데?” “원래 이름이 대둔사였다가 대흥사로 바뀌었어. 근래 다시 대둔사란 옛 이름으로 부르다가 최근엔 다시 대흥사로 부르고 있어. 산 이름이 대둔산이었다가 두륜산으로 바뀐 것에 따라 그렇게 된 것 같아.” “뒤의 현판은 무슨 뜻일까?” 선림교해만화도량. 대흥사는 선과 교학 분야에서 큰스님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선림은 참선도량이란 뜻이고 교해는 가르침의 바다 즉, 교학도량이란 뜻이니까,